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부르는 길

 

카라마츠 형이 사라졌다. 징후는 없었다.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도 아니다. 카라마츠 사변이라 불리는 사건 때는, 심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뒤에 사과를 했다. 모두 다. 카라마츠 형은 용서했다. 몇 달이 지났다. 갑자기 사라 질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형은 어디로 가 버린 걸까?

 

카라마츠 형이 사라진지 한 달 쯤 지났을 때, 내 몸에는 파란 꽃이 피었다. 말 그대로 파란 꽃. 나는 문신을 한 기억이 없다. 그런데 내 몸에 작은 가지가 생기더니 거기서 꽃이 피었다. 파란 꽃, 이름은 모른다. 생긴 건 벚꽃 같으면서도 아닌 거 같은데. 찾아 볼 생각도 들지 않았다. 소매를 내려 꽃을 감췄다.

꽃은 손목에 생겼다. 혈관과 비슷한 모양으로 생겨난 나뭇가지가 처음엔 섬뜩했다. 마치 어쩌면 현실에 존재 할 지도 모르는 이 나무의 가지가 부러지면 나도 죽을 거 같았다. 시간이 지나 꽃이 피었을 때부턴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형이 사라진지 두 달 쯤 되었을 때, 나는 내 손목의 가지와 꽃이 늘어났다는 걸 알았다. 조금 이상한 건, 모두 한 군데에 몰려서 자라났다는 것 정도. 나무는 남쪽 방향으로 가지를 더 뻗는다는데 그런 걸까? 아니면 그냥 내 착각인 걸까? 다시 꽃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토도마츠, 어디가?”

 

데이트! 다녀올게? 시코마츠 형.”

 

누가 시코마츠냐! , 임마! 토도마츠!”

 

신경 쓰인다면 신경 써줘야 하는 게 아닐까? 데이트라는 거짓말을 하고서 집을 나섰다. 쵸로마츠 형은 쫓아오지 않는다. 눈치 하난 좋다니까. , 데이트는 아니지만. 카라마츠 형을 발견하게 된다면 케이크라도 사서 들고 갈까? 물론 카라마츠 형의 돈으로. 두 달이나 지나서 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문득 든 위화감에 나는 걸음을 멈췄다. 카라마츠 형이 사라진 건 어느 순간 갑자기. 형의 옷도, 신발도, 기타도 모두 그대로였다. 그렇다면 당연히 돈도 없을 거다. 아르바이트를 했을 리가 없잖아? 그 카라마츠 형이라고? 그렇다면 이건 납치인 건가? 하지만 그것도 이상하잖아. 납치면 요구 전화가 와야지. 그래, 그때 치비타처럼.

 

나는 소매를 걷어 올려 손목에 새겨진 꽃을 바라봤다. 납치도 아니고, 돈도 챙겨가지 않았다면 도대체 뭐지? 형은 어디로 사라진 거지? 아니, 아니. 납치 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잖아! 노린 게 카라마츠 형이라거나. 설마 형, 위험한 곳에 끌려간 건 아니겠지? 아니, 아닐 거야. 카라마츠 형인걸. 힘이 세니까, 쉽게.

 

걸음을 멈추고 두 손으로 양 뺨을 때렸다. , 소리가 나며 볼이 따끔거린다. 불안한 생각은 하지 말자. 무서운 생각은 하지 말자. 카라마츠 형이 그런 일을 당했을 리가 없잖아? 심호흡을 하며 진정하고 손목의 꽃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원을 그리며 돌았다.

 

이거.”

 

 

나침반 같네. 작게 중얼거리며 꽃을 바라봤다. 꽃과 가지가 많은 부분이 내가 돌면 같이 돌았다. 일정하게 한 방향만을 가리키고 있다. 고개를 들어 그 방향을 바라본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고, 꽃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이 꽃은 한 달 전부터 피어있었다. 가지도 자라있었다. 그렇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서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색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이건 카라마츠 형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나침반이었는지도 몰라. 내가 좀 더 빨리 반응했다면 좀 더 빠르게 형을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몰라. 아니, 아니. 그건 내 추측에 불과하잖아. 이 끝에 뭐가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 나도 모르겠어. 그냥 달려야만 할 거 같아.

 

숨이 찬다. 에서 쇠 냄새가 난다. 얼마나 달렸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길이 쭉 직선이었다는 거다. 다리에 힘이 빠져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때까지 나는 달렸다. 그리고 멈췄다. 주저앉았다. 힘들어.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숨을 몰아쉬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이상하네.”

 

 

여기가 이렇게 사람이 없는 곳이 아닌데. 나는 다시 일어났다. 손목을 보니 꽃의 수가 늘어있었다. 카라마츠 형에게 가까워진 걸까?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걸까?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걸어갔다. 길은 일방통행이다. 양 옆은 막혀있다.

 

이상하다. 여기는 골목길도 여러 곳인데. 긴장으로 인해 떨려오는 걸 억누르며 마른침을 삼켰다. 걸어가면 걸어 갈수록 손목이 따끔거린다. 이건 경고인 걸까? 아니면 환영인 걸까? 모르겠어, 카라마츠 형. 제대로 알려줘.

 

카라마츠 형.”

 

커다란 나무는 분명 이곳에 없던 나무다. 그리고 이 나무에 피어있는 꽃은 내 손목에 새겨져있는 꽃이다. 나무에 가까이 다가간다. 바람이 불어 꽃잎이 흩날린다. 벚꽃 같다. 하지만 색은 파란색. 심장이 시끄럽게 두근거린다. 나무에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 갈수록 도망치라는 속삭임과 어서 가서 나무를 만지라는 속삭임이 커져온다. 잠시 걸음을 멈췄다.

심호흡을 한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길게 내쉰다. 선택을 해야 했다. 두 속삭임 중 하나에 응해야만 한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뒤돌아 내가 걸어온 길을 바라봤다. 까맣다. 저런 어두운 길을 나 혼자 걸어오다니, 말도 안 돼. 다시 나무를 바라본다. 바람이 불어 꽃잎이 흩날린다. 날 부르는 거 같아.

 

가자.”

 

결정했다. 무섭지만 나는 나무에 다가가야만 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다. 누군가랑 같이 왔다면 이 걸음이 조금 가벼워졌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그리고 왠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긴 나밖에 올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무 앞에 섰다. 나무는 벚나무라고는 생각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벚나무가 이렇게 크게 자라던가? 우리 여섯 명이 서로 손을 붙잡고 나무를 둘러쌓아도 다 안을 수 없을 정도의 줄기. 그리고 까마득하게 높은 나뭇가지. 그런 나무를 보고 있으려니 손목의 따끔거림이 더욱 심해진다.

 

카라마츠 형. 여기 있어?”

 

 

나무를 향해 손을 뻗는다. 손목이 따끔거리는 걸 넘어서 베어지는 것만 같다. 손이 가까워질수록 더더욱 아파왔다. 그렇지만 나는 해야만 할 거 같아. 나무에 손을 뎄다.

 

꽃이 터진다는 건 이런 걸 보면서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파란색 꽃잎이 터져나갔다. 강한 바람이 불었고, 나무는 서서히 수그러들었다. 그 모습은 아름답기도 했고, 한편으론 비참해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쁜 모습은 아니야. 나는 고개를 숙였다.

 

카라마츠 형!”

 

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카라마츠 형이 누워있었다. 서둘러 다가가 가슴 사이에 손을 올렸다. 심장은 뛰고 있다. 코에 손가락을 댄다. 숨도 쉬고 있다. 그냥 잠들어있는 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손목을 바라봤다. 가지도, 꽃도 사라졌다. 아까 전에 꽃이 터질 때 같이 터져나간 건가? 다시 카라마츠 형을 바라본다. 깨우는 건 무리인 거 같다. 무겁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카라마츠 형을 등에 들춰 맸다.

 

 

토도마츠, 카라마츠 찾아 온 거야?”

 

말도 마! 글쎄, 또 이상한 술집에서 붙잡혀서 거기서 빚 갚는 다고 일하고 있었다니까? -미와 파-파에게 더 이상 신세를 질 순 없다! 내가 알아서 하겠다! 라고 하면서 남으려는 걸 겨우겨우 끌고 왔어. 오는 길에 피곤했는지 골아 떨어져 버린 거 있지?”

 

그런가. 고생했어, 토도마츠. 쵸로마츠 형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뿌듯함에 허리를 쫙 편다. 집까지 오느라 지쳤지만 그래도 내가 카라마츠 형을 찾아왔으니까! 물론 쵸로마츠 형에게 한 말은 거짓말이다. 나무가 있던 곳을 벗어나니 평소의 동네로 돌아왔다. 그 나무가 있던 곳이 어디인진 나도 모른다. 카라마츠 형이 이상한 일에 휘말렸다는 건 알겠지만.

 

, 자세한 얘긴 카라마츠 형이 일어나면 듣는 게 좋아.”

 

덕분에 일어나면 물어볼 만한 게 산더미다. , 작게 소리를 내고는 거실 문을 바라봤다. 계단 쪽에서 뛰어내려오는 소리가 난다. 거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린다. 평소의 카라마츠 형이 보인다. 쵸로마츠 형과 같이 잘 잤냐고 인사를 한다. 카라마츠 형이 주저앉는다. 그러곤 울기 시작했다.

 

고맙다, 고맙다, 브라더!”

 

어쩐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기 싫어진다. 호러의 냄새가 난다고, 이거? 나는 호러는 질색이니까. 그저 말없이 형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려줬다. 묻는 건, 나중에 오소마츠 형이 해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그때까지 기다리자. 뒷일을 부탁해, 오소마츠 형!

 

 

 

-*

오랜만에 갑자기. 글쓰고 싶어져서. 소재가 생각났다.

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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