*오소쵸로오소
*이갱구님 ☆리퀘글☆


 눈을 떠보니 온통 까매서 내가 결국엔 끝까지 가버렸구나, 라고 생각했다. 쵸로마츠는 눈을 몇 번 더 감았다 뜨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손을 잡아 내리니 금방 주변이 밝아진다. 특유의 장난끼 가득담긴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용케도 물에는 닿지 않고있네. 그런 생각을 하며 쵸로마츠는 몸을 일으켰다.

 "오늘도 오신겁니까?"

 "으응, 하루라도 안 보면 몸이 쑤시거든."

 나 어쩌면 병에걸려 버린 걸지도? 키득, 소리를 내며 오소마츠가 웃는다. 쵸로마츠는 그런 오소마츠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다가 절레 고개를 저었다. 느릿하게 손을 휘저어 물을 떠올리고, 그 물을 넓게 펴 공중에 띄운다. 거울 모양이 된 물을 집중해서 바라보니 저 아랫마을에 있는 성당이 보인다.
 오늘도 스토킹이야? 오소마츠의 말에 손을 들어 그의 뺨을 잡아당긴다. 나의 신도들을 보살피는 게 신의 일이니까요, 툭 하니 내뱉듯이 말하곤 성당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바로 아랫마을에 있는 성당은 천사인 쥬시마츠를 보내 돌보도록 하고있고, 신성력이 꽤 센 편인 두 사람이 있으니 별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가끔씩 걱정이 되서 이렇게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그걸 보며 오소마츠는 스토킹이라 말한다. 쵸로마츠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방금 전처럼 오소마츠의 볼을 잡아당길 뿐이었다.

 "오늘은 바빠? 안 바쁘지? 어차피 호수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잖아."

 그렇지? 그렇지? 신경을 박박 긁어대는 말투에 쵸로마츠는 쯧, 혀를 찼다. 오소마츠는 상대가 상대인데도 겁먹지 않고 계속 장난을 이어간다. 쵸로마츠의 등을 쿡쿡 찌르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리기도 한다. 월계관의 잎을 하다 떼어내려다 쵸로마츠에게 제지당한다. 쵸로마츠는 모든 장난을 참고, 또 참는다.
 쵸로마츠는 알고 있다. 자신이 조금만 힘을 실어 저 오소마츠를, 악마를 이 물 속에 가둔다면 1초도 가지 않고 사라질 거라는 걸. 그렇지만 쵸로마츠는 그러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기에 오소마츠는 더더욱 쵸로마츠의 신경을 긁는다.

 "나랑 놀아줘어, 놀아줘! 할 일도 없잖아아!"

 장난을 치는 것도 금방 질려버렸는지 이젠 땅바닥에 누워서 떼를 쓴다. 쵸로마츠는 짜증난단 표정으로 오소마츠를 바라보다가 살펴보던 것들을 전부 내려놓았다. 물소리가 들리자 오소마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기대에 가득찬 눈으로 쵸로마츠를 바라봤다. 정말, 언제까지 이렇게 봐줄건지. 쵸로마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하고 놀진 생각해 봤습니까?"

 물론이지! 오소마츠는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들었다. 쵸로마츠는 한숨을 내쉬며 호숫가에 걸터앉았다. 오소마츠는 능숙하게 카드를 섞고, 나눠주었다. 둘은 그렇게 카드 게임을 시작했다. 한 판, 두 판, 세 판. 오소마츠의 2승, 쵸로마츠의 1승. 쵸로마츠는 분한 마음을 삼키며 이번엔 자신이 카드를 섞었다.

 "나랑 내기 안할래?"

 "무슨 내기 말입니까?"

 카드를 섞으며 쵸로마츠가 흘끔 오소마츠를 바라봤다. 오소마츠는 씨익 입꼬리를 올린다.

 "내가 이기면 소원 들어줘. 뭐든 들어줄 수 있잖아?"

 쵸로마츠는 의심스럽단 눈으로 오소마츠를 바라봤다. 오소마츠는 그런 눈에도 그저 웃음을 유지 할 뿐이다. 쵸로마츠는 잠시 고민하는듯 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카드를 나눠주었다. 자신의 몫의 카드를 손에 들고서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바라봤다.

 "대신에 일부 소원은 기각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기면 일주일간 저를 찾아오지 마세요."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는 그런게 어딨냐며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떼를 쓰다가, 쵸로마츠의 "그럼 지금 당장 돌아가던가."라는 진심이 담긴 말에 얌전해졌다. 카드가 이리저리 오가고, 하얀 카드가 섞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쵸로마츠는 카드를 바라보다 느껴진 어지럼증에 눈살을 찌푸리며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사실 아까전부터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자신에게 무언가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 이유는 절대 없을 텐데. 신이 변하다니, 불변의 존재가 변하다니. 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다니. 말도 안 돼.
 후두둑. 카드가 떨어진다. 게임의 결과는 오소마츠의 승리. 오소마츠가 쵸로마츠를 바라본다.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의 눈을 바라본다. 쿵, 하고 무언가가 내려앉는다. 쵸로마츠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옷을 비틀어쥐었다.

 "뭘, 한, 뭘, 뭐를."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네가 변한거지."

 처음부터 쫓아냈어야 했다. 쫓아냈었어야만 했다. 쵸로마츠는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불변의 존재가 분함을 느끼고, 의심을 하고, 위화감을 느끼고, 변하기 시작했다. 쵸로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오소마츠는 쵸로마츠가 호수 속으로 들어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의 손을 잡고 호수 밖으로 끌어당겼다.
 절대 나와질 리가 없는 호수 밖으로, 쵸로마츠는 끌려나왔다. 오소마츠는 쵸로마츠를 끌어안고서 미소를 지었다. 쵸로마츠는 숨을 몰아쉬며 흐릿한 눈으로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오소마츠는 느릿하게 쵸로마츠의 뺨을 쓰다듬었다.

 "잠깐 자고 있어, 쵸로마츠."

 오소마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쵸로마츠의 눈이 감겼다.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웃었다. 몰래 쵸로마츠에게 심어둔 자신의 씨앗은 착실하게 자라서 그를 제 품 안에 가둘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오소마츠는 내일부터 그와 함께 할 수많은 일들을 생각하며 즐겁게 웃었다.

 "어서와, 이 나락에."

 쵸로마츠의 귀에 속삭이며 오소마츠는 그와 함께 모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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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부르는 길

 

카라마츠 형이 사라졌다. 징후는 없었다.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도 아니다. 카라마츠 사변이라 불리는 사건 때는, 심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뒤에 사과를 했다. 모두 다. 카라마츠 형은 용서했다. 몇 달이 지났다. 갑자기 사라 질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형은 어디로 가 버린 걸까?

 

카라마츠 형이 사라진지 한 달 쯤 지났을 때, 내 몸에는 파란 꽃이 피었다. 말 그대로 파란 꽃. 나는 문신을 한 기억이 없다. 그런데 내 몸에 작은 가지가 생기더니 거기서 꽃이 피었다. 파란 꽃, 이름은 모른다. 생긴 건 벚꽃 같으면서도 아닌 거 같은데. 찾아 볼 생각도 들지 않았다. 소매를 내려 꽃을 감췄다.

꽃은 손목에 생겼다. 혈관과 비슷한 모양으로 생겨난 나뭇가지가 처음엔 섬뜩했다. 마치 어쩌면 현실에 존재 할 지도 모르는 이 나무의 가지가 부러지면 나도 죽을 거 같았다. 시간이 지나 꽃이 피었을 때부턴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형이 사라진지 두 달 쯤 되었을 때, 나는 내 손목의 가지와 꽃이 늘어났다는 걸 알았다. 조금 이상한 건, 모두 한 군데에 몰려서 자라났다는 것 정도. 나무는 남쪽 방향으로 가지를 더 뻗는다는데 그런 걸까? 아니면 그냥 내 착각인 걸까? 다시 꽃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토도마츠, 어디가?”

 

데이트! 다녀올게? 시코마츠 형.”

 

누가 시코마츠냐! , 임마! 토도마츠!”

 

신경 쓰인다면 신경 써줘야 하는 게 아닐까? 데이트라는 거짓말을 하고서 집을 나섰다. 쵸로마츠 형은 쫓아오지 않는다. 눈치 하난 좋다니까. , 데이트는 아니지만. 카라마츠 형을 발견하게 된다면 케이크라도 사서 들고 갈까? 물론 카라마츠 형의 돈으로. 두 달이나 지나서 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문득 든 위화감에 나는 걸음을 멈췄다. 카라마츠 형이 사라진 건 어느 순간 갑자기. 형의 옷도, 신발도, 기타도 모두 그대로였다. 그렇다면 당연히 돈도 없을 거다. 아르바이트를 했을 리가 없잖아? 그 카라마츠 형이라고? 그렇다면 이건 납치인 건가? 하지만 그것도 이상하잖아. 납치면 요구 전화가 와야지. 그래, 그때 치비타처럼.

 

나는 소매를 걷어 올려 손목에 새겨진 꽃을 바라봤다. 납치도 아니고, 돈도 챙겨가지 않았다면 도대체 뭐지? 형은 어디로 사라진 거지? 아니, 아니. 납치 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잖아! 노린 게 카라마츠 형이라거나. 설마 형, 위험한 곳에 끌려간 건 아니겠지? 아니, 아닐 거야. 카라마츠 형인걸. 힘이 세니까, 쉽게.

 

걸음을 멈추고 두 손으로 양 뺨을 때렸다. , 소리가 나며 볼이 따끔거린다. 불안한 생각은 하지 말자. 무서운 생각은 하지 말자. 카라마츠 형이 그런 일을 당했을 리가 없잖아? 심호흡을 하며 진정하고 손목의 꽃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원을 그리며 돌았다.

 

이거.”

 

 

나침반 같네. 작게 중얼거리며 꽃을 바라봤다. 꽃과 가지가 많은 부분이 내가 돌면 같이 돌았다. 일정하게 한 방향만을 가리키고 있다. 고개를 들어 그 방향을 바라본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고, 꽃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이 꽃은 한 달 전부터 피어있었다. 가지도 자라있었다. 그렇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서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색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이건 카라마츠 형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나침반이었는지도 몰라. 내가 좀 더 빨리 반응했다면 좀 더 빠르게 형을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몰라. 아니, 아니. 그건 내 추측에 불과하잖아. 이 끝에 뭐가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 나도 모르겠어. 그냥 달려야만 할 거 같아.

 

숨이 찬다. 에서 쇠 냄새가 난다. 얼마나 달렸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길이 쭉 직선이었다는 거다. 다리에 힘이 빠져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때까지 나는 달렸다. 그리고 멈췄다. 주저앉았다. 힘들어.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숨을 몰아쉬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이상하네.”

 

 

여기가 이렇게 사람이 없는 곳이 아닌데. 나는 다시 일어났다. 손목을 보니 꽃의 수가 늘어있었다. 카라마츠 형에게 가까워진 걸까?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걸까?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걸어갔다. 길은 일방통행이다. 양 옆은 막혀있다.

 

이상하다. 여기는 골목길도 여러 곳인데. 긴장으로 인해 떨려오는 걸 억누르며 마른침을 삼켰다. 걸어가면 걸어 갈수록 손목이 따끔거린다. 이건 경고인 걸까? 아니면 환영인 걸까? 모르겠어, 카라마츠 형. 제대로 알려줘.

 

카라마츠 형.”

 

커다란 나무는 분명 이곳에 없던 나무다. 그리고 이 나무에 피어있는 꽃은 내 손목에 새겨져있는 꽃이다. 나무에 가까이 다가간다. 바람이 불어 꽃잎이 흩날린다. 벚꽃 같다. 하지만 색은 파란색. 심장이 시끄럽게 두근거린다. 나무에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 갈수록 도망치라는 속삭임과 어서 가서 나무를 만지라는 속삭임이 커져온다. 잠시 걸음을 멈췄다.

심호흡을 한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길게 내쉰다. 선택을 해야 했다. 두 속삭임 중 하나에 응해야만 한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뒤돌아 내가 걸어온 길을 바라봤다. 까맣다. 저런 어두운 길을 나 혼자 걸어오다니, 말도 안 돼. 다시 나무를 바라본다. 바람이 불어 꽃잎이 흩날린다. 날 부르는 거 같아.

 

가자.”

 

결정했다. 무섭지만 나는 나무에 다가가야만 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다. 누군가랑 같이 왔다면 이 걸음이 조금 가벼워졌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그리고 왠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긴 나밖에 올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무 앞에 섰다. 나무는 벚나무라고는 생각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벚나무가 이렇게 크게 자라던가? 우리 여섯 명이 서로 손을 붙잡고 나무를 둘러쌓아도 다 안을 수 없을 정도의 줄기. 그리고 까마득하게 높은 나뭇가지. 그런 나무를 보고 있으려니 손목의 따끔거림이 더욱 심해진다.

 

카라마츠 형. 여기 있어?”

 

 

나무를 향해 손을 뻗는다. 손목이 따끔거리는 걸 넘어서 베어지는 것만 같다. 손이 가까워질수록 더더욱 아파왔다. 그렇지만 나는 해야만 할 거 같아. 나무에 손을 뎄다.

 

꽃이 터진다는 건 이런 걸 보면서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파란색 꽃잎이 터져나갔다. 강한 바람이 불었고, 나무는 서서히 수그러들었다. 그 모습은 아름답기도 했고, 한편으론 비참해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쁜 모습은 아니야. 나는 고개를 숙였다.

 

카라마츠 형!”

 

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카라마츠 형이 누워있었다. 서둘러 다가가 가슴 사이에 손을 올렸다. 심장은 뛰고 있다. 코에 손가락을 댄다. 숨도 쉬고 있다. 그냥 잠들어있는 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손목을 바라봤다. 가지도, 꽃도 사라졌다. 아까 전에 꽃이 터질 때 같이 터져나간 건가? 다시 카라마츠 형을 바라본다. 깨우는 건 무리인 거 같다. 무겁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카라마츠 형을 등에 들춰 맸다.

 

 

토도마츠, 카라마츠 찾아 온 거야?”

 

말도 마! 글쎄, 또 이상한 술집에서 붙잡혀서 거기서 빚 갚는 다고 일하고 있었다니까? -미와 파-파에게 더 이상 신세를 질 순 없다! 내가 알아서 하겠다! 라고 하면서 남으려는 걸 겨우겨우 끌고 왔어. 오는 길에 피곤했는지 골아 떨어져 버린 거 있지?”

 

그런가. 고생했어, 토도마츠. 쵸로마츠 형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뿌듯함에 허리를 쫙 편다. 집까지 오느라 지쳤지만 그래도 내가 카라마츠 형을 찾아왔으니까! 물론 쵸로마츠 형에게 한 말은 거짓말이다. 나무가 있던 곳을 벗어나니 평소의 동네로 돌아왔다. 그 나무가 있던 곳이 어디인진 나도 모른다. 카라마츠 형이 이상한 일에 휘말렸다는 건 알겠지만.

 

, 자세한 얘긴 카라마츠 형이 일어나면 듣는 게 좋아.”

 

덕분에 일어나면 물어볼 만한 게 산더미다. , 작게 소리를 내고는 거실 문을 바라봤다. 계단 쪽에서 뛰어내려오는 소리가 난다. 거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린다. 평소의 카라마츠 형이 보인다. 쵸로마츠 형과 같이 잘 잤냐고 인사를 한다. 카라마츠 형이 주저앉는다. 그러곤 울기 시작했다.

 

고맙다, 고맙다, 브라더!”

 

어쩐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기 싫어진다. 호러의 냄새가 난다고, 이거? 나는 호러는 질색이니까. 그저 말없이 형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려줬다. 묻는 건, 나중에 오소마츠 형이 해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그때까지 기다리자. 뒷일을 부탁해, 오소마츠 형!

 

 

 

-*

오랜만에 갑자기. 글쓰고 싶어져서. 소재가 생각났다.

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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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캐해석
※이치카라 이외에 오소카라, 쵸로오소, 막내조 요소가 있습니다. (이번 편은 이치마츠 위주 아마 이치카라?)
※종교는 창작종교이나 어디선가 본듯한 방식이 나올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눈을 떴을 때 깨닫게 된 나의 숙명이요, 필연이요, 염원이니라.

 눈을 떴을 때, 이치마츠는 자신이 인간과 다름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신성력이 무엇인질 알고 있었고, 누군가가 일러주지 않았음에도 자신이 어디로 가야만 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그렇게 자신이 처음으로 눈을 뜬 반쯤 불에 탄 집을 떠나서 성당으로 향했다. 그곳이 모든 일의 시작점이 되리란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치마츠는 성직자가 되었다. 다른 성직자들은 이치마츠를 경외시했다. 타고난 신성력, 타고난 믿음. 그것은 성직자의 전부를 뜻하는 것이었으므로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그를 존경하면서도 무서워 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가 자신들의 자리를 뺏을 것만 같으니까. 그들은 자리를 뺏기고싶지 않았다. 신성력이 사라진다해도, 권력을 손에서 놓고싶어하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별탈없이 자랐다. 다른 이들의 괴롭힘아닌 괴롭힘이 있었지만 이치마츠에게 있어서 그것따위 별로 힘든 일들도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일, 기다려지는 일은 여신이 떠난 뒤 그를 찾아 가는 것이므로. 그것은 머릿속에 각인 된 사명이었다.

 이치마츠는 여신이 떠날 것을 입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이단으로 몰린 자들은 모두 내쫓긴다. 심하면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차라리 조용히, 입을 다물고 때를 기다리자. 이전 대 자신처럼 되지 않도록, 다른 조각들 처럼 되지 않도록.
 대신 이치마츠는 자료를 모았다. 악마, 여신, 세계, 신화, 성서, 조각. 자신이 모을 수 있는 자료는 모두 모아 직접 책에 기록해 두었다. 훗날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성서에 적힌 성지로 가는 길도 모두 기록해두고, 기억해두었다. 그때가 오면 망설이지 않고 떠날 수 있도록.
 이치마츠는 자신이 눈을 뜬 그날부터 이 날을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왔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흔들려선 안 된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이 진정 여신이고, 그 여신이 악마를 사랑하며 그를 위해, 그리고 여신 자신을 위해 인간과 신의 자리를 버린다 말하더라도. 그는 흔들려서는 안 된다. 자신이 해야만 하는 말을, 자신의 안에 새겨진 말을.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쵸로마츠가 말한다. 이치마츠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계속 속으로 되뇌었던 말임에도 불구하고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몇 번이고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그 장면 때문에. 이치마츠는 입을 다물고 쵸로마츠를 바라봤다. 쵸로마츠는 아무말없이 이치마츠의 대답을 기다릴 뿐이다.
 악마는 그 어떤 독으로도 죽일 수 없다. 괴로워는 하지만 죽지는 않는다. 그런 그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독은 신성력. 그들은 신의 힘에 약하고, 신의 힘에 죽을 수 있다. 신성함은 그들에게 있어서 맹독과 같았다. 그렇기에 여신은 자신의 힘을 버린다. 사랑하는 악마를 위해. 이치마츠는 그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몰랐던 것을, 몰라도 됐던 것을 알아버렸다. 그로인해 망설임이 생겼다.
 말해야만 하는데. 자신이, 쵸로마츠를 대신하는 신이 되어 인간들을 살피리라는 것을 말해야만 하는데. 자신밖에 할 수가 없는데. 그럼에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깨달아버린 다른 사실 때문에, 말을 할 수 없었다.

 "이치마츠."

 쵸로마츠가 그를 부른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들어 쵸로마츠를 바라봤다. 쵸로마츠는 자신의 손에 들린 구슬을 이치마츠에게 건넸다. 이치마츠는 손을 들었다 내리길 반복하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쵸로마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고 그것을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혔다.

 "선택은 당신이 하십시오."

 이것은 나의 일부였던 당신을 위한 마지막 배려입니다. 쵸로마츠는 그 말을 남기고 호수 밑으로 사라졌다. 이치마츠는 호수를 바라보며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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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캐해석
※이치카라 이외에 오소카라, 쵸로오소, 막내조 요소가 있습니다. (이번 편은 약간 쵸로오소)
※종교는 창작종교이나 어디선가 본듯한 방식이 나올수 있습니다

 

 

 

 인간이 태어날 때, 신이 함께 태어났다. 처음 태어난 신은 다섯 명으로, 그들은 각자 영역을 나눠 인간들을 보살피기로 결정했다. 그 다섯 명의 신 중 하나인 쵸로마츠는 여신으로서 서쪽 대륙을 보살피게 되었다. 처음에 쵸로마츠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자신으로인해 자신에게 감사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이 자리가 무척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이 일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신들은 중요한 일을 결정 할 때 다섯 명 중 과반수가 찬성해야 한다. 죽음, 질병, 재해는 이 회의를 통해 탄생된 것이었다. 다섯 명의 신 중 네 명이 찬성했다. 그들은 이 사항을 결정할 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신은 인간을 보호함과 동시에 그들을 가르칠 의무가 있다.]

 

 죽음은 과격한 방법이었다. 그렇지만 가장 확실한 교육 방법이기도 했다. 쵸로마츠는 그 때 당시 이것에 대해 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쵸로마츠는 무효표를 낸 신이었다. 다른 신들은 쵸로마츠의 무효표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신들은 미래를 내다본 신들이었지. 쵸로마츠는 쯧 혀를 찼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다섯 명의 신 중 두 명은 잠에 들었다. 그들은 꿈에서라도 멋진 세계를 보고싶다고 말했었다. 쵸로마츠를 포함한 세 명의 신은 각자 맡은 영역에서 제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잠든 신들의 구역은 신이 바라보지 않아도 무사히 굴러갔다. 아니, 무사히는 아니었다. 두 영역은 서로 전쟁을 일으켰다. 그 전쟁은 바로 옆 영역까지 이어져 결국 옆 영역을 바라보던 신이 개입 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쵸로마츠.]

 

 그렇게 백 년이 지났을 때, 또 한 신이 잠들었다. 잠든 두 영역의 바로 옆 영역의 신이었다. 전쟁의 피해는 심각했고, 그 화살은 신에게로 돌아갔다. 그 신은 영원히 먹을 욕을 고작 몇 년 사이에 다 들은 것 같다며 인간에게 언어를 줘선 안 됐었다고 후회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쵸로마츠는 그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영역만 돌봤다.

 그렇게 또 몇 년. 남아있던 한 신마저 잠이 들었다. 쵸로마츠는 혼자 남아 자신의 영역만을 보살폈다. 네 명의 신이 했던 말들을 몇 번이고 곱씹으며 인간들을 돌보았다. 인간들은 점차 번영해갔고, 점점 더 오만해져갔다. 신의 이름이랍시고 돈을 버는 놈들도 있었고, 신은 없다며 자신이 최고라 말하는 놈들도 있었다. 쵸로마츠는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쵸로마츠는 자신도 잠에 들기로 결정했다. 그 계기는 아주 사소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종교를 운영하던 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팔아먹기 시작했다. 쵸로마츠는 더이상 버틸 수 없었다. 끓어오르는 화를 가라앉힐 수 없었다. 그래서 잠에 들기로 했다. 쵸로마츠는 성서 속에 나오는 호수에 몸을 눕혔다.

 

 

 쵸로마츠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은 또 현실이기도 했다. 쵸로마츠가 그 꿈이 현실이란 걸 알게 된 것은 두 번째 꿈을 꾸고나서였다. 두번째 꿈을 꿀 때, 쵸로마츠는 어른들로부터 첫 번째 꿈의 자신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첫 번째 꿈에서의 자신은 영웅이었다. 수준급의 실력으로 검을 다루고, 아무도 따라 올 수 없는 신성력으로 '악마'라는 악의 자식들을 물리쳤다. 쵸로마츠는 단번에 영웅으로 추앙받았고, 왕에게 큰 상과 직위를 하사 받을 정도였지만 그 끝은 처절했다.

 영웅이 생긴다면 시기하는 사람도 생기는 법이다. 그들의 계략에 의해 쵸로마츠는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는 피눈물을 흘리며 모든 이를 저주하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졌다. 두 번째 꿈에서의 쵸로마츠는 자신은 그렇게 되지 않겠노라 생각했다.

 

 두 번째 꿈에서의 쵸로마츠는 학자였다. 그는 신학과 더불어 많은 학문을 공부하고, 연구하며 관찰했다. 질병이 쉽게 퍼지는 이유, 사람이 왜 살의를 가지는가, 정치란 무엇이고 어떤 게 올바른 정치인가 등등. 그의 이름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가 그는 유명해졌다.

 유명해지면 또 다시 위험이 다가오는 법이다. 두 번째 꿈에서의 쵸로마츠는 화재로 인해 죽었다. 방화였지만 누가 했다는 증거가 없어 범인을 잡지 못했다고, 세 번째 꿈에서 들었다. 쵸로마츠가 갖고있던 모든 연구 자료와 책들은 불타 사라졌고, 세 번째 꿈에서 남아있던 것은 극히 일부였다.

 두 번째 꿈에서 깨어난 쵸로마츠는 인간의 이기적임에 몸서리쳤다. 그리고 자신은 꿈 속에 들어가면 그 이전 꿈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세 번째 꿈에서도 자신에겐 똑같은 일이 반복되겠지. 그렇지만 잠들지 않을 수는 없었다. 쵸로마츠는 부디 이번엔 그런 일이 없길 바라며 잠에 들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쵸로마츠는 또 죽임을 당했다. 이번의 쵸로마츠는 성직자였다. 강한 신성력으로 악마들을 물리치고, 모든 이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성직자들 사이에서도 썩은 물은 있었고, 그 썩은 물은 쵸로마츠를 덮쳤다. 쵸로마츠는 독살당했다.

 그렇게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몇 번이고 꿈을 꾸었고, 그 결말은 죽음이었다. 쵸로마츠는 꿈을 꾸면 꿀 수록 점점 더 지쳐갔고, 인간들을 사랑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신이라는 자리는 인간을 사랑해야만 했다. 쵸로마츠는 회의감이 들었다. 신의 자리를 그만두고 싶었다. 그 때, 쵸로마츠는 자신을 찾아온 악마를 만났다.

 

 "안녕, 여신님! 내 이름, 오소마츠! 카리스마, 레전드 성욕의 악마!"

 

 

 오소마츠는 마지막 신인 쵸로마츠가 잠들었을 때 동생인 식탐의 악마 카라마츠와 함께 태어났다고 한다. 그들은 지하계에서 태어나는 악마들을 돌보았다. 그러다 오소마츠는 몇몇 악마들과 함께 지상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 악마들이 인간과 계약을 맺었고, 성직자들의 적이자 절대 악이 되었다고 한다. 그것에 대해 쵸로마츠는 자신에게 불만이 있느냐 오소마츠에게 물었다. 오소마츠는 그 질문에 웃었다.

 

 "여신님 탓이 아니잖? 이건 인간들이 우리를 오해해서 생긴 일이지."

 

 인간과 여신님은 별개의 존재잖아? 쵸로마츠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꿈속-현실이지만-에서 자신은 인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오소마츠는 말이 없는 쵸로마츠를 바라보다 웃으며 그의 앞을 두드렸다.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바라봤고, 오소마츠는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여신님도 꿈을 꿀 땐 인간이지만 그건 별개잖아."

 

 여신님은 내 앞에 있는 여신님이 여신님이야! 오소마츠는 양 팔을 펼치며 외쳤다. 쵸로마츠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의 주위를 날아다니며 괜찮냐고 묻다가 다시 앞에 자리잡고 앉았다.

 한참 후 진정된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에게 이런저런 걸 물었다. 자신이 꿈을 꾸면 인간으로 태어나는 걸 어떻게 알았냐에서 부터 오소마츠에 대한 소소한 것까지. 오소마츠는 귀찮아 하지 않고 몇날 며칠이고 쵸로마츠의 앞에 앉아 모든 질문에 대답을 해 주었다.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와의 대화가 즐거웠다.

 그렇지만 잠에 들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오소마츠, 인간으로 태어난 나를 알아도 나에게 다가오지 마."

 

 내가 너에게 상처를 줄까 겁이 나니까. 물론이지, 여신님. 여신님이 깨어날 때 이 호수로 찾아올게. 그 전까진 여신님 만나러 안 갈게. 그래, 고마워. 잘자, 여신님. 나중에 봐, 오소마츠.

 쵸로마츠는 잠에 들었다. 그러나 얼마 자지 못하고 깨어났다. 죽임을 당한 것도 아니었고, 다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눈이 떠졌다. 그리고 오소마츠는 잠들기 전 쵸로마츠와 한 약속대로 그를 찾아왔다. 쵸로마츠는 자신을 찾아온 오소마츠를 바라보며 말했다.

 

 "신을, 그만두려고 해."

 

 

 중간에 꿈에서 깨어난 탓에 꿈속의 자신은 자신과 다른 개체가 되었다. 그 개체는 성직자로 자라났고, 자신이 신을 그만두려 한다는 걸 알아챘다. 그래서 이곳으로 찾아왔다. 쵸로마츠는 바로 근처에서 느껴지는 이치마츠의 기운에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의 앞에는 동생을 끌어안고 있는 오소마츠가 있었다. 근처에선 쥬시마츠와 토도마츠가 놀고 있겠지.

 

 "오소마츠. 카라마츠는 좀 어때?"

 

 "심각하진 않으니까, 금방 일어날거야."

 

 다행이다.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표정을 살폈다. 오소마츠의 표정은 심각했다. 저렇게 끌어안고 있다는 건 자신의 힘을 나눠주고 있단 거겠지. 그렇다면 상태는 최악. 쵸로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오소마츠, 카라마츠를 지하계에 데려다주고 오는 게 어때?"

 

 내 옆에 계속 있으면 깨어나지 못 할 거야. 오소마츠는 고개를 들어 쵸로마츠를 바라봤다. 쵸로마츠는 고개를 돌려 오소마츠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다. 오소마츠는 고개를 끄덕이고 카라마츠를 안아들고서 바닥에 원을 그렸다. 그럼, 다녀올게. 오소마츠는 짧은 인사를 하고 지하계로 넘어갔다.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호수에 걸터앉았다. 점점 기운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소마츠가 말하길, 저를 만나려면 이곳으로 오라고 전했다고 한다. 왜 쓸데없는 짓을. 쵸로마츠는 입술을 잘근거리며 주먹을 쥐었다. 숨을 내쉬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았다.

 

 "어서오십시오."

 

 이치마츠가 호수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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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캐해석
※이치카라 이외에 오소카라, 쵸로오소, 막내조 요소가 있습니다.
※종교는 창작종교이나 어디선가 본듯한 방식이 나올수 있습니다

 

 

 

 믿을 수 없어. 거짓말. 말도 안돼. 진짜? 정말? 이치마츠는 넘어질 뻔한 몸을 겨우 추스르며 급히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문을 닫고서 침대에 몸을 던졌다. 푹신하게 몸을 감싸오는 침대에 조금 힘이 빠진다. 이치마츠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서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 했다.

 일단 지금은 꿈이 아니다. 방금 전 넘어질 뻔 했을 때 나무에 쓸린 손이 아파왔다. 그렇담 자신이 본 건 진짜. 악마, 악마였다. 바로 옆에 악마가 있었다. 그러나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하지만 아무리 악마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눈치채지 못 할 리가 없는데. 더군다나 저는 조각이었다. 제 옆에 악마들은 다가오지도 못한다.

 이치마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침대 위에 엎었다. 성서, 펜, 책, 지갑. 가방에 들어있던 물건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이치마츠는 책을 펼쳤다. 두꺼운 종이가 가볍게 넘어간다. 페이지를 넘기던 걸 멈춘다. 초를 가져와 불을 붙이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 책은 여태까지 이치마츠가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또 경험하며 본 악마들에 대한 정보를 정리 해 놓은 책이었다.

 

 여신께서 잠이 드셨을 때, 텅 빈 지하계에 두 악마가 태어났다. 성욕의 악마, 식탐의 악마. 둘은 최초의 악마로 그들의 힘은 모든 악마들을 합친 것보다 강하다는 얘기가 있다. 그야말로 여신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악마. 성욕의 악마는 인간계로 올라왔다. 식탐의 악마는 지하계에서 앞으로 태어날 다른 악마들을 기다렸다.

 

 이름은 적혀있지 않았다. 이름을 말하면 안된다는 규칙이라도 있었던 건지, 악마들은 모두 그 이름을 얘기해주지 않았다. 그저 그들에 대해 물으면 위대한 왕, 최초의 악마, 우리들의 위대한 지도자라는 말만 반복했을 뿐이다. 이치마츠는 책을 읽어내려가다 오소마츠를 떠올렸다. 성욕의 악마. 악마들의 왕. 악마는 늙지 않는 건가. 이치마츠는 책장을 넘겼다.

 

 성욕의 악마를 목격했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그것이 정말 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럴 것이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뒤에 있을 거라 생각해 뒤돌면 그 자리에 없었으니까. 이를 보고 우리는 추측했다. 성욕의 악마는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는 능력과 공간을 이동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이치마츠는 얼마 전 악마들이 자신을 둘러 쌓던 때를 떠올렸다. 그 때 모든 악마들은 그림자의 형태를 띄고 있었고, 자신의 기도로 인해 검은 물로 녹아내렸다. 어쩌면 이 성욕의 악마는 그림자로 숨어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치마츠는 다시 책장을 넘겼다. 카라마츠와 함께 있던 그 악마가, 오소마츠가 성욕의 악마라는 생각이 서서히 머릿속을 지배해갔다. 그렇다면 카라마츠는?

 

 식탐의 악마와 성욕의 악마는 형제지간이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있다. 둘은 같은 날에 태어났지만 성욕의 악마가 식탐의 악마보다 아주 미세하게 빨리 태어났다고 한다. 둘은 아무것도 없는 지하계에서부터 오랜 시간을 함께했으며 몇몇 악마들은 그들이 연인사이 일지도 모른다고 얘기했다. 그들은 오랜만에 만나면 키스를 했고, 종종 몸을 섞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어쩌면 그 때부터 카라마츠는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한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자신은 조각이다. 여신의 조각에게 악마가 접근 할 이유가 있는가? 여신은 이미 떠났고, 악마들은 활개를 치고 있다. 자신은 여신을 찾으러 가고있지만 돌아와달라 말 할 생각으로 가는 건 아니었다. 단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생각하면 생각 할 수록 알 수 없어졌다. 카라마츠가 악마인 것도, 자신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도. 죽이려고 한 거라면 이렇게 대놓고 접근 할 것이 아니라 뒤에서 치는 게 낫지 않은가?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건가. 이치마츠는 책을 덮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겠다. 하나도 모르겠다. 일단 카라마츠가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카라마츠가 방으로 돌아온 건 아침이 되고나서였다. 이치마츠는 방으로 들어온 카라마츠를 바라보다가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가만 바라보다가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관리인에게 인사를 하고 성당을 나와 산길로 향한다. 이치마츠는 말이 없다. 카라마츠는 그저 그 뒤를 조용히 따른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이치마츠는 흘끔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기울이며 저를 바라보고 있다. 이치마츠는 다시 시선을 앞으로 옮기며 꽉 주먹을 쥐었다. 갑자기 어떻게 말을 꺼내? 내가 어제 네가 악마가 되는 걸 봤는데 너 악마냐? 라고 말해? 아니면 네 모습을 드러내라고 명령해? 이치마츠는 떨리는 손을 감싸쥐며 어깨를 움츠렸다. 어떻게 말하든 이상하다.

 카라마츠는 불안했다. 어제 밤 역시 오소마츠를 만나는 게 아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들킨 것이 분명했다. 아침부터 이치마츠가 아무말이 없다. 지금도 저를 힐끔힐끔 쳐다보기만 할 뿐 고개를 완전히 돌리진 않는다. 무슨 말을 하려는가 싶더니 금방 입을 다물어버린다. 카라마츠는 직감했다. 들켰다. 자신의 정체가 이치마츠에게 들켜버렸다.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되어버리기 직전이었다.

 

 "잠시, 쉬었다 갑시다."

 

 산의 중턱쯤 올라왔을 때 이치마츠가 걸음을 멈췄다. 카라마츠는 따라 멈추고 적당히 나무에 등을 기대 앉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그 옆에 앉아 위를 올려다보았다. 나뭇잎들 사이로 햇빛이 반짝인다. 눈을 굴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의 얼굴에 나뭇잎 그림자가 져있었다. 이치마츠는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여기까지 올라오며 고르고 고른 말을 꺼낼 때였다.

 

 "숨기는 게 있으십니까?"

 

 있으시다면 지금 말씀해 주십시오. 이치마츠는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솔직히 제가 생각해도 바보같은 질문이었다. 카라마츠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이치마츠는 손을 내리고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사실대로 말해도 되는 건가 고민하고 있는 건가. 이치마츠는 주먹을 쥐고 카라마츠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당신은 절 악마라고 의심하고 계시는 겁니까?"

 

 멈췄다. 이치마츠는 입술을 잘근거렸다. 카라마츠는 천천히 눈을 뜨고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다. 이치마츠는 한 손을 들어 제 옷을 비틀어쥐었다. 카라마츠는 눈을 꽉 감았다 뜨고 이치마츠의 손을 붙잡았다. 뜨거워. 이치마츠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지만 손을 빼내진 못했다.

 

 "만약 의심하고 계시다면 직접 확인 해 보십시오."

 

 이렇게 됐다면 일단 부딪쳐보는 거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에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이치마츠는 손을 뻗어 카라마츠를 밀어냈다. 카라마츠는 밀리지 않았지만 입술이 닿기 전에 멈췄다. 가까워. 이치마츠는 입을 꾹 다물며 눈을 굴렸다. 카라마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지만.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어깨를 붙잡았다. 카라마츠는 눈을 감았다. 이치마츠는 눈을 꽉 감았다 뜨고 입을 맞췄다.

 가볍게 입을 맞췄다 뗄 생각이었다.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의 손을 놓고 머리를 감싸 눌렀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어깨를 잡아 밀었지만 카라마츠는 떨어지지 않았다. 입이 벌려지고 안으로 혀가 밀고들어온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옷을 붙잡으며 꽉 눈을 감았다. 혀를 깨물어버리면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무는 건 할 수 없었다.

 입술이 떨어졌다. 이치마츠는 풀려나자마자 급히 뒤로 물러났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그대로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이치마츠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천천히 다가갔다. 쿨럭, 기침 소리가 들렸다. 카라마츠가 몸을 든다. 피가 흐른다. 검붉은 색에 끈적한 피다. 카라마츠는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몸이 크게 한 번 들썩이더니 곧 피를 쏟아낸다. 이치마츠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카라마츠를 바라보기만 했다.

 카라마츠는 온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고통에 신음조차 흘리지 못했다. 자신의 옷을 비틀어 쥐고 숨을 몰아쉬다가 다시 피를 토해냈다. 눈가가 뜨거워지더니 눈에서도 피가 흐른다. 귀가 시끄럽게 울린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어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이치마츠는 놀란 눈을 한 채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웃었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

 

 "진짜로 해버린 거임?"

 

 이야, 이 황소 고집.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안아들었다. 카라마츠는 정신을 잃었는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희미하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가슴만이 아직까지 살아있음을 알려주었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입에 입을 맞췄다 뗐다. 끈적거리는 피가 오소마츠의 입에 묻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오소마츠는 혀를 내밀어 하얀 조각을 손에 받아냈다.

 

 "수고했어. 여기까지 조각을 갖다주고."

 

 오소마츠는 바닥에 원을 그렸다. 이치마츠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오소마츠에게 다가갔다. 오소마츠는 고개를 까딱였고, 이치마츠는 검은 그림자에 발이 묶였다. 이치마츠는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모았지만 금방 놀란 표정을 지으며 오소마츠를 바라봤다. 오소마츠는 하얀 조각을 들어올리며 히죽 웃었다.

 

 "여신님을 만나고 싶다면 호수로 와."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와 함께 사라졌고, 이치마츠는 그림자에서 풀려나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두 손을 들어올려 바라보던 이치마츠는 주먹을 쥐고서 땅을 내리쳤다. 힘이 사라졌다. 힘을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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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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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캐해석
※양호 선생 이치마츠x뚱 카라마츠
※단문..?


 이치마츠에겐 손버릇이 하나 있다. 그건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이자 자신의 연인인 카라마츠의 뺨을 주무르는 것으로, 말랑말랑하고 따듯한 뺨을 주무르다보면 온몸의 긴장이 풀리고 저절로 웃게 된다는 이유에서 생긴 버릇이었다. 카라마츠도 딱히 거부하지 않았기에 그 아이가 찾아오는 날이면 같이있는 시간 내내 주무르곤 했다. 그러다 오늘 아침, 이치마츠는 자신의 손버릇을 없애야 한다는 선고를 들었다.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는 옆집에 사는 이웃사촌이었다. 성은 같지만 형제도 친척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주변에선 둘을 거의 형제로 보았고, 덕분에 둘은 별 거리낌없이 같이 등하교 하곤 했다. 오늘도 그랬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와 함께 걸어서 등교를 하며 그 아이의 뺨을 주물렀다. 그리고 그 손은 카라마츠에 의해 쳐내졌다.

 "만지지 마세요."

 평소와 다르게 힘없이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이치마츠는 그제서야 상태가 좋지않음을 눈치채고 손을 내렸다. 무슨 일인지 물어볼까 고민하며 입을 우물거리다가 카라마츠의 등을 두드렸다. 카라마츠는 휙 고개를 돌려 이치마츠를 바라봤고, 이치마츠는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카라마츠는 울먹이고 있었다. 눈가엔 눈물이 가득 맺혀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다. 한참 뒤, 카라마츠의 입이 열렸다.

 "저, 살 뺄 거에요."

 아아아아아아! 이치마츠는 제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평소 카라마츠가 자신의 체중과 체형때문에 고민이 많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 또래 아이들은 살이 찐 사람을 흉보는 일이 잦았고, 어른들도 썩 좋은 눈으로 바라보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카라마츠는 자기 자신을 사랑 할 줄 알고, 자신감이 넘치는 아이다. 그래, 그러니까 고민은 겨우 오른손으로 종이를 들지 왼손으로 들지 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했던 거다. 이치마츠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눈물을 흘렸다.

 "최근에 간식도 거절했지."

 생각해보니 전과 바뀐게 많았다. 카라마츠는 점심시간에 양호실에 와서 이치마츠와 같이 도시락을 먹었고, 그 뒤에 이치마츠가 사온 간식을 함께 먹었다. 당연히 차나 주스도 함께했다. 그런데 일주일 전 쯤부터 카라마츠의 도시락 크기가 반으로 줄었고, 간식도 일절 하지 않게 되었다. 왜 자신은 눈치채지 못했을까. 아니, 눈치채고서도 왜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건가. 이치마츠는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종이 울린다. 점심시간이다. 이치마츠는 가방에서 도시락과 간식거리를 꺼내들었다. 이치마츠는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카라마츠는 자신과 함께하는 점심을 거르진 않는다. 아마 곧 양호실로 오겠지. 그럼 얘기를 해보자. 갑자기 왜 다이어트를 결심했는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이치마츠는 주먹을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 선생님."

 카라마츠가 왔다. 이치마츠는 의자를 가져와 제 앞에 내려놓았다. 카라마츠는 그 의자에 앉아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이치마츠는 자신의 도시락을 두드렸고, 카라마츠는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평소 먹던 양의 반밖에 들어가지 않을 도시락통. 이치마츠는 가슴이 찢어지는 걸 티내지 않으며 도시락을 열었다.
 기름이 없다는 게 이런 걸까.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도시락을 먹는 걸 바라보며 생각했다. 카라마츠의 도시락은, 그러니까. 토끼나 햄스터에게 주는 먹이 같았다. 온통 채소, 채소, 채소. 콩같은 것도 없이 그냥 생당근에 생오이같은 것 뿐. 그나마 과일이 조금 곁들여져있지만 많은 양은 아니었다. 겉면이 고르지 못하게 깎인 걸 보면 직접 준비해서 싸온 거 같은데.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도시락을 뺏어들었다.

 "다이어트 한다고 채소만 먹는 거야?"

 이치마츠는 채소들을 바라보다가 반 남은 자신의 도시락을 카라마츠에게 건넸다. 얼떨결에 도시락을 받은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어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손에 젓가락을 쥐어주었다. 먹어. 짧은 말. 카라마츠는 도시락과 이치마츠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천천히 한 젓갈을 입안에 넣었다.

 "도시락 내가 싸줄게."

 허겁지겁 밥을 먹던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어 이치마츠를 바라본다. 꿀꺽, 입안에 든 밥을 삼키고 입을 벌린다. 선생님이, 왜요?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질문에 눈살을 찌푸렸다. 왜요, 라니.

 "일단 네 애인이고, 양호 선생이니까. 영양쪽도 공부한 적도 있어서 식단도 어느정도 짤 수 있어. 네가 무턱대고 채소만 먹어대다 쓰러지는 꼴, 난 못 봐."

 카라마츠는 그 말에 어깨를 늘어트렸다. 이치마츠는 말실수 했다싶어 제 입을 가렸다가 카라마츠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 건강 망치면 안되니까.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는 이해해준 거 같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손을 내렸다.

 "근데 갑자기 왜 다이어트를 시작한 거야?"

 누가 놀렸어? 괴롭혀? 죽여줄까? 이치마츠의 입에서 이어져 나오는 말에 카라마츠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특히 마지막 말에서는 정말 목이 아프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고개를 저었다. 이치마츠는 머리를 긁적이며 등받이에 몸을 편히 기댔다. 그럼 왜?

 "말, 못하겠어요."

 부끄러운 이유인가.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가만 바라보다 머리를 긁적였다. 싫다면 굳이 얘기하게 할 생각은 없다. 이치마츠는 제 뺨을 쓸어내리며 생각하다가 카라마츠의 손에서 도시락을 빼내 책상위에 올려두고, 두 손을 붙잡았다. 허리를 숙여 얼굴을 가까이 하고, 카라마츠와 이마를 맡댄다. 눈이 마주한다.

 "선생님?"

 "네가 무슨 이유로 살을 빼기로 결심했는지 몰라도 이거만은 알아둬. 너는 사랑스러운 아이야. 체형에도, 체중에도 관계없이. 사랑스럽고, 사랑받을 수 있고, 사랑 할 수 있는 아이."

 이건 알아둬.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끌어안으며 입에 입을 맞췄다 뗐다. 카라마츠는 멍한 얼굴로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울먹거리기 시작하더니 크게 소리내 울기 시작했다. 이치마츠는 아무말 하지 않고 카라마츠의 등을 토닥여주며 뺨에 입을 맞췄다. 품 안에 가득 들어오는 카라마츠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럽다.

 "사랑해, 카라마츠."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나는 너를 사랑해. 그게 너니까.



 "소감은?"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며 물었다. 키는 비슷해졌고, 체형은 카라마츠가 좀 더 다부져졌다. 이치마츠가 상당히 마른 체형으로 보일 정도로. 카라마츠는 코를 만지작 거리며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이치마츠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긴장되지만 최고에요!"

 카라마츠, 2학년 2학기. 처음으로 주연으로서 무대 위에 올라섰다.
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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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캐해석
※두서없음 주의
※브금으론 언더테일 Hopes and dream+ SAVE the World+ His Theme 리믹스 추천
※단문?


 하늘이 어두워진다. 먹구름은 한 곳을 기점으로 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낙뢰가 쉴새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아스팔트며 흙을 태워간다. 일부는 나무에 떨어져 불을 내기도 했다. 낙뢰에 맞은 자동차가 삐용삐용 울고있다. 시끄럽다. 얼마 지나지 않아 툭툭 물방울과 함께 작은 우박들이 떨어졌다. 우박들은 사람들의 몸에 따갑게 쏟아져내려 급히 몸을 피한다.
 이치마츠는 몸을 피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들어갔다. 그가 향하는 곳은 한 곳이다. 이 모든 일의 시작, 태풍의 눈. 이치마츠는 우박이 제 살을 스치고 지나가도 무시하고, 낙뢰가 바로 근처 나무 위에 떨어져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지금 그가 신경써야 할 것은 그런 사소한 게 아니다.
 쿠궁,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치마츠는 더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그의 모습은 인간을 벗어나 고양이과 맹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갈라져가는 바닥에서 아직 무사한 아스팔트를 밟아 앞으로 달려간다.

 "카라마츠!"

 이 세상에서 능력자란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또 희생해야만 하는 존재였다. 생명 보장도 해주지 않고, 능력자라는 이유로 장비도 지원해주지 않았다. 제대로 직업을 구할 수조차 없게 만든 주제에 국가에서 나오는 돈은 고정적이지 않았다. 받아도 한 달 생활하기엔 벅찬 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는 능력자로 태어났다. 처음 능력이 발현된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다. 이치마츠는 놀다가 우연히, 카라마츠는 화를 내다가 능력이 생긴 것을 알았다. 그들은 곧장 정부의 기관으로 보내져 능력을 시험받았고, 능력자라는 낙인과 함께 바코드가 새겨졌다. 그리고 굴렀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현장에 투입되어 이리 굴려지고, 저리 굴려졌다. 이치마츠는 점차 지쳐갔고, 카라마츠는 자신만이라도 힘을 내서 이치마츠를 지켜주고자 했다.
 그렇게 십 여 년. 능력자들을 위한 세상은 없었고, 그 세상을 만들고자 여러 능력자들이 힘을 합쳐 정부에 대항했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이 사살 당했다. 그 사이엔 이치마츠도 있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말하곤 했다.

 "소원이고, 꿈이야. 카라마츠와 내가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거."

 내 힘을 다른 누구도 아닌 너를 위해서 쓰고싶어.


 "카라마츠!"

 눈앞이 흐릿하다. 아무래도 너무 무리를 한 모양이었다. 생명에 큰 지장이 가는 상처는 없었지만 그런 상처가 없었을 뿐이다. 방패에 맞아 뼈에 금이갔고, 총알에 스쳐 몸 여기저기에선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올라왔다. 이치마츠는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괴하게 뒤틀린 건물을 타고 위로 올라간다. 미끄러져 떨어질 뻔한 걸 간신히 면하고 더 높이, 더 가까이 다가간다. 카라마츠가 보인다. 웅크리고 앉아 얼굴을 묻은 채 꼴사나운 얼굴을 하고 있을 그가 보인다. 이치마츠는 뒷다리에 힘을 줘 높게 뛰어올랐다.

 "카라마츠!"

 고개가 들린다. 꼴사나운 얼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치마츠는 방긋 웃으며 카라마츠를 향해 떨어졌다. 카라마츠는 놀라 눈을 크게 뜨며 자리에서 일어나 이치마츠를 받았다. 몸이 그대로 뒤로 기울어지다 넘어진다. 카라마츠는 급히 능력을 사용해 공중에 자신과 이치마츠를 고정시켰다.

 "이치마츠? 괜찮은 건가?"

 "쿠소가!"

 괜찮을 리가 없잖아! 아프다고. 아파 죽을지도 모르니까 얼른 날 병원으로 데려가. 이치마츠는 투덜거리며 카라마츠에게 몸을 기댔다. 카라마츠는 멍하니 이치마츠를 바라보다가 웃으며 이치마츠를 끌어안았다.

 "미안하군. 나때문에 아픈 몸을 이끌고 이곳까지 오다니."

 "알면 얼른 병원으로 가자고. 귀찮은 놈들 오기전에."

 그건 이미 늦은 거 같군. 카라마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났으니 슬슬 올 거라 생각했지만. 후우, 카라마츠는 길게 숨을 내쉬며 손을 들었다. 먹구름은 아직 걷히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품에 안겨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카라마츠의 능력은 강력하고 다양하다. 그리고 그만큼 위험하다. 카라마츠는 그 모든 것을 조절 할 수 있는 안정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치마츠에 한해서 그는 불안정해진다. 그렇기에 정부는 몇 번이고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를 떨어트려 놓으려 했다. 몇 번이고. 그럴 때마다 카라마츠는 제 힘을 제어하지 못해 건물을 부수고, 도로를 망가트렸다. 결국 그들은 이치마츠를 떼어놓는 걸 포기했다. 그러던 중 일이 터졌다. 능력자들의 시위 안에 이치마츠가 같이 있었다. 이치마츠는 다쳤고, 카라마츠는 능력을 제어하지 못했다. 그리고 정부는 카라마츠 사살 명령을 내렸다.

 "카라마츠."

 그리고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음을 그들은 깨달았다. 카라마츠의 떨리는 손을 이치마츠가 잡아주었다. 카라마츠는 숨을 몰아쉬며 이치마츠를 끌어안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등을 토닥이며 얼굴 여기저기에 입을 맞춰주었다.
 바닥은 모두 타들어갔다. 몇 번이고 내리친 낙뢰가 태워버렸다. 당연히 그 위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타들어갔다. 낙뢰에 맞아 감전, 화상. 이치마츠는 올라오는 탄내에 눈살을 찌푸리며 카라마츠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사랑한다, 이치마츠."

 "나도."

 "괜찮다면, 계속 함께 해 주겠나?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얼마든지."

 이치마츠는 생각했다. 사랑의 힘이 세상을 구한다는 건 말도 안되는 생각이라고. 사랑의 힘이 구하는 건 히어로 자신과 그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세계가 아닌 개인을 구한다는 소리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입에 입을 맞췄다 뗐다.
 자신은 카라마츠를 구했고,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구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기반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세상은 구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구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입에 한 번 더 입을 맞췄다.

 "둘이서 계속 함께하자."

 "아아, 놓아달라해도 이미 늦었어."

 이미 우린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으니까. 우린 서로를 구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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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캐해석
*동양풍의 어느 나라
*느리게 연재됩니다.

 

 

 

 결정이 되자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몸값을 유곽에 지불하고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카라마츠는 수수한 남성옷으로 갈아입고, 얇은 천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말에 앉히고, 그 뒤에 앉아 고삐를 쥐었다. 말이 달리기 시작한다. 익숙하지 않은 카라마츠는 급히 이치마츠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이치마츠는 흘끔 카라마츠를 보다 쯧 혀를 찬다.

 사람이 많은 홍등가를 지나 한산한 길로 들어서면 양옆으론 나무들이 가득하다. 그곳까지 나와본 적 없는 카라마츠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몸이 흔들리자 고개를 숙였다. 이치마츠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더니 완전히 길에 멈춰 섰다. 카라마츠는 흔들림이 멈추자 고개를 들어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걷게 했다.

 

 "여기서부턴 사람이 거의 없는 길이니 간단하게 해야 할 얘기나 할까하니, 잘 들어. 한 번밖에 말 안 해줄 거니까."

 

 여러번 말 하는 건 귀찮거든. 카라마츠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는 생각을 정리하듯 잠시 말이 없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말하길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다각, 다각. 말이 걷는 소리만 주변에 울린다. 정말로 주변엔 아무도 없는 걸까. 카라마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통 나무 뿐이었다. 몸을 숨기기엔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무가 가득했다.

 

 "일단, 형님에 대해 얘기할까. 너, 기본적인 예절은 배웠지?"

 

 "예, 예."

 

 "다 버려."

 

 네? 최대한 예절이라는 거랑 거리가 멀게 행동하라고. 뭐, 가족한테는 그러면 안되겠지만 시종이라거나 손님 앞에선 무조건 예절과는 거리가 멀게 행동해. 여자를 밝히는 행동을 하면 더 좋고. 색, 술, 도박. 그 세 가지를 밝히는 남자거든. 우리 형님은. 너에 대한 얘기를 해준 것도 형님이었는데, 네가 있던 유곽에 갔을 때 널 봤다고 하던데. 마주친 적 없어?

 기억 안나. 카라마츠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는 쯧 혀를 차며 눈살을 찌푸렸다. 썩 형을 좋아하진 않는 눈치였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저와 똑같은 얼굴, 비슷한 체격이면 기억 못 할 리가 없는데. 그러고보니 예전에, 한 번 저와 비슷한 손님이 왔었다는 얘길 들었던 거 같기도 하고. 카라마츠는 깊숙히 생각속으로 들어가다 고개를 저어 빠져나왔다.

 

 "도박 중 가장 좋아하는 건 마작이라는 건데. 바다쪽에 놀러갔을 때 갑자기 사라지더니 배워왔더라."

 

 나는 아직 어려워서 잘 못하지만 가끔 형님과 어울려드리곤 하지.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생각보다 오소마츠를 싫어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싫은 사람이라면 어려워서 잘 못하는 놀이-도박?-를 같이 해줄리가 없을테니까. 어쩌면 천성이 착한 사람인 걸지도 모른다. 생각을 마친 카라마츠는 고개만 끄덕였다.

 

 "또, 형님은 말을 잘 타지. 활도 잘 쏘고, 사냥도 잘 하는 편이야."

 

 머리도 좋고. 그런 재능을 술과 도박과 색에 쏟아부어버리고 있으니 아버지가 화를 내다못해 슬퍼하시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야. 험담 반, 칭찬 반.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하는 말을 들으며 그 가족들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고위관직에 머물러 계시는 아버지, 능력있지만 방탕한 장남, 그리고 형님과 사이가 좋은 삼남.

 삼남? 그렇다면 차남이 있는 건가? 동생도 있나? 카라마츠는 눈살을 찌푸렸다 펴곤 고개를 들어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한참 형에 대한 욕과 칭찬을 내뱉던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시선에 고개를 숙였다. 눈이 마주쳤다. 이치마츠는 말을 멈추고 앞을 바라보았다. 카라마츠도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봤다. 문이 보인다.

 

 

 "그럼 여기서 잠시 기다려. 형님께 말씀드려야 하니까."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는 문을 닫고 걸음을 옮겼다. 카라마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손님을 맞이하는 방처럼 보이는데 상당히 화려하다.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 방이기 때문인가? 유곽에 있을 때 손님에게 듣기론 사람마다 방을 꾸며놓는 방식이 다르다고 한다. 어느 부자집은 높은 손님을 맞을 때와 자신과 비슷한 손님을 맞을 때, 그리고 자신보다 낮은 손님을 맞을 때 각각 다른 방을 사용한다고 했다. 높은 손님을 맞을 때는 수수한 방을, 비슷한 손님을 맞을 때는 적당히 과시 할 수 있는 방을, 낮은 손님을 맞을 때는 가장 화려한 방을. 이유도 다 다르다고 했는데. 그럼 여긴 무척 화려하니까 낮은 손님을 맞을 때 쓰는 걸까. 낮은 손님.

 카라마츠는 고개를 숙이며 옷을 두 손으로 꽉 쥐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신은 낮은 손님 중에서도 가장 낮은 축에 속했다. 아니, 사실 이렇게 앉을 자리를 마련 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지. 카라마츠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위치를 새삼 실감해버렸다.

 

 "뭐해?"

 

 문이 열렸다. 이치마츠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저었다. 이치마츠는 그런 카라마츠를 바라보다가 손짓했다. 카라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치마츠를 따라갔다. 밖에서 봤을 때도 느꼈지만 안에서 보니 더더욱 넓어보인다. 숲의 한 부분을 잘라내 세운 집인 거 같은데. 물어볼까 싶었지만 딱히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에 물을 수가 없었다.

 방 문 앞에 선다. 가볍게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카라마츠는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안에 들어가니 반긴 것은 배에 붕대를 감고 앉아있는 남자였다. 그 얼굴은, 카라마츠와 닮아있었다. 체형은 그 사람이 훨씬 더 좋아보였지만. 이치마츠가 그의 앞에 앉아 제 옆자리를 두드렸다. 카라마츠는 급히 그쪽으로 다가가 앉았다.

 

 "안녕. 난 오소마츠. 이 마츠노 가의 장남이자 네 옆에 앉은 이치마츠의 멋진 형님."

 

 그리고, 앞으로 네가 흉내내야 할 사람. 앞으로 잘 부탁해. 오소마츠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지만 카라마츠는 그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이 남자는 위험하다. 그것이 오소마츠를 처음 본 카라마츠가 내린 결론이었다.

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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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캐해석
※이치카라 이외에 오소카라, 쵸로오소, 막내조 요소가 있습니다.
※종교는 창작종교이나 어디선가 본듯한 방식이 나올수 있습니다

 

 

 그는 영웅이라 불렸다. 여신께서 내려주신 마지막 희망이었다. 모두가 그를 찬양했고, 그를 존경했으며 그를 사랑했다. 그는 사람들을 위하여 악을 몰아내고, 모두가 행복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영웅에게는 그만한 시련과 고통이 따르는 법이다. 그는 결국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은 만큼 처참하게 죽어갔다.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모든 걸 원망한다, 모든 걸 저주한다. 이제 더이상 나는 너희를 위해 살지 않으리라.

 

 

 카라마츠는 책에서 눈을 떼고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는 곤히 잠이 든 채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날이 밝은진 오래였고, 곧 있으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카라마츠는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책을 옆에 내려둔다. 금색으로 적힌 멋들어진 글자에 햇빛이 비춰 반짝 거린다. 카라마츠는 가만 책을 바라보다 다시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손을 뻗는다.

 움찔. 닿기도 전에 이치마츠가 눈을 떴다. 급히 손을 거두고 책을 가방 안에 넣었다. 멋대로 가방을 뒤졌다고 혼이나는 건 아닐까. 화를 내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꽉 주먹을 쥐었다. 이치마츠는 아직 잠이 덜 깬 듯 멍하니 카라마츠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카라마츠는 흘끔 그런 이치마츠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일어나셨으면 식사하러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라마츠는 몸을 돌려 문고리를 잡았다. 어깨가 잡혔다. 돌려졌다. 벽에 등을 박았다. 카라마츠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깨를 움츠렸다. 눈을 굴려 이치마츠의 얼굴을 바라봤다. 차가운 표정, 알 수 없는 기운이 가득한 눈빛. 주변이 차가워진다고 느껴졌다. 카라마츠는 입술을 잘근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왜, 그러십니까?"

 

 이치마츠는 해야 할 말을 정리했다. 자신이 밤에 본 것이 꿈이 아니라면 그건 분명히. 하지만 어떻게? 악마란 존재는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 올 수 없는데.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냐, 그래도 무리야. 내가 다가가기만 해도 악마 한 둘은 그냥 도망쳤는 걸. 거기다 나는 기도까지 했어. 그걸 버틸 수 있을리가 없잖아. 그렇담 뭐지? 이건 뭐지? 이치마츠는 까득 이를 갈았다.

 쾅,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다. 카라마츠의 몸이 흔들렸다. 창밖에서 햇빛이 들어와 둘을 비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턱을 잡아들어 눈을 맞췄다. 카라마츠는 입을 꾹 다문 채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는 무어라 말하려 입을 열었다가 닫곤 카라마츠의 턱을 놓아주고 뒤돌아 제 머리를 쓸어올렸다. 하아, 길고 무거운 한숨이 내뱉어진다. 카라마츠는 주륵, 그대로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 앉았다.

 이치마츠는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카라마츠는 아무 말없이 이치마츠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이치마츠가 흘끔 카라마츠를 바라본다. 카라마츠는 뒤돌지 않고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햇빛이 들어오고 있다. 햇빛이 비추었던 카라마츠와 달빛이 비추었던 카라마츠를 떠올린다. 달빛에 비춰진 카라마츠는 꿈이 아닐까. 이치마츠는 눈을 감았다.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카라마츠는 먼저 기차에서 내려 이치마츠를 기다렸다. 기차에서 내린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꿈인지 현실인지도 모를 일이고, 일단은 끝까지 동행해야 하지 않을까.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다가갔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일단 오늘은 성당에서 쉬었다 갑시다.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그곳으로 가도록 하죠."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앞장 서 걸어갔다. 그 뒤를 카라마츠가 쫓는다. 이치마츠는 생각했다. 오늘 밤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확인 해 보자고. 지금의 성당이라면 그 어떤 악마라도 들어올 수 있다. 만약 카라마츠가 악마 또는 악마와 계약한 인간이라면 오늘 밤에 어제밤 만난 악마가 또 찾아 올 수도 있다. 거기다 성당은 달빛이 잘 드는 곳에 위치해있으니까. 이치마츠는 꽉 주먹을 쥐었다.

 성당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가장 높은 건물이기도 했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니까. 성당은 산 중턱에 있었다. 이치마츠는 성당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그곳을 관리하는 자를 만나 인사를 나눴다. 카라마츠는 밖에서 이치마츠를 기다리며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그다지 큰 마을은 아니었지만 여태까지 지나쳐왔던 그 어떤 마을보다 생기가 넘쳐보였다. 아이들은 밖에서 원하는 만큼 뛰어놀고 있고, 사람들은 서로 얘기를 나누거나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행복해보였다.

 

 "이리로 오십시오."

 

 아, 예.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불렀다. 카라마츠는 몸을 돌려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관리인이 카라마츠를 흘끔 위아래로 훑어보았지만 카라마츠는 신경쓰지 않았다. 이치마츠만 눈살을 찌푸리며 관리인을 노려 볼 뿐이었다. 이치마츠의 시선에 관리인은 금방 고개를 돌려버렸다.

 외곽, 그러니까 예배당을 지나 그 뒤쪽으로 가면 생활관이 나온다. 성직자들이 공부하고, 생활하는 곳으로 여분의 방을 두 세 개 정도 남겨놓는 것이 보통이다. 그 방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선교 활동을 하는 성직자들을 위한 방이다. 카라마츠와 이치마츠는 같은 방으로 배정받았다.

 

 "그럼 식사 시간 때 찾아뵙겠습니다."

 

 관리인은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갔다. 카라마츠는 침대에 털썩 누워버렸다. 며칠간 기차에서 좁은 의자에 누워잤더니 몸 이곳저곳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 같았다. 푹신한 베개에 얼굴을 묻고 추욱 늘어진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창문쪽으로 다가갔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위치의 방이다. 이치마츠는 눈살을 찌푸리며 마을을 훑었다.

 여기도 마찬가진가. 이치마츠는 쯧 혀를 차곤 커튼을 쳤다. 카라마츠는 금세 잠들어버린듯 미동도 없다. 그런 카라마츠를 보던 이치마츠는 그에게 다가가 이불을 덮어주고, 가방을 가지고 방을 나갔다. 카라마츠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들어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덮혀진 이불을 바라봤다. 하아, 긴 한숨을 내쉬곤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아직도 주무십니까?"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흔들어 깨웠다. 카라마츠는 눈을 부비며 일어나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옷이 바뀌어 있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어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내려다보다 고개를 까딱였다. 저녁 먹으러 갑시다. 저녁? 카라마츠는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보았다. 주황빛이 창문으로 희미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치마츠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이치마츠는 먼저 일 층으로 내려가 제 몫과 카라마츠 몫의 식사를 받아 테이블로 가져왔다. 카라마츠는 자리에 앉아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앞에 식사가 놓여진다. 가벼운 식사다. 숟가락을 들기 전에 두 손을 모으며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곧 아까 전 관리인이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관리인은 높은 직책에 앉아있는 성직자였던 모양이다. 카라마츠는 가늘게 떴던 눈을 감고 기도하는 시늉을 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식사를 하던 중 이치마츠가 물었다. 카라마츠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말없이 식사를 이어갔다. 카라마츠는 불편함에 식사를 다 하지도 못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치마츠는 그런 카라마츠를 말없이 바라보다 마저 식사를 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밖으로 나갔다.

 식사를 다 끝낸 이치마츠도 카라마츠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해는 어느새 넘어갔고, 달이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오늘 달빛은 그리 강하지 않으려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걷던 이치마츠는 걸음을 멈췄다. 익숙한 기운과 함께 소리가 들려온다. 이치마츠는 수풀로 들어가 천천히 소리가 난 쪽으로 다가갔다.

 

 "아직?"

 

 "조금만 더."

 

 조금이라니 얼마나? 형아, 지친다구-. 애처럼 굴지마. 칫. 카라마츠의 목소리다. 다른 목소리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했다. 이치마츠는 나무에 몸을 숨긴 채 고개만 밖으로 내밀었다. 달빛은 항상 타이밍이 좋았다. 달빛이 이치마츠가 보고자 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치마츠는 나무를 두 손으로 꽈악 붙잡았다.

 

 "배는 안 고파?"

 

 "딱히. 괜찮아."

 

 얼마전에 먹기도 했고. 그래? 응. 짤막한 대화들이 이어진다. 이치마츠는 기차에서 들었던 뼈를 씹는 소리를 떠올렸다. 역시 그 때 그쪽으로 가서 확인을 해봤어야 했는데. 까득 이를 갈며 이치마츠는 손으로 제 옷을 비틀어쥐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얼굴에 열이 오른다. 화가 나는 건가? 아니, 그것과는 조금 다른 거 같다. 이치마츠는 눈살을 찌푸렸다. 카라마츠가 대화하고 있던 자와 눈이 마주쳤다. 이치마츠는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카라마츠와 처음 만났을 때 같이 있었던 악마, 오소마츠다.

 

 "그 모습으로 있기 힘들지 않음?"

 

 "힘들지. 솔직히, 피곤하다."

 

 "그럼 여기선 그냥 원래 모습으로 있지 그래?"

 

 하지만 누가 보면 어떡하나? 괜찮아, 아무도 없다니까. 오소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치마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무언가가 쿵 하고 아래로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카라마츠는 그를 바라보다 머리를 쓸어올리더니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늘을 향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솟아난 뿔은 책에서만 본 저 바다 건너 어딘가에 살고있다는 크고 털많은 소의 것을 닮았다. 귀의 위치에 있던 사람의 귀는 털이 복슬한 짐승의 것으로 변해 아래로 향했다. 꼬리는 귀와는 어울리지 않게 파충류의 것으로, 굵고 단단해보였다. 신부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평범한 반팔티와 반바지로 바뀌었다. 다리는 평범한 사람의 다리였다. 마지막으로 등에는 커다란 날개가 달려 있었다.

 

 "이야, 그모습 오랜만에 본다. 그래, 오랜만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소감은?"

 

 "아까부터 계속 이상한 말만 하는군."

 

 카라마츠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본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풀이 흔들리며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카라마츠의 고개가 이치마츠쪽으로 돌아간다. 파랗게 빛나는 눈이 보인다. 이치마츠는 꽉 주먹을 쥐며 입을 다물었다. 카라마츠가 몸을 돌려 이치마츠쪽으로 다가온다.

 

 "카라마츠-."

 

 다가오려했다.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붙잡아 돌렸다. 카라마츠는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오소마츠를 바라봤다. 그 표정에 오소마츠는 상처라느니 뭐라느니 시끄럽게 떠들어대다가 제 입술을 두드렸다. 카라마츠는 하아, 길게 한숨을 내쉬곤 눈을 감았다. 오소마츠는 히죽 웃으며 이치마츠를 바라보다가 카라마츠의 입에 입을 맞췄다. 이치마츠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 성당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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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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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캐해석
※이치카라 이외에 오소카라, 쵸로오소, 막내조 요소가 있습니다.
※종교는 창작종교이나 어디선가 본듯한 방식이 나올수 있습니다



 나, 잠에 드노니. 내가 일어날 때 다시 한 번 너희를 심판하리라. 만일 그때에도 너희가 감사를 잊었다면 그땐 내가 너희를 떠나겠노라. 너희에게 힘을 빌려주지도, 말하지도 않겠노라. 이것은 나의 마지막 경고이자 최고의 형벌. 부디 내가 그 형벌을 내리는 일이 없도록.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여신을 만나러간단 말이 그렇게 충격적이었던 건가. 확실히 평범하진 않겠지만. 이치마츠는 가만 생각하다가 책을 가방안에 넣었다. 카라마츠는 손을 들어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기차 소리만 방에 울린다. 창밖은 어두워지고 있다. 노을이 가라앉고 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저녁 시간이다. 식당 칸에서의 식사는 정해진 시간에만 가능하니까, 얼른 먹고 오는 게 편하다.

 "식사하러 가시죠."

 "예, 예에."

 카라마츠가 느릿하게 일어난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위아래로 쭉 훑어보다 먼저 방을 나갔다. 뒤따라 카라마츠가 나온다. 함께 식당칸으로 향한다. 카라마츠는 걸어가며 다른 방들을 훑어보았다. 비어있는 방이 대부분이었다.
 식당칸의 문을 열고, 적당히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간단한 식사를 주문하고, 또 다시 침묵. 카라마츠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건지 아무런 말이 없다. 이치마츠는 그런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아까 전 읽은 창세기의 마지막을 떠올린다.
 여신은 경고했으나 인간은 감사를 잊은지 오래다. 여신의 가르침을 전한다 하는 성직자들 또한 제대로 된 감사를 하지 않고있으니, 다른 사람들이라고 제대로 감사 할 리가 없지. 그래서 여신은 떠났고, 여신의 힘을 빌려쓸 수 없게 된 인간은 악마들에게 괴롭혀지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츳 혀를 찼다.

 "그거 아십니까?"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어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타이밍 좋게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이치마츠는 스프를 한 숟갈 마시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맛은 나쁘지 않네.

 "여신께서 잠드신 이후, 여신의 힘을 쓸 수 있는 자가 각 세기마다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다른 성직자들보다 신성력이 강했습니다. 그들이 손짓 한 번 하면 모든 악마들이 떨어져 나갈 정도였으니까요. 그들의 몸 어딘가에는 여신님의 문장이 태어날 때부터 새겨져 있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그들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여신의 조각. 조각, 이라고."

 카라마츠는 가만 이치마츠를 바라보다가 꾸욱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 묻고싶지만 섣불리 물을 순 없는 모양이지. 이치마츠는 히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카라마츠가 흠칫 몸을 떤다. 이치마츠는 빵을 찢어 입안에 넣었다.

 "그래요. 제가 이 세기의 조각, 그리고 여신님의 마지막 조각입니다."

 그 이후로 카라마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그런 카라마츠가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말하지 않았다. 아마 그건, 보통 사람의 반응과 다름에서 오는 이상함일테니까. 다르게 말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거다. 그래. 이치마츠는 마지막 빵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식사는 끝났지만 바로 방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카라마츠는 후식으로 나온 쿠키를 입에 넣었다. 달다. 이치마츠는 그 모습을 가만 바라보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슬슬 자고 일어나야 할 시간이지 않을까. 이치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자네들, 이호인가?"

 그대로 방으로 가려 했것만. 이치마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말을 걸어온 늙은 남자는 허락도 구하지 않고 카라마츠의 옆에 앉았다. 카라마츠는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더 구석으로 밀어넣었다. 이치마츠는 속으로 혀를 차곤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멀리 가는 기차에 탄 걸 보면 직급은 낮은 모양이지?"

 남자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놈들은 순 사기꾼이야. 왕의 옆에 붙어서 보석 쪼가리라도 하나 떨어지지 않을까 입을 벌리는 녀석들이지. 그래놓곤 사람들에게서도 돈을 걷어간다니까? 제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면서."

 카라마츠는 흘끔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이치마츠는 무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동의라도 되는냥 말을 이어갔다. 대부분이 종교에 대한 험담이었고, 마지막은 제 종교에 대한 자랑과 포교였다.

 "그러니까 이제 믿을 건 여신이 아니라 우리 신님이라니까."

 이치마츠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라마츠도 따라 일어났다. 남자는 둘을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손짓하곤 방으로 향했다. 카라마츠는 그 뒤를 따랐다. 뒤에서 남자가 후회 할 거라는 말이 들려온다. 이치마츠는 무시했고, 카라마츠는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남자는 방까지 찾아오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방에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들었다. 그가 다시 깨어난 건 밤이 깊은 후였다. 확실한 시간은 알 수 없지만 아침이 되려면 세 네 시간정도 지나야겠지. 이치마츠는 몸을 일으켜 앞을 바라보았다. 카라마츠가 없었다.
 이치마츠는 방을 나왔다. 이 새벽에 어딜 간 거야. 쯧, 혀를 차며 복도를 걸었다. 어두운 복도엔 아무도 없었다. 화장실이라도 간 건가 싶어 화장실로 향했지만 그곳에 카라마츠는 없었다. 이치마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 애도 아니고. 다시 방으로 향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우두둑, 으득. 무언가 딱딱한 걸 씹어먹는 소리. 이치마츠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이 시간엔 식당칸이 운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기차엔 짐승이 탈 수 없다. 이치마츠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애써 무시하며 방으로 돌아왔다. 이 기차에, 악마가 타고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오길 기다렸다. 카라마츠는 한 시간쯤 더 지난 뒤에야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치마츠가 깨어있음에 놀랐지만 뭐라 말하진 않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가 몸을 눕혔다.

 "어디에 다녀오셨습니까?"

 이치마츠가 물었다. 카라마츠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몸을 카라마츠쪽으로 돌렸다. 달빛이 창으로 들어와 카라마츠를 비췄다. 얼굴은 아무 표정도 없었다. 이치마츠는 그 얼굴을 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애써 무시했다.

 "됐습니다. 주무시기나 하세요."

 안녕히 주무십시오. 카라마츠도 자리에 누웠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그렇지만 아침이 될 때까지 한 숨도 잘 수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키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뜬 건 방문을 두드리는 시끄러운 노크소리 때문이었다. 이치마츠는 짜증을 내며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그는 입을 우물거리다 겨우 입을 열었다.

 "제, 제 형제를 보지 못했습니까?"

 이치마츠는 눈살을 찌푸렸다. 카라마츠는 이제야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남자는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제 밤 형제가 갑자기 굉장한 걸 봤다며 그걸 확인하기 위해 방을 나갔다고 한다. 그때가 새벽 한 시 쯤이었다. 두 시간쯤 지난 뒤에도 그가 돌아오지 않아 남자는 그를 찾으러 방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기차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고, 아침이 되자마자 남자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의 행방을 묻고 다녔다고 한다.
 이치마츠는 그 말을 들으며 밤에 들었던 우둑거리는 소리를 떠올렸다. 어쩌면 그 소리는 남자의 형제가 잡혀먹는 소리였을지도 모른다. 남자는 이치마츠에게 다시 한 번 형제를 보지 못했냐고 물었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저었다. 확실하지 않으니까.

 "그렇, 습니까. 아침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마주치게 된다면 꼭 제가 찾고있다고 전해주십시오. 남자는 문을 닫았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기울이며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이치마츠는 입을 열었다가 닫곤 고개를 저었다.

 "아침이나 먹으러 갑시다."

 그 이후로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는 대화가 없었다. 이치마츠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듯 보였고, 그런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카라마츠는 입을 다물었다. 이치마츠는 조용한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기차에 악마가 있다. 그러나 그게 누구인진 알 수 없다. 어쩌면 남자의 형제가 악마일 수도 있다. 어제 밤에 들켰음을 알아채고 도망친 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러면 뼈를 씹는 소리가 남는다. 그건 분명 사람을 잡아먹는 소리였을텐데 이 기차에서 사라진 사람은 남자의 형제뿐이다.
 후우, 이치마츠는 길게 숨을 내쉬곤 눈을 떴다. 머리가 아파와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치마츠는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리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햇빛이 창을 통해 들어오고, 그 빛은 카라마츠를 비춘다. 심장이 떨린다. 고민이 하나 더 늘었다.

 결국 고민은 밤이 되어도 풀리지 않았고, 이치마츠는 잠에 들 수 없었다. 눈을 감은 채 자리에 누워만 있었다. 슬슬 새벽이 될 때 쯤, 카라마츠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렸다 닫히고, 이치마츠는 눈을 떠 그 뒤를 따라 나섰다.
 딱히 의심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아니, 의심하는 게 맞았다. 의심을 지우고싶어 뒤를 쫓는 것이다. 이치마츠는 식당칸의 문 앞에 도착했다. 문에 달린 작은 창으로 언뜻 무언가가 보였지만 뚜렷하진 않았다. 이치마츠는 손을 들어 옷을 움켜쥐었다. 심장이 빠르게 요동친다.
 달빛이 창으로 들어온다. 자리에 누군가 앉아있는지 그림자가 창을 통해 보인다. 한 명이 아니었다. 둘. 그리고 인간이 아니었다. 날개, 뿔. 이치마츠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카라마츠가 뒤돌아 이치마츠를 바라보았고, 기차가 터널로 들어가 주변은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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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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