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캐해석
※이치카라 이외에 오소카라, 쵸로오소, 막내조 요소가 있습니다.
※종교는 창작종교이나 어디선가 본듯한 방식이 나올수 있습니다

 

 

 그는 영웅이라 불렸다. 여신께서 내려주신 마지막 희망이었다. 모두가 그를 찬양했고, 그를 존경했으며 그를 사랑했다. 그는 사람들을 위하여 악을 몰아내고, 모두가 행복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영웅에게는 그만한 시련과 고통이 따르는 법이다. 그는 결국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은 만큼 처참하게 죽어갔다.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모든 걸 원망한다, 모든 걸 저주한다. 이제 더이상 나는 너희를 위해 살지 않으리라.

 

 

 카라마츠는 책에서 눈을 떼고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는 곤히 잠이 든 채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날이 밝은진 오래였고, 곧 있으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카라마츠는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책을 옆에 내려둔다. 금색으로 적힌 멋들어진 글자에 햇빛이 비춰 반짝 거린다. 카라마츠는 가만 책을 바라보다 다시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손을 뻗는다.

 움찔. 닿기도 전에 이치마츠가 눈을 떴다. 급히 손을 거두고 책을 가방 안에 넣었다. 멋대로 가방을 뒤졌다고 혼이나는 건 아닐까. 화를 내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꽉 주먹을 쥐었다. 이치마츠는 아직 잠이 덜 깬 듯 멍하니 카라마츠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카라마츠는 흘끔 그런 이치마츠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일어나셨으면 식사하러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라마츠는 몸을 돌려 문고리를 잡았다. 어깨가 잡혔다. 돌려졌다. 벽에 등을 박았다. 카라마츠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깨를 움츠렸다. 눈을 굴려 이치마츠의 얼굴을 바라봤다. 차가운 표정, 알 수 없는 기운이 가득한 눈빛. 주변이 차가워진다고 느껴졌다. 카라마츠는 입술을 잘근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왜, 그러십니까?"

 

 이치마츠는 해야 할 말을 정리했다. 자신이 밤에 본 것이 꿈이 아니라면 그건 분명히. 하지만 어떻게? 악마란 존재는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 올 수 없는데.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냐, 그래도 무리야. 내가 다가가기만 해도 악마 한 둘은 그냥 도망쳤는 걸. 거기다 나는 기도까지 했어. 그걸 버틸 수 있을리가 없잖아. 그렇담 뭐지? 이건 뭐지? 이치마츠는 까득 이를 갈았다.

 쾅,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다. 카라마츠의 몸이 흔들렸다. 창밖에서 햇빛이 들어와 둘을 비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턱을 잡아들어 눈을 맞췄다. 카라마츠는 입을 꾹 다문 채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는 무어라 말하려 입을 열었다가 닫곤 카라마츠의 턱을 놓아주고 뒤돌아 제 머리를 쓸어올렸다. 하아, 길고 무거운 한숨이 내뱉어진다. 카라마츠는 주륵, 그대로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 앉았다.

 이치마츠는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카라마츠는 아무 말없이 이치마츠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이치마츠가 흘끔 카라마츠를 바라본다. 카라마츠는 뒤돌지 않고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햇빛이 들어오고 있다. 햇빛이 비추었던 카라마츠와 달빛이 비추었던 카라마츠를 떠올린다. 달빛에 비춰진 카라마츠는 꿈이 아닐까. 이치마츠는 눈을 감았다.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카라마츠는 먼저 기차에서 내려 이치마츠를 기다렸다. 기차에서 내린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꿈인지 현실인지도 모를 일이고, 일단은 끝까지 동행해야 하지 않을까.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다가갔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일단 오늘은 성당에서 쉬었다 갑시다.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그곳으로 가도록 하죠."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앞장 서 걸어갔다. 그 뒤를 카라마츠가 쫓는다. 이치마츠는 생각했다. 오늘 밤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확인 해 보자고. 지금의 성당이라면 그 어떤 악마라도 들어올 수 있다. 만약 카라마츠가 악마 또는 악마와 계약한 인간이라면 오늘 밤에 어제밤 만난 악마가 또 찾아 올 수도 있다. 거기다 성당은 달빛이 잘 드는 곳에 위치해있으니까. 이치마츠는 꽉 주먹을 쥐었다.

 성당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가장 높은 건물이기도 했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니까. 성당은 산 중턱에 있었다. 이치마츠는 성당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그곳을 관리하는 자를 만나 인사를 나눴다. 카라마츠는 밖에서 이치마츠를 기다리며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그다지 큰 마을은 아니었지만 여태까지 지나쳐왔던 그 어떤 마을보다 생기가 넘쳐보였다. 아이들은 밖에서 원하는 만큼 뛰어놀고 있고, 사람들은 서로 얘기를 나누거나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행복해보였다.

 

 "이리로 오십시오."

 

 아, 예.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불렀다. 카라마츠는 몸을 돌려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관리인이 카라마츠를 흘끔 위아래로 훑어보았지만 카라마츠는 신경쓰지 않았다. 이치마츠만 눈살을 찌푸리며 관리인을 노려 볼 뿐이었다. 이치마츠의 시선에 관리인은 금방 고개를 돌려버렸다.

 외곽, 그러니까 예배당을 지나 그 뒤쪽으로 가면 생활관이 나온다. 성직자들이 공부하고, 생활하는 곳으로 여분의 방을 두 세 개 정도 남겨놓는 것이 보통이다. 그 방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선교 활동을 하는 성직자들을 위한 방이다. 카라마츠와 이치마츠는 같은 방으로 배정받았다.

 

 "그럼 식사 시간 때 찾아뵙겠습니다."

 

 관리인은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갔다. 카라마츠는 침대에 털썩 누워버렸다. 며칠간 기차에서 좁은 의자에 누워잤더니 몸 이곳저곳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 같았다. 푹신한 베개에 얼굴을 묻고 추욱 늘어진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창문쪽으로 다가갔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위치의 방이다. 이치마츠는 눈살을 찌푸리며 마을을 훑었다.

 여기도 마찬가진가. 이치마츠는 쯧 혀를 차곤 커튼을 쳤다. 카라마츠는 금세 잠들어버린듯 미동도 없다. 그런 카라마츠를 보던 이치마츠는 그에게 다가가 이불을 덮어주고, 가방을 가지고 방을 나갔다. 카라마츠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들어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덮혀진 이불을 바라봤다. 하아, 긴 한숨을 내쉬곤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아직도 주무십니까?"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흔들어 깨웠다. 카라마츠는 눈을 부비며 일어나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옷이 바뀌어 있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어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내려다보다 고개를 까딱였다. 저녁 먹으러 갑시다. 저녁? 카라마츠는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보았다. 주황빛이 창문으로 희미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치마츠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이치마츠는 먼저 일 층으로 내려가 제 몫과 카라마츠 몫의 식사를 받아 테이블로 가져왔다. 카라마츠는 자리에 앉아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앞에 식사가 놓여진다. 가벼운 식사다. 숟가락을 들기 전에 두 손을 모으며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곧 아까 전 관리인이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관리인은 높은 직책에 앉아있는 성직자였던 모양이다. 카라마츠는 가늘게 떴던 눈을 감고 기도하는 시늉을 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식사를 하던 중 이치마츠가 물었다. 카라마츠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말없이 식사를 이어갔다. 카라마츠는 불편함에 식사를 다 하지도 못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치마츠는 그런 카라마츠를 말없이 바라보다 마저 식사를 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밖으로 나갔다.

 식사를 다 끝낸 이치마츠도 카라마츠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해는 어느새 넘어갔고, 달이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오늘 달빛은 그리 강하지 않으려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걷던 이치마츠는 걸음을 멈췄다. 익숙한 기운과 함께 소리가 들려온다. 이치마츠는 수풀로 들어가 천천히 소리가 난 쪽으로 다가갔다.

 

 "아직?"

 

 "조금만 더."

 

 조금이라니 얼마나? 형아, 지친다구-. 애처럼 굴지마. 칫. 카라마츠의 목소리다. 다른 목소리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했다. 이치마츠는 나무에 몸을 숨긴 채 고개만 밖으로 내밀었다. 달빛은 항상 타이밍이 좋았다. 달빛이 이치마츠가 보고자 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치마츠는 나무를 두 손으로 꽈악 붙잡았다.

 

 "배는 안 고파?"

 

 "딱히. 괜찮아."

 

 얼마전에 먹기도 했고. 그래? 응. 짤막한 대화들이 이어진다. 이치마츠는 기차에서 들었던 뼈를 씹는 소리를 떠올렸다. 역시 그 때 그쪽으로 가서 확인을 해봤어야 했는데. 까득 이를 갈며 이치마츠는 손으로 제 옷을 비틀어쥐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얼굴에 열이 오른다. 화가 나는 건가? 아니, 그것과는 조금 다른 거 같다. 이치마츠는 눈살을 찌푸렸다. 카라마츠가 대화하고 있던 자와 눈이 마주쳤다. 이치마츠는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카라마츠와 처음 만났을 때 같이 있었던 악마, 오소마츠다.

 

 "그 모습으로 있기 힘들지 않음?"

 

 "힘들지. 솔직히, 피곤하다."

 

 "그럼 여기선 그냥 원래 모습으로 있지 그래?"

 

 하지만 누가 보면 어떡하나? 괜찮아, 아무도 없다니까. 오소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치마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무언가가 쿵 하고 아래로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카라마츠는 그를 바라보다 머리를 쓸어올리더니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늘을 향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솟아난 뿔은 책에서만 본 저 바다 건너 어딘가에 살고있다는 크고 털많은 소의 것을 닮았다. 귀의 위치에 있던 사람의 귀는 털이 복슬한 짐승의 것으로 변해 아래로 향했다. 꼬리는 귀와는 어울리지 않게 파충류의 것으로, 굵고 단단해보였다. 신부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평범한 반팔티와 반바지로 바뀌었다. 다리는 평범한 사람의 다리였다. 마지막으로 등에는 커다란 날개가 달려 있었다.

 

 "이야, 그모습 오랜만에 본다. 그래, 오랜만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소감은?"

 

 "아까부터 계속 이상한 말만 하는군."

 

 카라마츠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본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풀이 흔들리며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카라마츠의 고개가 이치마츠쪽으로 돌아간다. 파랗게 빛나는 눈이 보인다. 이치마츠는 꽉 주먹을 쥐며 입을 다물었다. 카라마츠가 몸을 돌려 이치마츠쪽으로 다가온다.

 

 "카라마츠-."

 

 다가오려했다.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붙잡아 돌렸다. 카라마츠는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오소마츠를 바라봤다. 그 표정에 오소마츠는 상처라느니 뭐라느니 시끄럽게 떠들어대다가 제 입술을 두드렸다. 카라마츠는 하아, 길게 한숨을 내쉬곤 눈을 감았다. 오소마츠는 히죽 웃으며 이치마츠를 바라보다가 카라마츠의 입에 입을 맞췄다. 이치마츠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 성당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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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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