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캐해석

*색 마츠(이치+카라) 중심의 논커플링

 

 

 

 카라마츠는 단 한 번, 나무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나무였지만 여섯 명은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들과 별 관계도 없고, 딱히 피해라거나 이득을 줄만한 사건도 아니었으니까. 그런 여섯 명 중 하나였던 카라마츠가 나무를 보러간 건, 순전히 변덕이었다. 형제들은 모두 외출하고, 집에 혼자 남아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다가 든 생각. 나무를 보러 갔다올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어떤 이끌림이었다고, 카라마츠는 말한다. 그건 나무가 시들기 한 달 전의 일이다.

 나무를 보러온 사람은 많았다. 한창 나무가 푸른 잎을 뽐내고, 그 주변을 고래가 날아다니던 시기였으니까. 고래들은 사람들 가까이로 날아다니기도 해서 용기있는 사람들은 손을 뻗어 고래를 만져보기도 했다. 카라마츠는 그런 사람들 사이에 서서 가만 나무를 올려다 보다 걸음을 옮겨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마시지도 못하는 에스프레소를 시키고 자리잡고 앉아, 해가 지고 모든 사람들이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다.

 밤 10시. 느릿하게 카페를 빠져나와 다시 나무로 다가갔다. 사람들은 없었다. 거대한 조명만이 아래에서 위로 나무를 비춰주고 있을 뿐이었다. 카라마츠는 숨을 삼키고 나무에 다가갔다. 바람이 불며 나뭇잎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는가 싶더니 그 사이로 커다란 고래 여러 마리가 빠져나와 카라마츠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카라마츠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나무를 향해 두 손을 뻗었다.

 모든 조명이 꺼졌다. 주변이 어두워졌다. 카라마츠는 흠칫 몸을 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희미하게 고래들이 보인다. 고래들은 카라마츠의 주변을 맴돌다가 멈춰 서더니 울기 시작했다. 카라마츠는 다시 나무를 바라보았다. 나무에서 긴 가지 하나가 카라마츠 쪽으로 뻗어나왔다. 그 끝에는 파란 열매가 달려 있었다. 카라마츠는 그 열매를 두 손으로 잡아 따냈다.

 

 

 "어이, 카라마츠."

 

 카라마츠는 눈을 떴다. 이치마츠의 얼굴이 보인다.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리곤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치마츠가 쯧 혀를 차더니 물병을 내밀었다. 그걸 받아들고 물을 마셨다. 집에서 나와 북쪽으로 가면 갈 수록 몸 상태는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나올 때까지만 해도 걷지도 못했것만 완전히 홋카이도로 들어온 지금은 죽이 아닌 그 어떤 것을 먹어도 소화를 시킬 수 있게 되었고, 속이 울렁거리는 일도 없어졌다. 카라마츠는 제 몸상태가 나아짐에 따라 기분이 점점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얼굴을 살피다 물병을 받아들었다. 뚜껑을 닫아 대충 던져두고, 봉지에서 삼각김밥을 꺼내 카라마츠에게 건넸다. 카라마츠는 별 말 없이 포장을 벗겨내고 입에 밀어넣었다. 이치마츠도 제 몫의 삼각김밥을 입에 넣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안개가 낀 새벽녘인 탓인지 모든 게 흐릿하게 보였다. 그나마 가는 길에 편의점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아니었다면 이 위험한 때에 갓길에 차를 세워뒀어야 했을 거다. 이치마츠는 열려있는 편의점에 감사하며 두 번째 삼각김밥을 뜯었다.

 

 "조금 자는 게 좋지 않아?"

 

 봉지를 묶어 뒷좌석에 던져두고 몸을 운전대에 기대며 이치마츠가 물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말에 흘끔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이치마츠는 눈살을 찌푸리며 쯧 혀를 찼다. 밖으로 나온 이후로 제대로 잔 적이 없는 주제에, 또 자기를 거부한다. 몸 상태는 많이 좋아졌지만 언제 또 나빠질진 알 수 없는 주제에. 이치마츠는 협박을 해서라도 재울까 고민하다가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카라마츠는 몸을 웅크렸다. 고래의 노랫소리는 홋카이도에 들어오는 순간 더이상 들리지 않고 있었다. 과연 자신이 잘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만약, 만약에 제대로 찾아온 것이 아니라면. 그곳에 갔음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이치마츠에겐 뭐라 말해야 하는 걸까. 다른 형제들에겐, 부모님에겐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카라마츠는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곤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해가 뜨면 가자. 아마 오늘 점심 쯤이면 도착 할 거야."

 

 응.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어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창밖을 바라봤다. 안개는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하늘은 파랗게 변하고, 온통 짙은 회색빛이었던 주변은 서서히 제 빛을 찾아간다. 바람이 부는지 나뭇가지는 흔들리고, 주변에 고양이가 있었던 건지 노랗게 빛나는 동그라미 두 개가 후다닥 나무 아래를 지나간다. 카라마츠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을 감았다.

 

 "있잖나, 이치마츠."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이치마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길게 한숨을 내쉬곤 다시 다리에 얼굴을 묻었다. 이치마츠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 다시 카라마츠에게로 돌아오며 손을 뻗었다. 카라마츠의 등을 토닥인다.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고 이치마츠를 바라본다. 이치마츠는 손을 내리고 안전벨트를 맸다. 안개는 걷혔고, 주변은 제 색을 되찾았다.

 

 "벨트 매. 오늘 안에 홋카이도를 벗어나려면 얼른 갔다와야 하니까."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발을 신고, 벨트를 맨다. 차가 움직인다. 고양이 한 마리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것에 대해 이치마츠에게 말해 줄 수 없었다.

 

 

 가무이곶까지는 금방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단단히 옷을 입은 뒤에 차에서 내렸다. 카라마츠는 완전히 나무가 시들기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이치마츠는 그 사실에 기쁜 한편, 어딘가 불편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카라마츠는 그런 이치마츠의 상태를 눈치챘지만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이제, 끝이 눈앞이었다. 카라마츠는 심호흡을 하고 앞서 걸어갔다. 그 뒤를 이치마츠가 따라갔다.

 문을 지나 길을 따라 걷는다. 주변으로 펼쳐진 풍경에 입이 벌어지려는 것을 막으며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뒤를 따라 걸었다. 카라마츠는 주변은 둘러보지도 않고 오로지 길만 따라 걸어갔다. 평소의 카라마츠라면 이 풍경에 시끄럽게 떠들어 댔을텐데. 이치마츠는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걷기 시작한지 몇 분이 지났을까. 슬슬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치마츠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카라마츠도 그 앞에 멈춰 섰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고래가 노래하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처음 듣는 소리에 놀라 눈을 크게 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고래는 보이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손에 땀이 차는 걸 느끼며 몇 번 주먹을 쥐었다 폈다.

 

 "카라마츠."

 

 카라마츠가 다시 걷기 시작한다. 길의 끝을 향해 걷는다. 이치마츠는 급히 그 뒤를 따라갔다. 끝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 수록 카라마츠의 걸음도 빨라졌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뒤를 쫓는데 급급해 주변을 둘러볼 여유조차 없었다. 고래의 노래 소리는 끝으로 가면 갈 수록 점점 더 커져갔다. 이치마츠는 힘이 빠져가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카라마츠의 뒤를 쫓았다. 여기서 놓치면 더이상 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탁.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드디어 카라마츠를 잡았다. 카라마츠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카라마츠는 울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울컥 하고 차오르는 감정을 간신히 삼키며 입을 열었다. 고래의 노래 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바람 소리도, 파도 소리도 모두 먹어버릴 정도로 커져갔다. 이치마츠는 자신의 목소리마저 먹혀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하며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가지마!"

 

 바람이 불었다. 파도가 쳤다. 고래가 하늘을 덮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손을 풀어냈다. 그 손을 두 손으로 꼭 붙잡아주었다가 놓아주곤 뒤돌아 걸어갔다. 고래가 그 뒤를 따랐다. 노래가 들린다. 카라마츠의 노래다. 고래의 노래다. 고래가 카라마츠의 주위를 맴돈다. 이치마츠는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그 뒤를 쫓았지만 곧 울타리에 막혔다. 카라마츠는 절벽의 끝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치마츠."

 

 카라마츠가 뒤돌아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는 그 자리에 서서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고래는 카라마츠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마치 하늘이 바다인냥, 카라마츠의 주변이 물속인냥 그렇게 아름답게 헤엄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카라마츠는 양 팔을 벌리며 웃고 있었다. 나무가 시들기 전 카라마츠의 모습으로, 그렇게 웃고 있었다.

 

 "속보 기억해?"

 

 나무 뿌리가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그 속보. 이치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마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며 심호흡 했다.

 

 "혼슈는 얼마 안가서 나무로 뒤덮일 거야."

 

 뭐? 이치마츠는 눈을 크게 떴다. 카라마츠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들었다. 고래가 헤엄을 멈추고 카라마츠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카라마츠는 주먹을 쥐며 손을 내렸다.

 

 "나무의 뿌리는 혼슈 전체로 퍼져나갈 거야.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나무가 자라나. 거대한 숲이 생길 거야. 그리고."

 

 카라마츠는 몸을 돌렸다. 수평선이 아름답구나. 작게 중얼거리며 카라마츠는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이치마츠는 생각에서 빠져나와 카라마츠를 불렀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돌려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다시 한 발짝 앞으로 걸어나갔다. 고래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노래를 부른다. 춤을 춘다. 고래가 카라마츠의 등을 떠밀고 있다. 어서 떨어져 버리라고,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버리라고. 여태 불러온 고래의 노래는 카라마츠를 죽음으로 몰아넣기 위한 노래.

 

 "내가, 내가 여기서 죽지 않으면 홋카이도도 그렇게 될 거야. 그 다음엔 시코쿠나 규슈가. 그 뒤엔 다른 대륙들도."

 

 일본을 시작으로 바다를 제외한 모든 곳이 숲으로 뒤덮여 버릴 거야.

 

 "단순히 뒤덮이는 것 뿐만이 아니야. 모든 사람들이 말라 죽고, 모든 건물들이 무너질 거야."

 

 카라마츠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몸을 돌려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양 팔을 들어올리며 방긋 웃었다. 이치마츠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고래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어서 떨어져 버리라고, 어서 죽어버리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치마츠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몸을 떨었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치마츠. 너처럼 여린 아이에게 이런 부탁을 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나는, 네가 아니었더라도 어떻게든 이곳으로 왔을 거다. 아니면 고래가 나를 찾아왔겠지."

 

 이치마츠는 주먹을 쥐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카라마츠에게 다가가 평소처럼 멱살을 잡으며 개소리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고래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머릿속을 가득 채워 다른 생각은 할 수 조차 없게 만들었다. 다리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아 서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치마츠는 제 무력함에 분노했고, 카라마츠의 말에 분노했다.

 

 "멋지지 않은가, 이치마츠! 나는 전 세계를 위해 희생하는 영웅이 되는 것이다! 비록 혼슈는 나무로 뒤덮이겠지만 그래도 다른 곳들은 무사할테니까!"

 

 나는 세계를 위해 선택받은 거다! 멋지지 않은가! 하나도 멋지지 않아. 그게 뭐야? 결국 너는 죽을 운명이었단 거야? 죽을 수밖에 없단 거야? 죽어야만 한다는 거야? 그것도 스스로가 선택한 게 아니라 선택 받았기 때문에? 이게 무슨 말이야? 이게 무슨 소리야? 이게 무슨 개소리야? 이게 무슨 헛소리야?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미쳤어. 카라마츠는 미친 거야. 그러니까 어서 데리고 가야해. 집으로 데리고 가야해. 집에 데리고 가서, 그간 모아놓은 돈으로 병원에 데리고 가야해. 그래야 하는데. 그래야만 하는데. 이치마츠는 입을 다물었다.

 

 "이치마츠,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 해도 될까?"

 

 마지막이라는 말 하지마.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방긋 웃었다. 뭐가 웃긴 거야. 이치마츠는 속으로 소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이치마츠. 가족들에게 내가 했던 말들을 전해줘. 혼슈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라고."

 

 장례식은 하지 말고, 시신을 찾을 생각도 하지 말라고. 그리고 사랑한다고도 전해줘. 이치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마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고래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카라마츠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바라봤다. 파랗다. 먼길을 떠나기에 딱 좋은 날씨다.

 

 "그럼, 이치마츠. 언젠간 다시 만나자."

 

 고래는 노래를 불렀다. 바람 소리도, 파도 소리도, 울음 소리도 묻어버릴 정도로 크게 노래를 불렀다. 씨앗은 바다 깊숙한 곳으로 잠겼고, 고래도 씨앗을 따라 바닷속으로 돌아갔다. 이치마츠는 그 자리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다녀왔어."

 

 이치마츠는 집안으로 들어섰다. 가족들은 모두 거실에 모여있었다. 열 두 개의 눈이 자신에게로 향했다. 이치마츠는 주먹을 쥐며 고개를 숙였다. 입술을 잘근거리다 거실로 들어서며 문을 닫았다. 뉴스에서는 나무 뿌리에 대한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뿌리는 이미 도쿄를 벗어나기 직전까지 와 있었다. 이치마츠는 주머니에 들어있던 통장과 카드, 차키를 상 위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이사 가자."

 

홋카이도로, 이사 가자.

 

 

 

 

 

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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