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캐해석

*RT이벤트 당첨자이신 리끼린님께 드리는 글 입니다.

*소재 주의

 

 

 

 이치마츠는 아랫입술을 잘근거렸다. 몇 번이고 눌를까, 말까 고민하다 어제야 겨우 눌렀다. 그 뒤에 통화를 했고, 약속을 잡았다. 오늘 만나기로 했다. 약속 시간은 오후 한 시. 그러나 지금 시간은 오후 3시. 못 오는 건가? 이치마츠는 시계를 보다 핸드폰을 끄고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못 오는 게 아니라 안 오는 게 아닐까? 이치마츠는 한 달 전 쯤에 집으로 찾아왔던 쵸로마츠와 카라마츠를 떠올렸다.

 

 쵸로마츠가 취직을 하고, 얼마 지나지않아 쵸로마츠와 카라마츠는 같이 집을 나갔다. 그 이전부터 연애를 하고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형제들이기에 붙잡지 않았다. 집에 있으면 오히려 불편하고, 사랑하기 힘들 거라 생각했으니까. 사실 그것보단 같은 얼굴을 한 형제끼리 붙어먹는 걸 보고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겠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집을 나가서 일 년이나 지날동안 카라마츠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쵸로마츠를 통해서 안부를 전해 올 뿐, 집에 얼굴을 비치거나 심지어 전화를 하지도 않았다. 바쁜 건가? 카라마츠도 일을 구한 건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쵸로마츠가 말하는 내용으로 보건데 그건 아니었다. 카라마츠는 그저 집에서 집안일을 하며 외출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왜?

 그러던 중에 한 달 전 카라마츠가 쵸로마츠와 함께 집으로 찾아왔다. 여섯 쌍둥이가 다같이 맞춘 파카를 입고서. 소매는 내려가 있었다. 그렇지만 일 년 넘도록 보지도, 얘기하지도 못한 형제가 온 것이기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이치마츠를 제외하곤. 이치마츠는 그것에 이상함을 느껴 쵸로마츠가 일 층에 있을 때 카라마츠를 이층으로 불러냈다.

 

 "오우, 무슨 일인가? Brother?"

 "됐고, 소매 걷어."

 

 이전과 같이 제대로 발음되지도 않는 영어를 내뱉으며 묻는 카라마츠에 이치마츠는 짧게 대답했다. 카라마츠는 그 말에 멈칫 하더니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몸을 돌렸다. 이치마츠는 그런 카라마츠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다 가까이 다가가 팔을 강하게 잡았다. 카라마츠의 어깨가 크게 움츠러들고, 고개가 숙여졌다. 이치마츠는 까득 이를 갈며 카라마츠의 손을 잡고 소매를 걷어올렸다.

 

 "야, 쿠소."

 

 "카라마츠."

 

 카라마츠에게 뭐라 말하려는 순간, 쵸로마츠가 올라왔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팔을 놓아주곤 방 구석으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카라마츠는 급히 소매를 내리곤 방밖으로 나가 저를 찾아 올라온 쵸로마츠를 맞이했다. 둘이 웃으며 얘기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뒤로 한 달 내내 카라마츠는 또 연락이 없었다.

 

 그렇게 한 달. 그리고 연락. 약속. 지각. 지금 시간은 3시 30분. 이치마츠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익숙한 검은 가죽 자켓이 보인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테이블을 두 손으로 내리쳤다. 딸랑이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그가 들어온다. 이치마츠는 다시 자리에 앉아 이미 미지근해질 대로 미지근해진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늦었네, 쿠소마츠."

 

 "미안하다, Brother!"

 

 흘끔 눈으로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아직 폴라티를 입기엔 더운 계절이것만 폴라티에다가 가죽 자켓까지 걸치고 있다. 츳, 혀를 찬 이치마츠는 고개를 까딱였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앞에 앉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앉을 때 이상한 행동을 보이진 않았다. 다리는 멀쩡한 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마실래?"

 

 "훗, 남자라면 역시 에스프레소-."

 

 "핫초코."

 

 에. 당황한 카라마츠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치마츠는 카운터로 향했다. 핫초코를 주문하고 흘끔 자리를 보았다. 카라마츠는 카페에서 틀어준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고 있는지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부끄럽지도 않나. 쯧, 이치마츠는 혀를 차고 핫초코를 들고서 자리로 돌아왔다. 핫초코를 건네고, 앞에 앉아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핫초코 뚜껑을 열어 후, 바람을 불어넣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다시 카라마츠를 위아래로 훑었다. 소매 안쪽은 보이지 않았다. 폴라티가 딱 붙어있으니 당연한 건가. 가죽 자켓도 한몫 했다. 저 가죽 자켓을 벗기고, 소매를 걷어올리면 그때처럼 멍이 잔뜩 들어있을까. 이치마츠는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야, 쿠소마츠."

 

 "훗,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건가? 이 형님에게 말해보거라."

 

 전혀 고민을 들어주는 태도가 아닌데. 이치마츠는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 한숨을 내쉬었다. 카라마츠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가만 바라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모르겠다. 애초에 제대로 말해주지 않을테지. 저번에도 숨기려 하지 않았는가. 이치마츠는 입을 꾹 다물었다가 겨우 열었다.

 

 "내 친구가 말이야."

 

 "이치마츠! 드디어 친구가 생겼는가? 축하한다!"

 

 아, 진짜. 이치마츠는 욕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고서 카라마츠를 노려보았다. 카라마츠는 급히 입을 다물고 눈을 빛내며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무슨 말이든 해보라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이치마츠는 바로 말하지 않고 뜸을 들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서둘러 말해봤자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을거야. 진짜 친구에게 생긴 문제인 것처럼, 천천히. 이치마츠는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그 친구가, 애인이 있는데."

 

 있는데? 카라마츠가 뒷말을 따라한다. 이치마츠는 또 뜸을 들인다. 카라마츠의 얼굴이 전에없이 진지해진다. 동생에게 처음 생긴-처음은 아니지만- 친구에 관련된 고민이라 그런지 진지하게 듣고 있다. 그렇다면 말해도 괜찮겠지. 이치마츠는 일부러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친구가 없는지, 누가 듣고있진 않은지 확인하려 하는 행동을 흉내낸다. 카라마츠는 그런 이치마츠를 따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시 둘 다 앞을 본다. 눈이 마주친다. 이치마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애인이, 때리는 거 같아."

 

 그런. 카라마츠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핫초코를 한 모금 마시곤 손으로 턱을 잡고 고민에 빠진다. 이치마츠는 그런 카라마츠를 가만 바라보았다. 절대 자기 얘기라고 생각은 안 하는 건가. 이치마츠는 속으로 혀를 차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연기는 솔직히 자신없지만, 거기다 전 연극부 앞에서 하려니 떨리지만 해야만했다.

 

 "근데, 걔는 절대 헤어질 생각이 없는 거 같아. 연락도 잘 안되고, 가끔 만날 때마다 몸에 상처가 가득한데."

 

 그런가. 카라마츠가 짧게 말하고 생각에 잠긴다. 이치마츠는 잠시 기다린다. 즉석에서 짜서 연기한 것 치곤 상당히 잘 들어간 모양이다. 카라마츠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다. 이치마츠는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미적지근한데다 얼음이 녹아 밍밍하지만 손에 땀이 밸 정도로 더워서 마시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가 설득해보는 건 어떤가? 친구가 하는 얘기라면 들어줄지도 모르지 않은가. 이치마츠의 소중한 친구니까, 그냥 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지?"

 

 카라마츠가 입을 열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가만 바라보았다. 카라마츠는 웃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눈을 아래로 내려 카라마츠의 목을 바라봤다. 폴라티에 가려져있지만 언뜻 파란 자국이 보여지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다시 시선을 카라마츠의 얼굴로 옮겼다. 카라마츠는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가봐야겠다. 쵸로마츠가 곧 올테니까."

 

 이치마츠도 따라 일어나 카라마츠의 손을 붙잡았다. 카라마츠는 가만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웃으며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숨을 내쉬곤 손에 힘을 주었다. 카라마츠의 몸이 바르르 떨린다. 이치마츠는 몇 번 입을 우물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만하고 집으로 돌아와."

 

 집에 있으면 안전 할 거야. 모두에게 말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 보는 눈앞에선 때리진 않겠지. 자기 이미지를 가장 중요시 하는 사람이잖아? 쵸로마츠는. 이치마츠는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카라마츠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이치마츠는 눈살을 찌푸렸다가 피고 손을 놓아주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어깨를 손으로 토닥였다.

 

 "나를 사랑해서 그런거야."

 

 나를 사랑하니까 놓치고싶지 않아서, 사랑하니까 불안해서 그런 거야. 이건 모두 애정표현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죽지 않아. 그리고 내 몸, 튼튼하다는 거 누구보다 네가 잘 알고 있잖아? 그렇지? 이치마츠. 카라마츠는 웃었다. 이치마츠는 까득 이를 갈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카라마츠의 손을 쳐내고 앞서서 카페를 걸어나갔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핫초코와 주스를 버리고, 컵을 정리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라. 이치마츠."

 

 "너도, 가끔은 연락 좀 해."

 

 아아, 되도록 하려고 노력하겠다. 카라마츠는 손을 흔들곤 느릿하게 걸어갔다. 이치마츠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 집으로 향했다. 가장 가까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수 십 만 Km는 떨어져버린 것만 같다. 이제 땅에 발을 디딜 수도 없고, 바다에 몸을 맡길 수도 없다. 이치마츠는 츳 혀를 차곤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을 발로 찼다. 이대로 우주를 떠돌아다니게 되겠지, 저는.

 

 

 "다녀왔나, 쵸로마츠!"

 

 문이 열리자마자 카라마츠는 뛰쳐나갔다. 쵸로마츠는 그런 카라마츠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곤 안으로 들어왔다. 카라마츠는 방긋 웃으면서 쵸로마츠의 겉옷과 가방을 들어주곤 방으로 들어갔다. 쵸로마츠는 넥타이를 느슨히 하며 방석 위에 앉았다. 카라마츠는 금방 방에서 나와 쵸로마츠의 앞에 앉았다.

 

 "오늘, 이치마츠 만나고 왔어?"

 

 아아! 물론이다! 그래? 무슨 얘기했어? 친구가 생겼다더군. 친구에 대한 얘기를 했다! 친구? 이치마츠가? 굉장하네. 그렇지? 걱정했는데 다행이야. 걱정했어? 물론이지, 동생이니까. 그렇구나.

 

 "쵸로마츠?"

 

 쿵. 등이 바닥에 부딪쳤다. 일 층이라 다행히 아래층에서 올라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카라마츠는 실없는 생각을 하다가 눈을 굴려 쵸로마츠를 바라봤다. 주먹이 위로 올라갔다가 뺨으로 빠르게 내려온다. 퍽, 하는 소리가 들리고 눈앞이 핑 돌았다. 카라마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쵸로마츠를 바라봤다.

 

 "거짓말 하지마."

 

 내가 다 듣고 있었다는 거 알잖아? 네가 어딜 가는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네가 뭘 하고있는지 모두 다 알고있다는 거. 알잖아? 쵸로마츠는 다시 주먹을 들었다. 몇 번이고 같은 뺨을 내리쳤다. 발갛다 못해 파랗게 멍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입에선 피가 흐른다. 카라마츠는 어지러운 머리로 제 목도 가누지 못한 채 축 늘어졌다.

 

 "대답해봐."

 

 그런 카라마츠의 옷을 잡아 들어올린다. 고개가 기울어진다. 카라마츠는 몇 번 눈을 감았다 뜨고 쵸로마츠를 바라봤다. 두 손을 들어 쵸로마츠의 뺨을 감싼다. 짧게 입을 맞췄다가 뗀다. 쵸로마츠가 눈살을 찌푸리며 까득 이를 간다. 카라마츠는 방긋 웃었다.

 

 "물론 알고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아주 마음에 들어. 쿵, 머리가 바닥에 부딪치고 카라마츠는 정신을 잃었다.

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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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캐해석

*색 마츠(이치+카라) 중심의 논커플링

 

 

 

 카라마츠는 단 한 번, 나무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나무였지만 여섯 명은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들과 별 관계도 없고, 딱히 피해라거나 이득을 줄만한 사건도 아니었으니까. 그런 여섯 명 중 하나였던 카라마츠가 나무를 보러간 건, 순전히 변덕이었다. 형제들은 모두 외출하고, 집에 혼자 남아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다가 든 생각. 나무를 보러 갔다올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어떤 이끌림이었다고, 카라마츠는 말한다. 그건 나무가 시들기 한 달 전의 일이다.

 나무를 보러온 사람은 많았다. 한창 나무가 푸른 잎을 뽐내고, 그 주변을 고래가 날아다니던 시기였으니까. 고래들은 사람들 가까이로 날아다니기도 해서 용기있는 사람들은 손을 뻗어 고래를 만져보기도 했다. 카라마츠는 그런 사람들 사이에 서서 가만 나무를 올려다 보다 걸음을 옮겨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마시지도 못하는 에스프레소를 시키고 자리잡고 앉아, 해가 지고 모든 사람들이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다.

 밤 10시. 느릿하게 카페를 빠져나와 다시 나무로 다가갔다. 사람들은 없었다. 거대한 조명만이 아래에서 위로 나무를 비춰주고 있을 뿐이었다. 카라마츠는 숨을 삼키고 나무에 다가갔다. 바람이 불며 나뭇잎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는가 싶더니 그 사이로 커다란 고래 여러 마리가 빠져나와 카라마츠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카라마츠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나무를 향해 두 손을 뻗었다.

 모든 조명이 꺼졌다. 주변이 어두워졌다. 카라마츠는 흠칫 몸을 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희미하게 고래들이 보인다. 고래들은 카라마츠의 주변을 맴돌다가 멈춰 서더니 울기 시작했다. 카라마츠는 다시 나무를 바라보았다. 나무에서 긴 가지 하나가 카라마츠 쪽으로 뻗어나왔다. 그 끝에는 파란 열매가 달려 있었다. 카라마츠는 그 열매를 두 손으로 잡아 따냈다.

 

 

 "어이, 카라마츠."

 

 카라마츠는 눈을 떴다. 이치마츠의 얼굴이 보인다.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리곤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치마츠가 쯧 혀를 차더니 물병을 내밀었다. 그걸 받아들고 물을 마셨다. 집에서 나와 북쪽으로 가면 갈 수록 몸 상태는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나올 때까지만 해도 걷지도 못했것만 완전히 홋카이도로 들어온 지금은 죽이 아닌 그 어떤 것을 먹어도 소화를 시킬 수 있게 되었고, 속이 울렁거리는 일도 없어졌다. 카라마츠는 제 몸상태가 나아짐에 따라 기분이 점점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얼굴을 살피다 물병을 받아들었다. 뚜껑을 닫아 대충 던져두고, 봉지에서 삼각김밥을 꺼내 카라마츠에게 건넸다. 카라마츠는 별 말 없이 포장을 벗겨내고 입에 밀어넣었다. 이치마츠도 제 몫의 삼각김밥을 입에 넣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안개가 낀 새벽녘인 탓인지 모든 게 흐릿하게 보였다. 그나마 가는 길에 편의점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아니었다면 이 위험한 때에 갓길에 차를 세워뒀어야 했을 거다. 이치마츠는 열려있는 편의점에 감사하며 두 번째 삼각김밥을 뜯었다.

 

 "조금 자는 게 좋지 않아?"

 

 봉지를 묶어 뒷좌석에 던져두고 몸을 운전대에 기대며 이치마츠가 물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말에 흘끔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이치마츠는 눈살을 찌푸리며 쯧 혀를 찼다. 밖으로 나온 이후로 제대로 잔 적이 없는 주제에, 또 자기를 거부한다. 몸 상태는 많이 좋아졌지만 언제 또 나빠질진 알 수 없는 주제에. 이치마츠는 협박을 해서라도 재울까 고민하다가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카라마츠는 몸을 웅크렸다. 고래의 노랫소리는 홋카이도에 들어오는 순간 더이상 들리지 않고 있었다. 과연 자신이 잘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만약, 만약에 제대로 찾아온 것이 아니라면. 그곳에 갔음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이치마츠에겐 뭐라 말해야 하는 걸까. 다른 형제들에겐, 부모님에겐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카라마츠는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곤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해가 뜨면 가자. 아마 오늘 점심 쯤이면 도착 할 거야."

 

 응.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어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창밖을 바라봤다. 안개는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하늘은 파랗게 변하고, 온통 짙은 회색빛이었던 주변은 서서히 제 빛을 찾아간다. 바람이 부는지 나뭇가지는 흔들리고, 주변에 고양이가 있었던 건지 노랗게 빛나는 동그라미 두 개가 후다닥 나무 아래를 지나간다. 카라마츠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을 감았다.

 

 "있잖나, 이치마츠."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이치마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길게 한숨을 내쉬곤 다시 다리에 얼굴을 묻었다. 이치마츠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 다시 카라마츠에게로 돌아오며 손을 뻗었다. 카라마츠의 등을 토닥인다.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고 이치마츠를 바라본다. 이치마츠는 손을 내리고 안전벨트를 맸다. 안개는 걷혔고, 주변은 제 색을 되찾았다.

 

 "벨트 매. 오늘 안에 홋카이도를 벗어나려면 얼른 갔다와야 하니까."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발을 신고, 벨트를 맨다. 차가 움직인다. 고양이 한 마리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것에 대해 이치마츠에게 말해 줄 수 없었다.

 

 

 가무이곶까지는 금방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단단히 옷을 입은 뒤에 차에서 내렸다. 카라마츠는 완전히 나무가 시들기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이치마츠는 그 사실에 기쁜 한편, 어딘가 불편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카라마츠는 그런 이치마츠의 상태를 눈치챘지만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이제, 끝이 눈앞이었다. 카라마츠는 심호흡을 하고 앞서 걸어갔다. 그 뒤를 이치마츠가 따라갔다.

 문을 지나 길을 따라 걷는다. 주변으로 펼쳐진 풍경에 입이 벌어지려는 것을 막으며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뒤를 따라 걸었다. 카라마츠는 주변은 둘러보지도 않고 오로지 길만 따라 걸어갔다. 평소의 카라마츠라면 이 풍경에 시끄럽게 떠들어 댔을텐데. 이치마츠는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걷기 시작한지 몇 분이 지났을까. 슬슬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치마츠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카라마츠도 그 앞에 멈춰 섰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고래가 노래하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처음 듣는 소리에 놀라 눈을 크게 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고래는 보이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손에 땀이 차는 걸 느끼며 몇 번 주먹을 쥐었다 폈다.

 

 "카라마츠."

 

 카라마츠가 다시 걷기 시작한다. 길의 끝을 향해 걷는다. 이치마츠는 급히 그 뒤를 따라갔다. 끝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 수록 카라마츠의 걸음도 빨라졌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뒤를 쫓는데 급급해 주변을 둘러볼 여유조차 없었다. 고래의 노래 소리는 끝으로 가면 갈 수록 점점 더 커져갔다. 이치마츠는 힘이 빠져가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카라마츠의 뒤를 쫓았다. 여기서 놓치면 더이상 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탁.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드디어 카라마츠를 잡았다. 카라마츠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카라마츠는 울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울컥 하고 차오르는 감정을 간신히 삼키며 입을 열었다. 고래의 노래 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바람 소리도, 파도 소리도 모두 먹어버릴 정도로 커져갔다. 이치마츠는 자신의 목소리마저 먹혀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하며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가지마!"

 

 바람이 불었다. 파도가 쳤다. 고래가 하늘을 덮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손을 풀어냈다. 그 손을 두 손으로 꼭 붙잡아주었다가 놓아주곤 뒤돌아 걸어갔다. 고래가 그 뒤를 따랐다. 노래가 들린다. 카라마츠의 노래다. 고래의 노래다. 고래가 카라마츠의 주위를 맴돈다. 이치마츠는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그 뒤를 쫓았지만 곧 울타리에 막혔다. 카라마츠는 절벽의 끝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치마츠."

 

 카라마츠가 뒤돌아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는 그 자리에 서서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고래는 카라마츠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마치 하늘이 바다인냥, 카라마츠의 주변이 물속인냥 그렇게 아름답게 헤엄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카라마츠는 양 팔을 벌리며 웃고 있었다. 나무가 시들기 전 카라마츠의 모습으로, 그렇게 웃고 있었다.

 

 "속보 기억해?"

 

 나무 뿌리가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그 속보. 이치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마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며 심호흡 했다.

 

 "혼슈는 얼마 안가서 나무로 뒤덮일 거야."

 

 뭐? 이치마츠는 눈을 크게 떴다. 카라마츠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들었다. 고래가 헤엄을 멈추고 카라마츠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카라마츠는 주먹을 쥐며 손을 내렸다.

 

 "나무의 뿌리는 혼슈 전체로 퍼져나갈 거야.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나무가 자라나. 거대한 숲이 생길 거야. 그리고."

 

 카라마츠는 몸을 돌렸다. 수평선이 아름답구나. 작게 중얼거리며 카라마츠는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이치마츠는 생각에서 빠져나와 카라마츠를 불렀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돌려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다시 한 발짝 앞으로 걸어나갔다. 고래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노래를 부른다. 춤을 춘다. 고래가 카라마츠의 등을 떠밀고 있다. 어서 떨어져 버리라고,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버리라고. 여태 불러온 고래의 노래는 카라마츠를 죽음으로 몰아넣기 위한 노래.

 

 "내가, 내가 여기서 죽지 않으면 홋카이도도 그렇게 될 거야. 그 다음엔 시코쿠나 규슈가. 그 뒤엔 다른 대륙들도."

 

 일본을 시작으로 바다를 제외한 모든 곳이 숲으로 뒤덮여 버릴 거야.

 

 "단순히 뒤덮이는 것 뿐만이 아니야. 모든 사람들이 말라 죽고, 모든 건물들이 무너질 거야."

 

 카라마츠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몸을 돌려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양 팔을 들어올리며 방긋 웃었다. 이치마츠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고래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어서 떨어져 버리라고, 어서 죽어버리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치마츠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몸을 떨었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치마츠. 너처럼 여린 아이에게 이런 부탁을 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나는, 네가 아니었더라도 어떻게든 이곳으로 왔을 거다. 아니면 고래가 나를 찾아왔겠지."

 

 이치마츠는 주먹을 쥐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카라마츠에게 다가가 평소처럼 멱살을 잡으며 개소리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고래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머릿속을 가득 채워 다른 생각은 할 수 조차 없게 만들었다. 다리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아 서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치마츠는 제 무력함에 분노했고, 카라마츠의 말에 분노했다.

 

 "멋지지 않은가, 이치마츠! 나는 전 세계를 위해 희생하는 영웅이 되는 것이다! 비록 혼슈는 나무로 뒤덮이겠지만 그래도 다른 곳들은 무사할테니까!"

 

 나는 세계를 위해 선택받은 거다! 멋지지 않은가! 하나도 멋지지 않아. 그게 뭐야? 결국 너는 죽을 운명이었단 거야? 죽을 수밖에 없단 거야? 죽어야만 한다는 거야? 그것도 스스로가 선택한 게 아니라 선택 받았기 때문에? 이게 무슨 말이야? 이게 무슨 소리야? 이게 무슨 개소리야? 이게 무슨 헛소리야?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미쳤어. 카라마츠는 미친 거야. 그러니까 어서 데리고 가야해. 집으로 데리고 가야해. 집에 데리고 가서, 그간 모아놓은 돈으로 병원에 데리고 가야해. 그래야 하는데. 그래야만 하는데. 이치마츠는 입을 다물었다.

 

 "이치마츠,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 해도 될까?"

 

 마지막이라는 말 하지마.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방긋 웃었다. 뭐가 웃긴 거야. 이치마츠는 속으로 소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이치마츠. 가족들에게 내가 했던 말들을 전해줘. 혼슈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라고."

 

 장례식은 하지 말고, 시신을 찾을 생각도 하지 말라고. 그리고 사랑한다고도 전해줘. 이치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마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고래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카라마츠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바라봤다. 파랗다. 먼길을 떠나기에 딱 좋은 날씨다.

 

 "그럼, 이치마츠. 언젠간 다시 만나자."

 

 고래는 노래를 불렀다. 바람 소리도, 파도 소리도, 울음 소리도 묻어버릴 정도로 크게 노래를 불렀다. 씨앗은 바다 깊숙한 곳으로 잠겼고, 고래도 씨앗을 따라 바닷속으로 돌아갔다. 이치마츠는 그 자리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다녀왔어."

 

 이치마츠는 집안으로 들어섰다. 가족들은 모두 거실에 모여있었다. 열 두 개의 눈이 자신에게로 향했다. 이치마츠는 주먹을 쥐며 고개를 숙였다. 입술을 잘근거리다 거실로 들어서며 문을 닫았다. 뉴스에서는 나무 뿌리에 대한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뿌리는 이미 도쿄를 벗어나기 직전까지 와 있었다. 이치마츠는 주머니에 들어있던 통장과 카드, 차키를 상 위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이사 가자."

 

홋카이도로, 이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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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캐해석

*색마츠(카라+이치) 중심 논커플링

 

 

 

 시끄러워. 이치마츠는 짜증을 내며 시끄럽게 울리고 있는 핸드폰의 배터리를 분리해냈다. 몇 시간 전 부터 일정한 간격으로 전화를 걸어오고 있었다. 시계는 자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손을 들어 제 앞머리를 쓸어올리곤 운전대에 이마를 박았다. 턱, 하고 어깨 위에 손이 올려진다. 그 손을 쳐낼까 생각하다 말고 허리를 폈다. 카라마츠의 손이 아래로 내려간다. 이치마츠는 그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가 쯧 혀를 찼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반응임에도 실제로 그렇게 반응하니 견디기 힘들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이치마츠가 물었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저었다. 힘들어하고 있었지만 고집은 여전했다. 이치마츠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다섯 시간 째였다. 중간에 기차로 갈아타려 했것만 기차는 운행을 하지 않았다. 차고지에 들어가 점검을 받을 수 조차 없는 상태라는 게 이유였다. 공항으로 갈까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남은 방법은 차를 타고 북쪽으로 가는 방법 뿐이었다. 거기서 또 뭘 타야했더라. 이치마츠는 쯧 혀를 차며 머리를 긁었다.

 카라마츠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이었다. 그렇다곤 하지만 언제 다시 나빠질지도 모르고. 솔직한 심정으로 이치마츠는 이쯤하고 돌아갔으면 했다. 하루를 꼬박 달려야 도착할까 말까다. 이치마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들었다. 일단 지금은 쉬어야 한다. 휴게소에 도착한지 이제 십 분째인가.

 

 "자. 해떠야 갈 거니까."

 

 툭 하니 내뱉었다. 카라마츠는 고개는 끄덕였지만 자고싶진 않았다. 잠이 오지 않는다. 계속해서 노래가 귓가에 맴돌았다. 이치마츠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이 소리는 북쪽으로 가면 갈 수록 더 커져서 어떨 땐 이치마츠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지금은 많이 잠잠해졌지만. 카라마츠는 안전벨트를 풀고, 신발을 벗었다. 발을 시트 위로 올리고 몸을 웅크려 다리를 끌어안았다. 다리사이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다.

 이치마츠는 흘끔 카라마츠를 보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휴게소의 늘어선 가게들도 모두 불이 꺼져있었다. 이치마츠는 후우, 길게 숨을 내쉬곤 눈을 감았다. 해가 뜨면 다시 열 시간을 넘게 차를 끌고 가야하니, 미리 자두는 게 좋겠지. 카라마츠는 알아서 잘 조절 할 거야. 이치마츠는 몸에서 힘을 뺐다.

 다시 눈을 떴다. 핸드폰에 배터리를 꼈다. 전원 버튼을 누를까 고민하다가 핸드폰을 켰다. 진동이 울린다. 수 십 통. 네 명이 번갈아가면서 계속 전화했나. 쯧, 혀를 차며 눈살을 찌푸렸다. 흘끔, 카라마츠를 보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재중 전화 목록을 쭉 내린다. 토도마츠, 오소마츠, 쵸로마츠, 쵸로마츠, 쥬시마츠, 오소마츠, 쵸로마츠, 엄마, 아빠. 그리고 진동. 오소마츠다. 이치마츠는 망설이다가 전화 버튼을 눌렀다.

 

 [이 새끼야!]

 

 이럴 줄 알고 스피커를 멀리 뒀지. 자신의 선견지명에 감탄하며 이치마츠는 핸드폰을 제쪽으로 끌어당겼다.

 

 "일단 진정해."

 

 [진정 할 수 있겠냐? 어?]

 [뭐야? 이치마츠? 이치마츠야?]

 [형! 카라마츠 형은? 카라마츠 형은 괜찮은 거야?]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아, 시끄러워. 이치마츠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아까보다 더 몸을 웅크리고 있다. 손을 들어 제 얼굴을 쓸어내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돌리고, 카라마츠와 자신의 사이로 옮겼다. 전화 너머는 여전히 시끄럽다. 누가 대표로 전화를 이어갈지를 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고서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일단 얘기를 들어볼게.]

 

 쵸로마츠가 이어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어깨를 두드렸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다가 몇 번 기침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카라마츠의 기침 소리에 저 너머가 다시 시끄러워졌다. 쵸로마츠가 제발 좀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자 다시 잠잠해졌다. 이치마츠는 생각을 정리했다. 어떻게 하면 납득시킬 수 있을까. 무슨 말을 해도 납득 시킬 수 없겠지. 이치마츠는 그냥 적당히 사실대로 말하기로 결정했다.

 

 "카라마츠가 홋카이도에 있는 가무이곶에 가고싶대. 그래서 가는 중이야."

 

 다시 소란. 그게 말이 돼?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카라마츠의 상태를 알고 하는 소리야? 지금 괜찮은 거야? 카라마츠, 아프진 않아? 춥진 않아? 홋카이도라니, 이 시기에? 제 정신이야? 미친 거 아니야? 얼른 돌아와! 허튼 생각 말고 일단 돌아와. 그 뒤에 다 같이 가자. 다 같이 가는 게 더 안전 할 거 아니야. 지금 운전하면서 전화하는 건 아니지? 지금 어디야? 우리가 그쪽으로 갈까? 잠깐, 잠깐.

 

 [일단, 일단 진정하자. 가무이곶엔 왜 가고싶은 거야? 카라마츠, 옆에 있지?]

 

 말해줘. 쵸로마츠가 모두를 진정시키고 묻는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들어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입을 다문 채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다. 쵸로마츠가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카라마츠를 달랜다. 네가 납득 할 만한 이유를 말해줘야 우리가 도와주거나 할 수 있어. 카라마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입을 몇 번 열었다 닫았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말, 할 수 없다. 미안하다."

 

 뭐? 자, 잠깐. 잠깐만. 카라마츠는 전화를 끊었다. 다시 전화가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몸을 웅크리고 다리에 얼굴을 묻었다. 이치마츠는 그 모습을 가만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받았다. 쵸로마츠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겨우겨우 그를 진정시키고,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대신해 형제들을 설득했다. 형제들은 이해하진 못했지만 카라마츠의 고집이라는 말에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이치마츠는 시계를 확인했다. 어느새 새벽 한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곤 편하게 몸을 기댔다. 몸에서 힘을 빼고, 천천히 잠에 빠져든다. 약간 열어둔 틈으로 찬 바람이 들어온다. 나쁘지 않아. 그렇게 해가 뜰 때까지 눈을 붙였다.

 

 

 "힘들진 않아?"

 

 이치마츠가 물었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는 쯧 혀를 차곤 운전대를 바로 잡았다. 해가 뜨자마자 달렸다. 지금 시간은 오후 한창 때였다. 밥은 대충 오는 길에 있던 휴게소에 들러 해결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면 이제 페리를 타러 가야한다. 시간이 맞는 페리가 있을까. 이치마츠는 아랫입술을 잘근거렸다.

 카라마츠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속이 울렁거린다. 차를 오래 탄 탓인가. 아니면 항상 죽만 먹다가 다른 걸 먹어서 위에 부담이 간 건가. 이치마츠에게 말해야 하나? 말하는 게 좋겠지. 그렇지만 여기서 차를 세울 수 있나? 카라마츠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살을 찌푸렸다.

 

 "속 안 좋아?"

 

 조금만 참아. 금방 세워줄게. 이치마츠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카라마츠는 차가 멈추자마자 밖으로 뛰쳐나가 도로변 풀숲으로 들어갔다. 이치마츠는 물을 들고 그 뒤를 따라갔다. 모든 것을 게워낸 카라마츠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숨을 몰아쉬었다. 물로 입을 헹궈내고 이치마츠에게 몸을 기댄다. 이치마츠는 그런 카라마츠를 부축해 다시 차로 돌아왔다. 카라마츠를 앉히고, 자신도 운전석에 앉는다.

 

 "이제 좀 진정됐어?"

 

 이치마츠가 묻는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방금 전까진 괜찮았는데. 이치마츠는 아까 전 먹은 걸 생각해보며 운전대를 잡았다. 차가 움직인다. 이치마츠는 운전에 집중하면서도 흘끔 카라마츠의 안색을 살폈다. 한결 가벼워진 얼굴이었지만 여전히 상태가 좋아보인다고 할 순 없었다. 다음 휴게소에서 쉬었다 가야하나. 고민하며 이치마츠는 라디오를 켰다.

 

 [-. 속보입니다. 지하철 붕괴 사고 현장에서 나무 뿌리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나무 뿌리는 도쿄 중심 광장에 자라난 나무의 뿌리로 확인되었으며 현재 빠른 속도로-.]

 

 카라마츠가 라디오를 껐다. 이치마츠는 흘끔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있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손을 치우고,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서는 전역으로 도쿄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사태가 퍼져나가고 있다는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이치마츠."

 

 이치마츠는 라디오를 껐다. 카라마츠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이치마츠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차안은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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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캐해석
*이치카라 데이를  기념하는 단편으로 쓰려했더니 편수가 나뉘어져 버렸습니다.
*동양풍의 어느 나라
*느리게 연재됩니다.
 
 
 
자, 그렇게 한 발 앞으로 내딛는 거다. 그렇지, 잘 한다. 그래, 그 다음엔 한 바퀴 돌고. 손을 위로 들어 올려 마치 상대를 유혹하는 것처럼. 상대의 시선을 네 손끝으로 옮겨오는 거야. 그 다음엔 그 손을 네 가슴 위로, 허리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해서 마무리. 그래, 잘 하네. 너라면 금방 익힐 수 있을 거야. 금방 이 세계에 적응해서 나처럼 다른 사람에게 춤을 전하며 살아가겠지. 싫은가? 싫다면, 사람을 잡아. 너를 이 시궁창에서 빠져나가게 해줄 사람을 말이야. 아주 간단한 일이지. 자, 자. 이걸로 오늘은 끝. 내일까지 연습 해 오도록 해. 너에게 거는 기대가 크단다.
 
카라마츠.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짙게 입술을 칠한다. 복숭아 향이 나는 향수를 목에 뿌리고, 머리를 높게 올려 묶는다. 언젠간 이 머리카락을 자르고 밖으로 나갈 일이 있겠지 기대하며 산지 어느새 십 여 년. 그 예전, 춤을 배울 때부터 가져왔던 기대는 이제는 색이 바래 버려서 희미해 질대로 희미해졌다. 다시 새기라면 새길 수 있었지만 더 이상 새길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저는 남에게 춤을 파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카라마츠는 후우, 길게 숨을 내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라마츠, 호명이에요. 금방 나갈게요. 짧은 대화가 오가고 문이 닫혔다. 거울을 들어 다시 한 번 제 상태를 확인한다. 머리카락이 삐져나온 곳은 없는지, 입술이 번지지는 않았는지, 옷을 반대로 입진 않았는지. 다행스럽게도 문제가 되는 곳은 없었다. 가슴이 없다는 게 좀 흠일까, 생각해봤지만 저는 남자이니 없는 게 당연하다. 근육이 있는 남자는 가슴이 크다는데 저에겐 근육을 기르는 사치는 허용되지 않았다. 하루하루 밥을 빌어먹기에 바쁜 삶이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천은 위로 올라올수록 하얗게 변해갔다. 그 위에 촘촘하게 새겨진 이름 모를 흰 꽃들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흩어져 마치 꽃잎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가슴 아래에 둘러져 있는 띠는 짙은 남색 빛을 띠고 있었는데 그 사이사이에 흰색 자수가 놓아져 누군가는 이를 보고 밤하늘이라 말했다.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흰 끈은 은하수라 불리곤 했다. 소매 아래로 나온 손은 답지 않게 가늘고 길었으며 언뜻 제 모습을 내비치는 다리는 털 하나 없이 매끈했다. 어떤 이는 이를 보고 타고난 것이냐 물었고, 카라마츠는 코웃음 치며 노력의 결과라 대답했다.
 
소리 없이 복도를 걸어간다. 흘끔흘끔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나쁘진 않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제 춤을, 제 몸을 살 돈도 없는 작자들에게 하나하나 반응 해 봤자 저에게 좋을 것이 하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럴 시간이 좀 더 돈 많은 사람을 위해, 저를 이 시궁창에서 건져내 줄 수 있는 사람을 위해 춤을 공부하고 몸을 가꾸는 게 더 이득이었다. 비록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를 시궁창에서 꺼내준 이는 없었지만.
걸음을 멈춘다. 이 유곽에서 가장 큰 방의 문 앞. 카라마츠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약하게 주먹을 쥐었다 펴고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였다. 옆에 서 있던 유곽의 시종들이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탁, 문이 끝까지 열렸다. 들어. 짧은 명령이 떨어진다. 카라마츠는 훤히 펼쳐진 오늘의 고난에 속으로 한탄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흐응.”
 
같은 얼굴, 다른 분위기. 카라마츠는 놀라 튀어나가려던 몸을 간신히 붙잡고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는 그런 카라마츠를 위아래로 훑더니 고개를 까딱였다. 카라마츠는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다가온 카라마츠를 다시 한 번 더 위아래로 훑어보다 입꼬리를 올렸다. 카라마츠는 척추가 훑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에 흠칫 몸을 떨었다.
 
“네가, 카라마츠?”
 
“그렇습니다만 특별히 저에게 따로 용무라도?”
 
“아, 그 전에.”
 
문 닫고, 모두 이 근처에서 물러나라고 해. 그의 말에 시종들이 고개를 끄덕이곤 문을 닫고 물러난다. 카라마츠는 저와 그만 남겨진 방에 불안한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그를 바라봤다. 그는 다시 한 번 카라마츠를 위아래로 훑어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카라마츠에게 손을 뻗어 어깨를 짚는가 싶더니 가슴을 훑고 허리를 잡는다. 카라마츠는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라 따질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입만 벌렸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벗어.”
 
“자, 잠깐.”
 
뒤에 이어진 그의 말에서야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카라마츠의 제지에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카라마츠의 옷을 붙잡았다. 카라마츠는 급히 제 옷을 붙잡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는 짜증 가득한 얼굴을 한 채로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카라마츠는 입을 꾹 다물고, 주먹을 쥐었다. 이대로 물러나선 안 된다. 저번에도 그냥 이대로 물러났다가 큰일을 당할 뻔하지 않았는가. 사전에 얘기되지 않은 행동은 계약 위반이다. 카라마츠는 마음을 다 잡고 입을 열었다.
 
“이는 사전에 얘기되지 않은 행위이며 그러므로 계약 위반입니다. 만약 이 행위를 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 상황에 따라 행위를 이어갈지 말지를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똑 부러지게 잘 말했다! 속으로 쾌재를 내지르며 카라마츠는 꽉 주먹을 쥐었다. 카라마츠의 말에 표정을 푼 그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다시 제 자리에 앉았다. 카라마츠는 그를 바라보다 그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팔짱을 끼고 카라마츠를 바라보다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마츠노 가의 삼남, 마츠노 이치마츠다. 나는 오늘 너한테 한 가지 권유를 하러 왔어. 그 전에 네가 적합한지 판단하기 위해 몸을 확인하고자 한 거다. 이거면 이유가 됐나?”
 
전혀 안 돼. 카라마츠는 바로 튀어나가려는 말을 억지로 삼키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치마츠는 그 대답에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제 머리를 짚더니 눈을 꽉 감았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이치마츠는 눈을 뜨고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나는 대역을 구하러 여기에 왔다. 그리고 너는 그 대역에 알맞아. 몸이야 천천히 바꿔 가면 되는 거고, 체격도 그다지 다르지 않으니까. 어때? 나랑 같이 가자.”
 
네가 원하는 건 뭐든 사주고, 네가 먹고 싶은 건 모두 먹게 해줄 수 있어. 더 이상 남을 위해서 춤을 추지 않아도 되고, 맺기 싫은 관계를 맺지 않아도 돼. 이 정도면 너한테 꽤 좋은 얘기 아니야? 만약 부족하다면, 돈도 줄게. 자, 어때?
카라마츠는 무릎 위에 올려둔 두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저 말이 무슨 뜻인지, 저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다. 이치마츠라는 저 남자는 저를 자신, 또는 누군가의 대역으로 세울 생각인 거다. 대역이 된다는 건 카라마츠라는 이름을 버린다는 뜻이고, 누군가로 오해받아 죽을 위험도 있다는 뜻이지. 카라마츠는 고개를 숙였다.
 
“길게도 아니야. 반 년, 반년만 그렇게 살아준다면. 너에게 돈과 자유를 줄게.”
 
여기서 벗어나고 싶잖아? 카라마츠는 눈을 꽉 감았다 뜨고 고개를 들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손을 뻗었다. 카라마츠는 후우, 길게 숨을 내쉬고 그 손을 잡았다. 이치마츠는 웃었지만 카라마츠는 웃을 수 없었다.
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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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캐해석
※논커플링 / 이로(색)마츠 중심


 말도 안되는 소리다. 이치마츠는 그렇게 소리치곤 방을 나왔다. 지금 상태에서 카라마츠가 밖으로 나간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겨우 조금 창문 열어둔 거 가지고 입술이 파랗게 질리는 주제에, 어딜 가겠다고 말하는 건지. 그것도 자신에게. 이치마츠는 아랫입술을 깨물곤 일부러 소리를 내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저를 부르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피하고 싶었다. 자신을 볼 때마다 도와달라 말해오는 카라마츠를,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 말하는 카라마츠를 보고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형제들과 부모님은 모두 바쁘고, 카라마츠는 남의 도움없인 물 한 모금조차 마실 수 없는 몸이었다. 그렇기에 이치마츠는 오늘도 방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카라마츠는 말없이 죽을 먹고, 물을 마셨다. 평소와 다르게 아무말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지만 이치마츠는 신경쓰지 않았다. 창문을 열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쪽으로 다가가며 손을 뻗는다. 창문을 밀어 연다. 바람이 뺨을 훑는다.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본다.

 "이치마츠."

 이치마츠는 대답하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길게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자신이 몇 번이고 도와달라 말해도 이치마츠는 듣지 않을테지. 자신도 무리한 부탁이란 걸 안다. 함부로 자신을 데리고 나갔을 때 이치마츠에게 쏟아질 원망, 분노, 실망. 모르지 않아. 그렇지만 자신은 가야만했다. 부르고 있으니까.
 카라마츠는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다리에도 팔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일어나려 애썼다. 허리를 앞으로 숙이고, 잘 굽혀지지 않는 다리를 손으로 잡아당겨 굽힌다. 손바닥으로 이불을 짚고, 다리에 힘을 줘 일어난다.
 힘이 빠져서 몇 번이고 엎어진다. 그래도 다시 일어난다. 이불이 깔려있다 해도 바닥에 부딪친 무릎과 몸이 아프다. 그래도 참고 일어난다. 부르고 있으니까. 이치마츠가 바라보고 있으니까.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떨린다.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겨우 한 발을 앞으로 내딛는다.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이치마츠를 바라보지 않고 옷장으로 향한다. 카라마츠는 손을 뻗어 옷장 문을 잡았다.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잘 열리지 않는다.

 "뭐하려고?"

이치마츠가 입을 열었다. 문도 열렸다. 카라마츠는 옷을 꺼내 바닥에 던져두었다. 두꺼운 코트, 두꺼운 후드, 두꺼운 바지. 장갑이랑 목도리, 귀마개도 꺼낸다. 최대한 몸을 따듯하게 할 수 있는 옷들을 꺼내 늘어두고 문을 닫았다.
 잠옷 단추를 푸른다. 손가락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통에 하나를 푸는데도 오랜시간이 걸린다. 겨우 상의를 벗고, 바지를 벗는다. 허리를 앞으로 숙이니 몸이 앞으로 기운다. 바닥이 가까워진다고 생각했을 때, 몸이 받쳐졌다.

 "왜 그렇게까지 무리해?"

 이치마츠가 묻는다.

 "부르고 있으니까."

 카라마츠가 대답한다. 후우, 무거운 한숨이 카라마츠의 어깨 위에 내려앉아진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몸을 일으키려했다. 이치마츠는 그런 카라마츠를 자리에 앉히고 바지를 벗겨주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얌전히 앉아있었다.
 이치마츠는 내키지않는단 표정을 지은 채 카라마츠에게 옷을 입혀주었다. 카라마츠는 얌전히 이치마츠를 따랐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목도리까지 단단히 매준 다음에 자신도 옷을 갈아입었다.

 "어디로 갈 생각인데?"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이치마츠는 여전히 내키지 않는다는 티를 팍팍 내며 카라마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쉬곤 눈을 감았다. 고래의 노래가 들려오는 곳, 그들이 자신을 부르는 곳.

 "홋카이도."

 홋카이도 샤코탄 반도의 가무이곶. 카라마츠는 천천히 눈을 뜨며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이치마츠는 눈살을 찌푸리고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화가 났다고 하기엔 부족하고, 어이없어 한다고 하기엔 사나운 얼굴. 카라마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치마츠는 한숨을 내쉬었다. 훗카이도라면 한참을 북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기차로 가기엔 카라마츠의 몸이 못 버틸 거 같고, 그쪽으로 올라갔을 때의 이동 수단도 문제다. 비행기로 가면 빠르긴 하지만 돈도 애매하고, 기차와 마찬가지로 도착했을 때의 이동수단이 문제다. 일단 기차로든 비행기로든 가서 차를 렌트할까? 돈이 얼마있지?
 잠시만 기다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말하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거실에 있는 찬창 서랍을 열어 안을 확인한다. 통장이 있다. 그간 모든 형제들의 월급에서 조금씩 떼어내 모아놓은 카라마츠의 병원비가 담긴 통장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통장을 열어 한장 한장 넘겼다.
 통장에 찍힌 금액이 보인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갔다 올 수 있겠지? 여행을 가본 적이 없어 얼마나 필요한지 알 수 없었다. 이치마츠는 통장과 카드를 주머니에 넣고, 핸드폰을 켰다. 인터넷에 검색해 비행기와 기차 시간을 알아본다.

 "그러고 보니."

 붕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기차가 지나가는 곳까지 서서히 무너져내려서 일부 구간은 기차가 지나가지 못하게 됐다. 도로는 멀리 돌아가야한다. 도쿄 공항은 위험하다며 운행을 중지했다. 이치마츠는 쯧 혀를 차며 핸드폰을 껐다. 그렇다면 지금 갈 수 있는 방법은. 이치마츠는 찬장 서랍을 다시 열었다.
 차키를 주머니에 넣고 위로 올라간다. 캐리어를 꺼내 두꺼운 옷들을 가득 담는다. 누구의 것인진 신경쓰지 않는다. 따듯한 옷, 그거면 돼. 이치마츠는 캐리어 문을 닫고 일어섰다. 카라마츠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가자."

 카라마츠를 업었다. 예전이라면 무리였을 그 행동이 이제는 너무 쉬워서 기분이 나빴다. 한 손으론 카라마츠를 받치고, 한 손으론 캐리어의 손잡이를 잡았다. 돌돌돌, 캐리어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시끄럽다. 쿵, 쿵. 계단을 내려오면서 부딪치는 소리가 짜증난다.
 현관에 카라마츠를 앉히고 신발을 신겨주었다. 다시 카라마츠를 등에 업고 집을 나섰다. 근처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찾아 문을 열고 카라마츠를 앉힌다. 안전벨트를 매주고 상태를 확인한다. 아직까진 괜찮아 보인다.

 "하루종일 차를 타고 갈 거야. 힘들면 말해."

 차 세우고 쉬었다 갈테니까. 뒷좌석에 캐리어를 넣어두고 운전석에 올라탄다. 차키를 꽂아 시동을 걸고, 안전벨트를 맨다. 핸들을 잡는다. 운전은 오랜만인데. 쯧 혀를 차며 눈살을 찌푸렸다.

 "연락, 안하고 가도 되겠지."

 하면 분명 미쳤다고 할 걸. 카라마츠의 말에 이치마츠가 툭 하고 내뱉는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곤 편히 몸을 기댔다. 이치마츠는 흘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엑셀을 밟았다.
 오랜만에 한 운전치곤 제법 순조롭다. 이치마츠는 운전에 집중을 하면서도 신호에 걸렸을 때마다 카라마츠의 상태를 살폈다. 카라마츠는 집에서 나온 이후로 이렇다 할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카라마츠에 이치마츠는 운전에 집중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덜컥 겁이 났다.
 이런 시기에 여행을 가는 사람은 없는 탓인지 아니면 퇴근시간도 출근시간도 아닌 낮인 탓인지 도로는 한산했다. 이치마츠는 네비게이션의 지시에 따라 운전을 하면서 흘끔 옆을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눈을 감고 있었다.

 "야, 쿠소마츠."

 이름을 불렀다. 카라마츠가 눈을 뜨고 이치마츠를 바라본다. 이치마츠는 신호를 확인하곤 차를 세웠다. 횡단보도로 몇몇 사람이 지나간다.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사람도 있고, 느릿하게 걸어가는 사람도 있다. 이치마츠는 사람들을 훑다가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고래가 부르고있단 게 무슨 뜻이냐?"

 초록불. 다시 차가 움직인다. 이치마츠는 시선을 앞에 고정했다. 카라마츠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대답하기 싫은 건지 이치마츠로선 알 수 없었기에 일단 기다렸다. 다음 신호에 걸릴 때까지 말을하지 않는다면 대답하기 싫은 거로 알 거라는 생각을 하며.

 "말 그대로다. 고래의 울음 소리가 들려."

 카라마츠가 입을 연 건, 다음 신호에 걸리기 바로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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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B파트 스포일러
※엄청 짧은 단문


 "카라마츠, 너 이 새끼!"

 쿵, 하고 엉덩이를 바닥에 찧은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노려봤다. 카라마츠는 그런 오소마츠를 내려다보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쉬곤 머리를 긁적였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먹이 날아올 거라 생각한 카라마츠는 손을 들었지만 주먹은 날아오지 않았다. 대신 담배 한 개비가 앞에 내밀어졌다.
 탁, 탁. 담배에 불이 붙고 깊게 빨아들이니 빠르게 타들어간다. 후우, 깊숙한 곳에서부터 내뱉어내며 고개를 들어올린다. 카라마츠는 흘끔 오소마츠를 바라본다. 오소마츠는 시선을 하늘에 고정한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고개를 숙였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끌고나온 건 자신이었지만 딱히 뭐라 할 말은 없었다. 그저 오소마츠가 동생에게 손찌검을 했기에 그를 때렸고, 집안이 엉망이 될까 끌고 나왔을 뿐이다. 똑같이 때리려면 얼른 때리지.

 "있잖아, 카라마츠."

 오소마츠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는 아까 전에 비해 많이 차분해져 있었다. 왜그러나, 오소마츠.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본다. 카라마츠는 담배를 떨어트리고 발로 밟았다. 아직 한참 남은 담배가 찌그러져 서서히 꺼져간다.

 "알고 있었잖은가, 오소마츠. 너도."

 카라마츠는 몸을 돌렸다. 머리 다 식혔으면 이만 들어가자. 다들 걱정하고 있을 거야. 뒤에선 아무말도 들려오지 않는다. 카라마츠는 문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일 분, 이 분. 십 분. 카라마츠는 몸을 돌렸다.

 "오소마츠."

 알고있잖은가. 너도. 카라마츠는 말을 끝맺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오소마츠는 바닥에 버려진 담배를 내려다보다 손을 들어올렸다. 눈이 가려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소리만은 들린다.

 "있잖아, 카라마츠."

 아아, 알고있잖은가. 오소마츠. 너도.

 "난, 인정 안 할 거니까. 계속, 집에 있을 거니까."

 카라마츠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쉬었다. 오소마츠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표정이 원하는대로 지어지지 않는다. 평소와는 다르게 아무런 표정도 지을 수 없다. 코끝이 찡해져오는 걸 간신히 참는 게 전부다.

 "들어가자, 오소마츠."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소마츠는 그 손을 잡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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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로카라] 아, 뜨겁다

2016. 3. 20.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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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월 모일
 오늘 아침은 계란 후라이, 채소 샐러드(오이, 토마토, 양배추, 키위 드레싱, 계란), 된장국, 쌀밥.
 이치마츠는 모처럼 자기몫의 식사를 깨끗하게 비웠다.
 아침을 먹은 후 이치마츠는 사료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편의점 앞 골목, 상점가 끝쪽 골목, 공원에서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었다.
 공원에서 한참동안 고양이와 같이 있다가 다섯시 쯤 집에 들어왔다.
 점심은 먹지 않았다. 저녁은 닭날개 구이, 미역국, 쌀밥. 자기몫을 다 먹고 나를 바라보길래 내 닭날개 구이를 반 나눠주었다. 아무래도 좋아하는 음식이었나보다.
 그 뒤 집에 찾아온 고양이를 품에 안고 시간을 보냈다. 이치마츠는 고양이를 쓰다듬다 아홉시 쯤에 욕실로 들어갔다.
 취침, 밤 열 한 시.


 이치마츠는 소름이 돋았다. 한 달쯤 전부터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고양이들과 시간을 보낼때, 그리고 잠에 들 때까지. 처음엔 기분이 나빴다. 자신의 시간을 방해받는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점차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한 달이다.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이치마츠는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차라리 이 고양이가 저를 바라보는 거면 좋으련만. 이치마츠는 그럴리가 없다며 고개를 젓고는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이치마츠에게 몸을 맡겼다. 이치마츠는 웃으며 고양이를 바라보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도, 누군가가 보고있다.
 신경쓰지 않고 싶었다. 그렇지만 걸리는 게 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저를 관찰하는 거야 집착이 심한 주제에 성실한 놈이라고 생각하며 넘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집에서마저 자신을 보는 눈이 있다는 것이었다. 집까지 들어와 있다는 건가? 그럴 리가. 혹시 감시카메라? 여섯 명 다 니트인 집이 비어있는 날은 흔치 않고, 그리 시간도 많지 않다. 그리고 그렇다면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시선을 느꼈어야지. 아마도 이 집안에서 시선을 느끼는 건 저뿐인 것 같았다.
 아, 머리 아파. 이치마츠는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고양이는 그런 이치마츠를 바라보며 길게 울더니 휙 하고 수풀로 들어가버렸다. 이치마츠는 고양이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다.


 모월 모일
 아침은 낫토와 날계란, 쌀밥. 그렇지만 이치마츠는 입맛이 없다며 먹지 않았다. 쵸로마츠가 어디 아프냐고 묻자 아프지 않다고 대답했다. 오소마츠가 열을 재보고 열은 없다고 말했다. 쥬시마츠가 감기 기운일지도 모르니 옷을 따듯하게 입으라고 충고했다. 토도마츠는 이치마츠 몫의 식사를 나에게 주었다.
 이치마츠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집에서 흰 털을 가진 고양이와 놀다가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내 옷을 장난감 삼아 놀았다. 이치마츠의 옷에도 흰털이 잔뜩 묻었지만 그냥 잠이 들었다. 고양이는 이치마츠가 잠들자 집을 나갔다.
 이치마츠가 일어나서 고양이를 찾다가 그만두었다. 일어난 시간은 저녁 일곱시. 부엌으로 가 어머니가 남겨놓은 카라아게를 먹었다. 중간에 오소마츠가 뺏어먹으려 하자 화를 냈다. 오소마츠가 왜 그러냐고 묻자 요즘 기분이 나쁘다고 대답했다.
 다같이 목욕탕에 갔다. 이치마츠가 비누를 가지고 장난을 쳤다. 이치마츠가 던진 비누를 밟고 미끄러졌다. 이치마츠는 웃었다. 쵸로마츠가 이치마츠에게 잔소리를 했다. 이치마츠는 듣지 않았다. 밖에 나와서 이치마츠는 입맛이 없다며 자기몫의 커피 우유를 마시지 않았다.
 밤 11시, 잠에 들었다.


 이치마츠는 끈적이는 시선에 점점 더 예민해졌다. 어떻게든 시선을 떼어내고 싶었지만 어디서 느껴지는 시선인지도 알 수가 없어 떼어 낼 수가 없었다. 시선의 출저라도 알면 좋으련만. 이치마츠는 쯧 혀를 차며 천장을 바라봤다.
 유일하게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다. 화장실. 여기까지 지켜볼 용기는 없었던 건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 건지. 이유가 어떻든 이치마츠에겐 다행이었다.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이 생긴 거니까. 이치마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시선은 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끈적해졌다. 얼마 전 목욕탕에 갔을 때도 시선을 느꼈다. 아무래도 이 시선의 주인은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 할 수 있는 사람, 즉 저의 형제 중 하나인 게 분명했다.
 의심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저를 놀려주려고 스토킹을 하고있다는 생각도 잠깐 했었다. 그게 일주일이 넘어가곤 그만했지만. 그렇게 성실한 사람들은 아니니까. 그런데 있었다. 형제 중에 그렇게 성실한 사람이 있었다. 그 성실함을 취직에 썼다면 쵸로마츠가 백팔배라도 했을 만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다! 이치마츠는 후우,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통통. 이치마츠, 멀었어? 오소마츠다. 이치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오소마츠는 이치마츠를 흘끔 보더니 후다닥 화장실로 들어가 쾅 문을 닫았다. 이치마츠는 닫힌 문을 바라보다 머리를 긁적이곤 거실로 향했다. 끈끈이가 발에 붙은 것마냥 걸음이 잘 떼어지지 않았다.


 모월 모일
 아침은 날계란 비빔밥. 오늘은 이치마츠가 깨끗이 그릇을 비웠다.
 아침을 먹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요즘 화장실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왜지? 모르겠다. 화장실 근처에 앉아서 시간을 재보았다. 삼십분만에 밖으로 나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쵸로마츠에 의해 꺼내졌다.
 집에서 고양이와 놀았다. 오늘은 삼색 고양이었다. 오늘도 내 옷을 가지고 고양이와 놀았다. 털이 잔뜩 묻었다. 이치마츠에게도 잔뜩 묻었지만 그상태로 고양이와 방바닥에서 잠이 들었다. 얇은 이불을 덮어주었다.
 저녁은 컵라면. 이치마츠는 불평했지만 깨끗하게 비웠다. 오늘은 첫 번째로 욕실에 들어갔다. 다음 차례가 나였다. 깨끗이 썼는지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조금 아쉽다.
 자기 전까지 텔레비전을 시청. 그러나 금방 흥미를 잃었는지 고양이 장난감을 흔들며 생각에 잠겼다.
 자정에 잠이 들었다.


 이치마츠는 제 손에 들린 공책을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이 글씨체는 분명 카라마츠의 글씨체였다. 이치마츠는 노트를 앞뒤로 훑었다. 정확하게 두 달치. 이치마츠는 공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치마츠?"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방긋 웃으며 이치마츠에게 다가왔다. 이치마츠는 뒷걸음질 치다 벽에 등을 부딪쳤다. 카라마츠는 떨어진 공책을 주워들었다. 이치마츠는 떨리는 손을 등뒤로 감추며 어깨를 움츠렸다.

 "잠이 안 오면 자장가라도 불러줄까?"

 공책을 서랍 속에 넣어둔 카라마츠가 웃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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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카라 이외에 오소카라, 쵸로오소, 막내조 요소가 있습니다.
※종교는 창작종교이나 어디선가 본듯한 방식이 나올수 있습니다
※많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역은 한산했다. 이치마츠는 기차표를 끊으려다 말고 카라마츠를 돌아보았다. 카라마츠는 멍하니 이치마츠를 바라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이치마츠는 그런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손바닥을 카라마츠에게 내밀었다. 카라마츠는 멍하니 내밀어진 손바닥을 바라보다 손을 들어 그 위에 올려놓았다.

 "갭니까?"

 아니, 일단은 사람인데. 기차표 살 돈 있냐고 하는 겁니다, 지금. 아, 그, 네. 카라마츠는 얼굴을 붉히며 급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지갑을 바라보다 얼굴을 바라봤다.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돈이 있을 거 같진 않았는데. 선뜻 큰 액수의 종이를 건네온다.
 이치마츠는 가만 돈을 바라보다가 받아들곤 기차표를 사러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카라마츠는 자신의 지갑을 펼쳤다. 혹시 몰라 비상금으로 넣어다니던 돈이 있어 다행이다. 주머니에 지갑을 다시 넣어두고 이치마츠를 기다렸다.
 이치마츠는 얼마 지나지않아 돌아왔다. 카라마츠에게 기차표 하나를 건네고, 승차장으로 향했다. 카라마츠는 그 뒤를 따라 걸어가며 기차표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행선지가 적혀있다. 이곳은. 카라마츠는 시선을 이치마츠의 등으로 옮겼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 카라마츠는 승차장에 선 이치마츠의 옆으로 다가갔다.

 "와아-."

 그때 기차가 들어왔다. 시끄러운 소리와 검은 연기를 내뱉는 기차는 서서히 멈춰 섰다. 감탄하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카라마츠는 조심스럽게 기차에 다가갔다. 기차 문이 열리고 몇몇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린다. 카라마츠는 방긋 웃으면서 기차 문으로 다가갔다. 이 기차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
 이치마츠는 기차를 처음 본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그의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얼떨결에 끌려간 카라마츠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기차에 태워졌다. 이치마츠는 표를 확인하며 복도를 걷다 멈춰 섰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표를 확인했다.
 방이 나눠져있는 기차였다. 이치마츠는 표에 적힌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카라마츠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가 문을 닫았다. 이치마츠는 거의 눕다시피 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마주보고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승차장이 보인다. 승차장은 텅 비어있었다.

 "저, 뭐 좀 물어봐도 됩니까?"

 뭘? 카라마츠의 말에 이치마츠가 거의 감았던 눈을 뜬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돌려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머리를 긁적였다. 나중에 물어볼 걸 그랬나. 그렇지만 이미 입을 열었으므로 이치마츠가 뭐라 생각하든 질문을 이어가기로 했다.

 "길에도, 역에도 왜 이렇게 사람이 없습니까?"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기차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더니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람이 없는 역이 뒤로 물러나고, 한산한 풍경들이 창밖을 스쳐지나간다. 이치마츠는 눈만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정말 궁금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츳 혀를 찼다.

 "악마 때문입니다."

 악마, 말입니까? 네, 악마. 악마가 왜?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정말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쯧, 한 번 더 혀를 찼다. 이런 작자가 어떻게 성직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진짜 성직자가 맞는 걸까? 애초에 그는 성직자라 자신을 소개한 적이 없었다. 그냥 옷만 주워입은 사람일 지도 모른다. 그것도 밖에 한 번도 안 나와본.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행동들을 보여줄 리가 없으니까. 이치마츠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악마들이 날뛰고 있습니다. 예전이라면 계약자 외에는 건드리지 않았을 놈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선 시민들을 공격하고 있죠."

 마치 목줄 풀린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말입니다. 이치마츠는 뒷말은 붙이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카라마츠는 굳은 얼굴로 이치마츠를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치마츠는 다시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낯선 풍경들이 스쳐간다.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었다. 카라마츠는 생각에 잠긴듯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굳어있었고, 이치마츠는 눈을 감고 얕은 잠에 빠져들었다. 덜컹,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기차는 달리고 있다.

 "후우."

 카라마츠는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이치마츠의 몸이 살짝 떨렸다. 카라마츠는 급히 입을 막고는 허리를 구부렸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다시 허리를 폈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시간이 꽤 지난 건지 하늘이 서서히 다른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느리게 눈을 떴다. 노을이 지고 있는지 창문으로 붉은 빛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빛은 카라마츠를 비추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멍하니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다시 눈을 감았다. 손을 몇 번 폈다 쥐었다 하다 다시 눈을 떴다. 붉게 물든 얼굴과 짙은 그림자가 눈에 들어온다. 손끝이 저리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질문을 던졌다. 카라마츠가 고개를 돌려 이치마츠를 바라본다. 그림자가 진 얼굴과 붉은 빛이 도는 얼굴이 저를 향한다. 이치마츠는 잠시 입을 벌린 채로 바라만 보다 자세를 바로했다. 카라마츠는 입을 우물거리다가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여신께서, 내리신 세 번째 형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 형벌 말입니까? 네, 기억이 잘 안 나서.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고개를 가방을 열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하는 행동을 바라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이치마츠는 가방에서 책을 꺼내 펼쳐들었다. 페이지를 넘기며 내용을 찾던 이치마츠는 손가락으로 그 부분을 짚었다.

 "내 너희에게 두 번이나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감사하는 마음을 잊었으니, 다시 한 번 벌을 내리겠노라. 이 벌은 죽음처럼 때가 있는 것도 아니요, 질병처럼 낫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어리석은 아이들아, 내 마지막 경고이니 부디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지어다."

 하며 여신께서 손을 휘두르니 강한 바람이 불어 모든 걸 부수었다. 이치마츠는 차분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내리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멍한 얼굴로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헛기침을 하며 귀를 문질렀다.
 그래서, 세 번째 형벌은 무엇입니까? 자연재해 입니다. 자연재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며 많은 것들을 앗아가는. 카라마츠는 여신이 내린 형벌들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가만 바라보다 책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카라마츠는 생각에서 빠져나와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치마츠는 흘끔 카라마츠를 한 번 보곤 주머니에서 기차표를 꺼내들었다. 아직 도착하려면 한참 남았는데.

 "그러고 보니."

 당신은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카라마츠가 물어온다. 시선은 여전히 창밖으로 향한 채였다. 얼굴이 주황빛이다. 이치마츠는 기차표를 만지작 거리다 주머니에 넣곤 고개를 돌렸다. 창밖은 온통 주황빛이었다. 노을때문인가.

 "저는."

 이치마츠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기차표를 쓰다듬었다.

 "여신님을 뵈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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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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