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캐해석
※논커플링 / 이로(색)마츠 중심



 어느날 도쿄 중심부에는 커다란 나무가 자라났다. 어디서 날아온 건지 모를 씨앗이 싹을 틔었고, 그 싹은 아스팔트를 뚫고 자리를 잡았다. 도시의 중심부를 다 가릴 정도로 자라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사람들은 그 나무를 베려했지만 벨 수 없었다. 톱, 도끼 같은 것을 나무에 대는 순간 나무가 울었다. 큰 소리를 내서 울었다. 그러면 모든 길짐승들이 모여들어 나무를 둘러싸고 사람들을 위협한다. 동물을 벨 수는 없기에 그들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나무가 자라난 곳은 공원으로 바뀌었다. 나무는 그 사이에 더더욱 자라 웬만한 고층빌딩과 맞먹는 크기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말하길 이정도로 자라려면 적어도 천 년은 걸린다는데, 그 나무는 이상하리만큼 빠르게 자라났다. 마치 나무만 시간을 빠르게 돌린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나무엔 고래가 살기 시작했다. 그 고래는 회색빛이 섞인 파란색의 등과 회색 줄이 세로로 그려진 연노란색의 배를 가졌다. 흰수염같은 것이 난 입은 언제나 열려있었고, 지느러미는 무척이나 커다랬다. 그 고래는 하늘을 마치 바다처럼 헤엄쳐다녔다.
 고래가 무얼먹고 사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신경쓰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늘을 나는 고래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커다란 나무에서 살고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은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예능을 통해, 다큐멘터리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나무가 있는 곳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공원이 되었고, 고래와 나무는 구경거리가 되었다.
 고래는 한 마리에서 두 마리로, 두 마리에서 세 마리로, 점차 수를 늘려가다 열 마리까지 생겼다. 그들은 사람에게 호의적이었고, 가까이 다가오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런 고래를 한 번이라도 쓰다듬기 위해 손을 뻗었고, 고래를 쓰다듬은 사람은 성공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사람은 더 많이 몰려들었다.

 갑자기 나타난 게 갑자기 사라진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어느날 부터인가 나뭇잎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나무는 바싹 말라 죽어버렸다. 나무가 죽어버리자 그 나무를 거처삼아 살아가던 고래들도 어디론가로 떠나버렸다. 사람들은 실망했고, 나무를 찾는 일이 줄어들다 결국엔 아무도 찾지 않았다. 뿌리가 깊게 바닥에 박힌 나무는 뽑히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변화는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도쿄 중심부, 나무가 있던 곳부터 땅이 말라가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풀부터 커다란 나무까지 모두 말라죽었다. 길을 떠돌던 동물들은 모두 어디론가로 떠나거나 말라죽은 채로 발견되곤 했다. 단단했던 아스팔트는 천천히 바스라져 아래에 감춰져있던 흙바닥을 드러냈고, 뭉쳐져있던 흙바닥은 서서히 풀려 부드럽게 변해갔다. 땅이 약해지니 건물도 제 몸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것처럼 흔들리는 일이 많아져 결국 근처의 모든 건물들은 접근금지 처분이 내려졌다.
 전문가들은 원인을 알기 위해 애썼지만 원인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지금 상황에선 지하철이 다니는 게 위험하니 이 부근의 지하철은 모두 멈춰야 한다는 의견만 내뱉을 뿐이었다. 관리자들은 그것이 옳은 판단이라 말했지만 사람들은 모두 반대했다. 지하철은 계속 운행되었고, 약해진 땅은 무너져내렸다.

 [현재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습니다만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되며 지금까지 확인 된 생존자는-.]

 이치마츠는 텔레비전을 바라보다 밥을 입안에 밀어넣었다. 차갑게 식은 밥알들이 입안을 따로따로 돌아다닌다. 잘 씹히지 않는 걸 억지로 씹었다. 무말랭이를 입에 넣고, 밥을 넣고. 그렇게 반복하며 밥그릇을 비웠다. 그릇과 젓가락을 싱크대에 넣어두고, 물을 한 잔 마신다.
 쟁반을 꺼낸다. 데워둔 죽을 그릇에 덜고 쟁반 위에 올린다. 물도 한 잔 따라서 올려둔다. 숟가락과 간장을 담은 종지도 올린다. 쟁반을 들고 이층으로 올라간다. 소리를 들은건지 방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금방 갈테니까, 재촉하지 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몸을 일으켜 자신을 바라본다. 이치마츠는 츳 혀를 차고는 그 앞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카라마츠는 손을 뻗어 숟가락을 들어올렸다. 떨어졌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손을 툭툭 두드리곤 대신 숟가락을 들었다. 간장을 조금 떠 죽에 넣고 젓는다. 죽을 살짝 떠서 후, 불어 식혀주고 입가에 가져간다. 살짝 벌려 겨우 받아먹는다.

 "간장 더 넣을까?"

 고개를 젓는다. 그래. 그렇게 몇 번 더 죽을 먹여준다. 열 숟가락, 죽은 반밖에 줄지 않았지만 카라마츠는 입을 다물었다. 이치마츠는 숟가락을 내려두고 컵을 들어올렸다. 쟁반을 밀어내고 카라마츠의 옆에 앉아 머리를 받쳐주고 물을 먹여준다. 세 모금, 끝. 컵을 내려두고 바르게 앉혀준다.

 "오늘은 좀 어때?"

 대답하지 않고 그저 웃는다. 오늘도 괜찮다, 인가. 이치마츠는 쯧 혀를 차곤 쟁반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지가 잡혔다. 다시 올라올 거니까 기다려. 손이 스르륵 떨어져나간다. 애초에 힘이 없는 손이니 그냥 쳐내도 됐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쟁반을 부엌 식탁 위에 올려두고 텔레비전을 끄고서 다시 위로 올라갔다. 방문을 여니 방긋 웃으며 반겨준다. 이치마츠는 머리를 긁적이다 문을 닫고 옆으로 가 앉았다. 손을 건네니 위에 손을 올려준다. 나름 예뻤던 손은 뼈가 도드라지게 말라있었다.

 "다른, 애들은?"

 손을 살피고 있었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물어온다. 이치마츠는 흘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손을 내려놓았다. 일하러갔어. 끄덕, 별 대답없이 고개만 움직인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쭈욱 기지개를 폈다. 카라마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봤다.

 "답답해? 문 열어줄까?"

 끄덕. 고개가 움직인다. 이치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날이 맑았다.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카라마츠의 옆자리로 돌아왔다. 카라마츠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이치마츠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바닥에 누웠다.
 카라마츠의 등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엔 무척 크고 단단했었는데, 몇 달 사이에 작아졌다. 이젠 자신이 업어줘야 할 처지였다. 저 등에 업힌다면 분명 부러질 거야. 이치마츠는 시선을 천장으로 옮겼다.
 몇 달 전, 카라마츠가 갑자기 쓰러졌다. 이치마츠는 그 날을 기억한다. 그 날은 뉴스에서 나무가 죽어가고 있다는 속보가 나온 날이다. 다음 날에 카라마츠는 일어났지만 나무와 함께 말라가듯 서서히 몸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나무가 죽어버린 뒤에는 외출은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약해져 하루종일 방에만 틀어박혀 있어야했다. 병원에선 원인을 찾지 못했다.
 해외에서라면 원인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의학이 발전한 나라라면 카라마츠를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형제를 잃고싶지 않았던 네 명은 작은 희망을 가지고 일하기 시작했다. 이치마츠는 바빠진 형동생들을 대신해 카라마츠를 돌보는 일을 맡았다.

 "이, 치마츠."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입술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문을 너무 오래 열어놨나. 이치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닫았다. 카라마츠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치마츠는 그런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그를 이불에 눕혔다. 두터운 이불을 덮어주고, 식은땀이 흐른 이마를 손으로 훑어주었다.
 이불이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 한다. 아직까지 살아있다. 이치마츠는 이불 위에 조심히 손을 올렸다. 카라마츠가 숨을 쉬는 게 느껴진다. 카라마츠의 얼굴을 바라본다. 카라마츠는 천장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가 입을 연다.

 "노래가, 들려."

 노래? 무슨 노래?

 "고래가, 부르고 있어. 노래."

 말 하나 하는 것도 힘이 드는지 규칙적으로 움직이던 이불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입을 손으로 덮고 잠시 기다렸다. 느릿하게 안정을 되찾아간다. 카라마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다.

 "이치마츠."

 눈이 마주친다. 이치마츠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에 이불을 붙잡았다. 카라마츠가 무슨 말을 하든 듣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다. 이치마츠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놓고는 대답했다. 왜?

 "도와줘."

 나를 밖으로 데려가줘. 이치마츠는 한동안 대답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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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캐해석
※단문
※우울주의보
※카라마츠 시점
※5화 -카라마츠 사변


 머리를 다쳤다. 온갖 물건들로 두들겨맞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특히 맷돌이 가장 큰 충격을 줬다고 한다. 코뼈도 부러졌다는데 이건 아마 야구배트였을 거다. 다행히 뇌에 이상은 없는 것 같다지만 좀 더 두고봐야 한다고 했다. 입원을 권했지만 할 수 있을리 없다. 돈도 없고, 보호자도 없으니까.
 병원을 나왔다. 병원비는 치비타가 주머니에 넣어주고 간 것으로 추정되는 것과 원래 있던 걸 탈탈 털어서 냈다. 병원에 나왔을 땐 이미 해가 남쪽을 지나 서쪽으로 향하고 있던 때였다. 나는 아직도 잠옷 차림이었고, 제대로 된 신발조차 없었다.
 천천히 길을 걸었다. 머리가 울리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한쪽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붕대에 가렸기 때문인가. 물건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모르겠다. 최대한 사람과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걸었다.
 쿠당탕.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쓰레기통에 다리가 걸렸다. 누가 쓰레기통을 여기다 둔 걸까. 쓰레기 냄새에 눈살을 찌푸리다 겨우 몸을 일으켰다. 어쩐지 한쪽 다리가 아파온다. 쓰레기통을 대강 수습하고 데카판 박사의 연구실로 향했다. 병원 갈 돈, 없으니까.
 호에, 호에. 특유의 말버릇을 내뱉으며 데카판 박사는 나에게 갈아입을 옷을 건네주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가만 바라보다 옷을 갈아입었다. 데카판 박사는 그 사이에 진찰 할 준비를 끝내놨다. 진찰대 위에 올라가 몸을 눕혔다.

 "그럼 진찰 시작하겠습니다요?"

 잠시 자도 괜찮습니다요. 호에. 제법 다정한 투로 말해온다. 나는 그 말에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쩐지 몸이 편안하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눈을 뜨니 진찰은 다 끝났는지 다리엔 깁스가 되어 있었다.

 "호에, 다리가 부러졌습니다요. 발바닥엔 화상도 있었습니다요."

 그래서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았단다. 다리가 부러졌구나. 아까 전 쓰레기통에 걸려 넘어진 걸 생각하다가 진찰대에서 내려왔다. 저쪽 구석에 세워져있던 목발을 다용이 가져다준다. 목발을 짚고 데카판 박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다음에 또 곤란한 일이 있으면 찾아오라 말하며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다.
 다신 오는 일 없었음 좋겠다는 말을 삼키고 연구실을 나섰다. 시간이 그리 오래 지나진 않았는지 아직도 환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나는 길을 걸었다. 다른 사람에게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집으로 향해 걸어갔다.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있나보다. 결국 부딪쳤고, 그 사람들은 양아치였고, 나는 끌려갔고, 돈이 없어 흠씬 두들겨 맞았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골목 특유의 퀘퀘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일어나고싶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목발 부러졌다. 빌린건데. 어쩔 수 없지.
 자리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부러진 목발을 품에 안았다. 팔이 아프다. 아까 잘못 맞아서 부러진게 아닐까? 가만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사람이 꽤 지나다니는 길을 걸어감에도 불구하고, 날 도와주는 사람은 하나 없구나.

 "호에. 짧은 시간에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건가요?"

 그러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일단 부러진 목발을 건네고 사과를 했다. 목발이야 새로 만들면 된다 말하고, 데카판 박사는 나를 부축했다. 다시 진찰대 위에 몸을 눕힌다. 어디가 아프냐 묻는다. 팔이 아프다 대답한다.
 팔이 부러졌다.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다 깁스를 한 팔을 내려다봤다. 새로운 목발을 다용이 갖다준다. 그것을 받아들고 데카판 박사에게 감사인사를 건넨다.

 "집까지 바래다드리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요?"

 괜찮아. 무료 진료에다가 치료까지 해줬는데 이 이상 신세를 질 순 없지. 데카판 박사의 권유를 거절하고 연구실을 나왔다. 뒤에서 걱정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하늘은 아직 밝았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마주쳤다. 정확히 말하자면 보았다. 토도마츠가 무언가를 찾는듯 이골목 저골목을 뒤지고 있었다. 혹시 나를 찾는 건가? 나, 하루종일 나와있었으니까. 어제 아침부터 집에 없었는 걸. 기쁜 마음에 얼굴 가득 웃음을 띄우며 서둘러 토도마츠에게 다가갔다.

 "토도마."

 지나쳤다. 분명 날 봤을텐데? 고개를 돌려 달려간 토도마츠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나를 찾는 게 아니었구나. 그 사실에 심장이 찡하니 울려왔다.
 한참을 걸었다. 데려다 달라고 할 걸. 뒤늦은 후회도 했다. 해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나는 집 근처 공원 입구에 서 있었다. 지쳐버렸기에 공원에서 쉬었다 갈 생각이었다. 그럴 생각이었다.
 저 멀리 형제들이 보인다. 즐거운 얼굴을 하곤 뭐라뭐라 떠들며 걸어가고 있다. 이치마츠의 품에서 삐져나온 주황색 꼬리가 보였다. 고양이 찾아서 다행이다. 토도마츠가 웃으며 말한다. 아까 찾던 거, 고양이였구나.
 그 사실을 깨닫자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아.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겼다. 그렇구나, 나는. 길게 숨을 내쉬곤 겨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집에는 가야지.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형제들은 이미 사라진 후였고,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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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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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캐해석
※반장x마피아
※빗치카라(?)


 최근 주변에 이상한 소문이 돌고있다. 이치마츠는 일과 관련없는 소문이기에 신경쓰지 않으려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공장은 좁았고, 주변인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는 쉽게 귀에 들어왔다. 이치마츠는 그 점이 마음에 안 들었다. 시끄럽다. 거기다 듣고싶지도 않은 얘길 듣는 건 썩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다. 이치마츠는 츳 혀를 찼다.
 블랙 공장은 이 근방을 지배하고 있는 마피아의 소유였다. 공장이라는 이름은 어디까지나 주변을 속이기 위한 이름이었고, 만들어내는 물건도 없는 곳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많은 물건들을 만들어내고, 내보내고 있지만 그 물건들은 다른 공장으로 보내져 분해된다. 그렇게 분해된 물건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조립되며 겉보기엔 완벽한 공장이 만들어진다.
 물건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당연히 사람도 고용하고 있었다. 100명 내외에 사람들은 휴일도, 휴식도 모르고 일을 한다. 이치마츠도 그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이치마츠는 물건을 만들지 않는다. 블랙 공장에 고용된 사람들은 모두 일반인이었고, 일반인에게 이 공장의 정체는 비밀이었다. 그러므로 항상 관리감독 할 사람이 필요했다. 이치마츠는 그 역할을 맡은 사람이었다.
 이치마츠는 이 공장이 어떤 곳인지, 마피아가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걸 알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고, 그 우연덕분에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많은 월급을 받고 편하게 일하게 되었다. 이치마츠는 말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비밀을 알게 된 걸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말하지만 않으면 자신은 언제까지라도 여기서 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흐으."

 이치마츠는 지퍼를 올리고 물을 내렸다. 멍하니 흐르는 물을 바라보다 세면대로 가 손을 씻었다. 거울을 보니 눈 아래에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수염도 까슬하고, 얼굴색도 어둡다. 쯧, 혀를 차고는 모자를 벗고 머리를 긁적였다. 우수수, 비듬이 떨어진다. 씻을까. 가만 생각하다 이치마츠는 다시 모자를 썼다.
 오늘은 모처럼 일이 없는 휴일이었다. 이런 날은 흔하지 않았고, 직원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그동안 자지 못했던 잠을 자거나 취미 생활을 한다. 그렇지만 이치마츠는 이 때 쉬지 못한다. 가장 바쁜 날이다. 씻을 생각은 했지만 시간이 없었다. 이치마츠는 길게 한숨을 내쉬곤 화장실을 나섰다. 곧 올 시간이다.

 "오랜만이, 군. 크흠."

 마피아인 주제에 얼굴 표정 유지도 못하는 멍청한 놈.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카라마츠는 미미하게 눈살을 찌푸리며 입술을 구겼다. 이치마츠의 행색에 보이는 불쾌함의 표현이었다. 이치마츠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대화는 하지 않는다. 이치마츠와 카라마츠, 그리고 카라마츠의 부하 세 명은 계단을 내려갔다. 텅, 텅. 철로 만들어진 계단이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이치마츠는 어느정도 내려가자 걸음을 멈췄다. 손을 뻗어 벽을 더듬는다. 찰칵, 무언가가 눌리며 소리를 냈다. 계단을 한 칸 내려가 손을 뻗어 벽을 누른다. 움푹 패인곳이 드러난다. 거기에 손가락을 넣고 힘껏 제쪽으로 당겼다. 끼긱,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문이 밀려들어간다.

 "언제 와도 참."

 카라마츠가 헛웃음을 내뱉는다. 이치마츠는 먼저 안으로 들어가 스위치를 켰다. 탕, 탕, 탕. 영화처럼 형광등이 한칸씩 불이 들어오며 깊은 곳까지 밝혀간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와 전등을 번갈아 바라보다 제 뒤에 따라온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부하들은 이치마츠의 뒤를 따라 걸어가고, 카라마츠는 부하들의 뒤를 따랐다.
 이치마츠는 걸음을 멈추고 부하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뒤로 물러나고, 카라마츠가 앞으로 나온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손가락으로 앞에 있는 문을 가리켰고, 카라마츠는 문에 달린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어이."

 "흠?"

 이치마츠가 손을 뻗어 부하의 손목을 낚아챘다. 부하는 놀란 얼굴로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이치마츠는 무덤덤한 얼굴로 부하를 바라보다 소매에 붙어있는 단추를 떼어냈다.

 "카메라는 반칙이지."


 좁은 공간에서 총은 사용하면 안 돼. 귀가 멀어버릴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장난스럽게 말했던 그를 떠올리며 카라마츠는 두 손으로 상대의 목을 쥐었다. 상대는 덜덜 떨리는 눈으로 카라마츠를 올려다보다 두 손을 모아 빌기 시작했다. 모든 걸 알려줄테니 제발 살려만 주세요. 카라마츠는 상대를 가만 바라보다 이치마츠를 돌아봤다.

 "왜 날 봐? 난 이 공장과 창고의 관리인일 뿐인데."

 너네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잖아. 뒷말은 삼키고 눈살을 찌푸렸다. 카라마츠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이치마츠는 뺨을 긁적였다.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퍼질러자고 싶은데. 근질거리는 몸도 깨끗하게 씻고 말이야.
 배신자인지 스파이인지 모를 놈은 다른 놈에게 넘겨졌다. 따라왔던 다른 부하도 덩달아 끌려갔다. 이치마츠는 멍하니 멀어지는 차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있어서 어떤 눈을 하고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알 필요 없나. 이치마츠는 쯧 혀를 찼다. 이걸로 오늘 일은 땡쳤군. 얼른 들어가서 잠이나 자고싶다. 이치마츠는 쭈욱 기지개를 폈다.

 "이치마츠."

 켁. 사레가 들렸다. 기침을 몇 번 하고는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이름으로 부르는 일은 흔치 않은데. 카라마츠는 여전히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어딜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치마츠는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돌렸다.

 "같이 가지."


 이거, 납치야. 분명 납치야. 납치라고. 마피아라고 납치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거야? 어? 이봐, 마피아 나으리. 나한테 뭘 하려고? 나도 의심하는 거야? 엉? 난 당신이 시킨일 말곤 한 일이 없어. 애초에 이 좋고 편한 직장을 내 발로 뻥 차버릴 이유가 없잖아. 그치? 어?

 "오늘따라 말이 많으니 보기 좋군, 이치마츠!"

 아. 이치마츠는 말하기를 관뒀다. 말이 안 통한다. 일단 들어주기라도 해야 하는데 들어주지도 않는다. 마치 앵무새가 말하는 걸 구경하는 것만 같은, 그런 모습. 이치마츠는 입을 다물고 창밖을 바라봤다. 빠르게 달리고 있는지 풍경도 빠르게 뒤로 사라졌다. 블랙 공장은 보이지 않게 된지 오래다. 이치마츠는 쯧 혀를 찼다.
 그렇게 몇 분을 더 달려 도착한 곳은 웬 저택이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이치마츠는 힘없이 카라마츠에게 끌려갔다. 혹시 여기서 날 죽이려는 건 아닐까? 고문하려는 건 아닐까? 온갖 생각이 들었지만 모두 떨쳐냈다.

 "자, 그럼 나는 준비하고 있겠다!"

 툭, 하고 밀쳐져서 들어간 곳은 욕실. 이치마츠는 멍하니 서 있다가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문앞에 수건과 갈아입을 옷을 두곤 손을 흔들며 문을 닫았다. 이치마츠는 황당한 기분으로 문만 바라보다 샤워기를 들었다. 씻으라는 거겠지.
 모든 떼를 다 털어내고, 깔끔하게 면도까지 했다. 어딘가 멋을 내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묘해졌지만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이치마츠는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카라마츠가 놓아둔 옷을 들어올렸다. 옷? 옷이 아니다. 가운. 그것도 가운밖에 없다. 이치마츠는 멍하니 흰 가운을 바라보다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다. 그 안엔 제 옷이 들어있는 듯 했다. 이치마츠는 일단 가운을 입었다.
 거실로 보이는 곳으로 나오니 카라마츠가 기다리고 있었다. 욕실이 하나는 아니었는지 카라마츠도 씻은 모양이었다. 머리카락에 맺힌 물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치마츠는 가만 그 모습을 바라보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이리로."

 다시 카라마츠에게 손목이 잡혀 끌려간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꽤 큰 저택이다. 거기다 깔끔하다. 다르게 말하면 사람이 사는 느낌이 전혀 안 든다고 해야하나. 냉기가 감도는 곳이다. 이치마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탁, 하고 문이 닫힌다. 털썩, 하고 침대에 내던져졌다. 스륵, 하는 소리와 함께 가운이 벌어졌다. 이치마츠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에 놀라 눈을 크게 뜨며 카라마츠를 올려다봤다. 카라마츠는 웃으며 이치마츠의 위에 올라앉아 그를 내려다보았다.

 "보답이라고 할까."

 오늘 도와줬으니까. 눈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앞으로 숙인다. 가운이 벌어지며 언뜻 몸이 드러난다. 이치마츠는 갑자기 벌어진 상황을 여전히 파악하지 못한듯 굳은 채로 카라마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웃으며 이치마츠의 가운을 잡아 벌렸다.

 "보스가 그러셨는데, 상대방에게 선물 할 땐 자기가 잘 아는 분야로 해주는 게 좋대."

 이치마츠는 최근 도는 소문을 떠올렸다. 이 근방을 지배하고 있는 마피아 보스의 정부는 엉덩이가 가벼워 자기가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잠자리를 갖는다고. 그리고 그와 잠자리를 가진 사람은 보스에 의해 어느 순간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게 된다고. 말도 안되는 괴상한 헛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새로운 걸 알려줄게, 이치마츠 반장님."

 설마. 아니겠지. 이치마츠는 꿀꺽 침을 삼키며 침대 시트를 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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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카라] 부탁

2016. 2. 29.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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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너를 팔았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너를 그 세계로 팔아넘겼다. 너는 언제나 그렇듯 불평불만 하나 없이 그 세계로 발을 들였다. 만약 그때 네가 불평 한 마디라도 했다면, 누군가 너를 붙잡았다면 너는 아직도 우리의 곁에 있었을까. 아니, 쓸데없는 생각이다. 어차피 바뀌는 건 없다.
 어쨌거나 너는 그렇게 범죄자의 길로 들어섰다.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음에도 상처를 줘서 고민하던 너는 이제 그런 건 아무렇지 않아한다. 오히려 어떻게하면 생명에 지장이 없이 더 고통스럽게 상처를 입힐까 고민하지. 나는 그런 널 혐오하고, 동정했다.
 상처를 주는 만큼 상처를 얻어온다. 너는 어디에도 기대지 못한 채 홀로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하면서도 너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 이유를 나는 그땐 몰랐다. 이젠 알겠다. 너는 우리라는 뿌리를 땅 속 깊숙히 박아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 뿌리는 끊어졌고, 너는 쓰러졌다. 너는 우리에게 어떤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네가 몸담고 있던 그곳의 사람들이 찾아와 너에대해 얘기해주고 여러 가지를 묻고갔다.
 너는 결국엔 사람을 죽였고, 그 뒤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것이 우리가 알 수 있는 전부였고, 너를 지탱하고 있는 뿌리가 끊어졌음을 깨닫게 된 계기였다. 너는 아무도 없을 때 나에게 말했었다.

 내가 아무리 쓰레기라도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하지 않을 거야. 만약 내가 그런 일을 했다면 나를 이 집에서 쫓아내줘. 내 물건을 모두 버리고, 내 흔적을 지워줘. 나의 뿌리를 깨끗하게 끊어내줘.

 한 달이 지났다. 네가 사라진지 한 달이 지났다. 그러나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사라진 너를 찾는 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니었다. 너와 관계된 그 세계 사람들이 할 일이지. 아마 너를 찾아낸다고 해서 널 죽인다거나 하진 않을 거다. 그들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넌 그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이 무서워 도망친 것 뿐이라고. 가벼운 징계, 그러니까 귀찮은 뒷처리 업무 몇 번 하면 다시 받아줄 거라고. 솔직히 그들의 말이 믿음이 가는 건 아니지만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다. 말의 무게를 아는 사람들이다.
 내가 미쳤나보다. 네가 관계되어 있다고 범죄자들을 곱게 보고있다니. 어쩌면 좋을까. 어떻게하면 좋을까. 너의 빈 자리는 그리 크지 않아, 나와 오소마츠 형이 매꾸면 매울 수 있을 정도야. 그럼에도 나는 네 자리를 매울 수 없다. 네가 부탁한 일도 하지 못했다. 네 자리엔 새싹이 돋아 있었고, 네 물건엔 추억이 남아 있었다.

 "어?"

 신문을 펼쳤다. 거기서 편지가 떨어졌다. 편지를 주워들었다. 발신인은 써져있지 않았지만 수신인은 적혀 있었다. 나에게 온 편지였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 편지가 네가 보낸 편지란 걸 알 수 있었다.
 일단 편지를 후드 주머니에 넣은 뒤 신문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형제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거실문을 열고 주변을 둘러보다 신발을 신고 집을 나왔다. 근처 공원으로 가 벤치에 자리잡고 앉아 편지를 꺼냈다.
 너의 글씨는 항상 멋드러졌다. 네가 말하는 카라마츠 걸즈에게 잘 보이기 위해 손이 까매지도록 연습한 결과라는 걸, 나는 알고있다. 그 결과는 습관이 되어 이제 그렇게 쓰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나는 알고있다. 그렇기에 편지를 펼쳤을 때 보인 글씨에 나는 이게 네가 보낸 편지가 맞을까 생각했다.

 사랑하는 나의 동생 쵸로마츠에게

 네가 보낸 편지가 확실했다.

 이 편지를 읽은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글씨가 왜 이렇게 엉망이야?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야 연락을 해? 아니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까? 아니, 이 편지를 보낸 게 나라는 건 알고 있을까? 그렇지만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쓴다. 아마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왜 굳이 너에게 쓰는 건지 넌 궁금하겠지. 쵸로마츠, 너는 나에게 있어 오소마츠 형님 다음으로 가까운 형제야. 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장남과 차남과는 다른, 차남과 삼남이라는 관계로 묶인 우리는 다른 형제들관 또 다른 무언가를 쌓았지.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그렇기에 너에게 편지를 쓴다.
 나는 지금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쳤다. 이 얘긴 그 사람들에게 전해 들었겠지. 그리고 난 돌아 갈 생각이 없다. 나의 한계선은 살인이었고, 그 선을 넘었으니 난 더이상 내가 아니게 된 거다. 그러니 돌아갈 수 없다.
 편지를 신문 사이에 끼워둔 건 네가 매일 아침마다 형제들이 일어나기도 전에 신문을 읽기 때문이지. 너에게만 보내는 편지인만큼 너만 읽어주기를 바랐다. 다른 형제들에겐 보여주지 말고 말이야. 너에게만 하고싶은 얘기가 많아.

 너는 너희가 날 팔았다고 생각하겠지. 그렇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난 스스로 이곳에 걸어들어왔다. 그러기로 결심한 건, 오소마츠 형님과 쥬시마츠가 크게 다친 날이었지. 그 둘은 강하다고 생각했다. 힘도, 싸우는 기술도 있었으니까. 그랬는데 크게 다쳐왔지. 누워있는 오소마츠 형님과 쥬시마츠를 보며 결심했다. 내가 가서 연결고리를 끊어버리겠다고.
 그럼에도 미련은 남았다. 나는 계속 가족이고 싶었고, 형제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말로 꺼낼 순 없었어. 내가 세계를 옮긴 이후로 나를 보는 형제들의 시선이, 특히 너의 시선이 달라졌으니까. 그저 혼자 생각했다. 난 아직 가족이고, 형제라고. 이쯤되면 알태지만 그 기준이 살인이었다. 난 이제 더이상 가족도 형제도 아니야. 그냥 살인범일 뿐이다.
 그렇지만 미련이 남아. 그래서 편지를 남기고 있다. 글씨가 엉망인건 손을 다쳐서 그런거니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너는 다른 형제들의 글씨도 읽을 수 있으니까, 이정도는 간단하게 읽을 거라 생각한다.

 쵸로마츠. 네가 내 부탁대로 하지 못했다는 걸 안다. 너는 정이 많아. 네 시선에 담겨있는 정을 나는 기억해. 그렇지만 이제, 이제 그만 태워줬으면 좋겠다. 형제라는 이름으로 하는 마지막 부탁이다.
 이 편지를 읽고나서 편지와 함께 나의 옷과 물건들을 모두 태워줘. 내가 받아 볼 수 있게.

 그럼 이만 말을 줄이도록 하겠다. 쵸로마츠와 형제들의 행복을 빈다. 그리고 너무 안 풀린다고 기운없어 하지마.

 왜냐면 그것이 인생이니까.

 내 인생은 이걸로 된 거야.

 그럼, 먼 훗날에 다시 보도록 하자. 믿음직스러운 차남.


 카라마츠의 모든 물건을 태웠다. 그렇지만 편지만은 태울 수 없었다. 형제들은 날 보며 미친 거 아니냐고 화를 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발신인 불명의 편지에 대해서도, 너의 행방에 대해서도. 그저, 언젠간 모두 알게 될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할 뿐이다.
 너에게 도착하는 택배도 발신인 불명일까. 그렇지만 내가 보낸 택배란 걸 너는 알겠지. 네가 나에게 부탁한 거였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으니까.

 카라마츠. 나중에 보자.

 새싹은 시들었고, 추억은 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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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주의
※단문


 이치마츠가 죽었다. 나는 의외로 덤덤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부정한다거나 타협하지 않았다. 화를 내지도 않았고, 슬픔에 몸부림치지고 않았다. 그저 이치마츠가 죽었구나 하고 받아들였을 뿐이다. 이치마츠는 그 해 봄, 벚꽃잎과 함께 우리의 곁을 떠났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치마츠가 죽은 이후로 주변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이상해진 건가? 정신을 차려보니 부엌에서 칼을 들고 내 목을 겨누고 있다거나 빨간불인 횡단보도를 건너려 한다거나. 아, 그래. 내가 이상해졌다.
 처음엔 그저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괜찮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다. 장례식장에서도 발인때도 이치마츠의 뼈를 담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으니까. 이런 걸 후폭풍 이라고 하던가. 그게 몰아치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충격으로 정신병이 생긴 걸지도 모른다고.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두 달 쯤 지나서였다. 아침에 들린 토도마츠의 비명에 깜짝 놀라 급히 세면실로 달려갔다. 토도마츠는 주저앉아 있었고, 나보다 먼저 달려온 형제들이 토도마츠를 달래고 있었다. 그리고 김이 서릴 리가 없는 거울은 하얗게 김이 서려 글자가 써져있었다.

 "함께 가자, 카라마츠."

 두 달 동안 나를 위협했던 건 자신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계속해서 불운이 일어났다. 칼이 발위로 떨어질 뻔 한다거나 위에서 뭐가 떨어진다거나. 나는 외출하기를 관뒀다. 옥상에 올라가지도 않았다. 그저 방에 틀어박혀 생각에 잠겼다.
 이치마츠가 정말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걸까? 왜? 어째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유를 모르겠다. 이치마츠는 마지막 순간에, 그러니까 잠에 빠지듯 눈을 감던 그 순간에 나에게 말했다.

 "늦게 와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그때는 정신이 없어 이해하지 못했지만 조금 지나보니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날 따라 죽지마, 넌 네 삶을 살아. 그건 유언이었고, 나는 그 말을 지키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했던 이치마츠가 날 죽이려 한다고? 말도 안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신도 보지 못하는 내가 혼자 이러고 앓아봤자 아무 소용없다. 누군가, 귀신을 볼 줄 아는 누군가에게 찾아가 물어봐야지. 외출은 무섭지만 가지 않으면 자신을 용서 할 수 없을 거 같다.
 나를 사랑해주고, 걱정해주었던 동생이자 연인인 이치마츠를 의심한 자신에게 주는 시련, 이라고 거창하게 말해본다.
 가는 길은 예상외로 수월했다. 무속인의 집을 찾는 건 처음이었지만 몸은 마치 알고있다는 듯 익숙하게 자리를 찾아갔다. 무당은 나를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뭐라도 있는 걸까? 문득 불안해졌다.
 무당은 한참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분위기가 나에게 침묵하길 권하는 것 같았다. 무당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가 싶더니 하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깨어나."

 한 마디. 나는 눈을 떴다.

 "멍청이."

 아. 하하. 웃음이 나왔다. 이치마츠가 내 머리를 때린다. 아팠다. 몸을 일으켰다. 손을 들어 목을 만졌다. 두꺼운 줄이 감겨 있다. 뒤돌아 보았다. 줄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화난 얼굴이다.

 "늦게 오라니까."

 이치마츠가 손을 건넨다. 손을 뻗어 그 손을 잡았다. 따듯하다, 고 느껴졌다.

 "미안해. 기다릴 수가 없었어."

 사과하며 이치마츠를 끌어안았다. 함께 가자, 이치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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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캐해석

*[게르카라] 수국의 인연 에서 이어집니다.

*이치게루게x카라마츠

*급전개 주의

 

 

 

 그 이후로 카라마츠는 핸드폰을 손에서 놓는 일이 없어졌다. 이치가 카라마츠의 옆에서 가만 바라보아도, 혼자서 침대 위를 독차지해도 그것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치는 카라마츠가 어딘가 이상해졌음을 눈치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카라마츠는 카라마츠고, 카라마츠의 행동에는 모두 의미가 있었으니까. 지금 저런 행동을 보이는 것도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치는 침대에 늘어져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카라마츠는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란 듯 자꾸 메시지를 보내는 이치마츠에 화가났다. 그렇지만 그걸 거부하거나 차단 할 수는 없었다. 또 화가 나서 이 집으로 갑자기 쳐들어온다면 이치를 들킬지도 모른다. 저에게 이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였지만 분명 이치마츠나 다른 사람에겐 징그러운 거대 민달팽이로 보일테지. 그럼 이치는 상처 입을 거야. 카라마츠는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카라마츠에게 이치는 귀여운 애완동물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혼자 두게하면 불안했고, 혹시라도 저 몰래 나가거나 다른 사람에게 모습을 보여 해코지를 당할까 걱정됐다. 이치도 자신에게 의지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한 생명을 책임져야만 하는 입장인 거다. 자신이 지켜주어야만 한다. 덩치도 크고, 힘도 점점 세지고 있었지만 이치는 이치니까.

 

 "그럼 조금만 기다려."

 

 금방 장보고와서 밥 차려줄게. 이치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치의 머리를 쓰다듬고 카라마츠는 집밖으로 나간다. 이치는 닫히는 문을 가만 바라보다가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저번 이후로 손님이 오는 일은 없었고, 당연히 카라마츠의 옷방으로 쫓겨나는 일도 없었다. 이치는 옷방의 문을 가만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가까이서 보면 혼나지만 자신은 리모콘을 들 수 없으니까. 몸을 앞으로 숙여 전원 버튼을 누른다.

 이 사람이 잔뜩 나오는 네모난 상자는 재밌다. 이치는 텔레비전에 얼굴을 거의 붙이다시피 하고 바라보다 카라마츠의 말을 떠올렸다. 가까이서 보면 안 된다. 이치는 조금 뒤로 물러났다. 텔레비전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듣기 좋은 노래다. 이치는 이 노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사랑이다.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이치마츠는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가라앉고, 잔뜩 갈라진 목소리라 들리는 노래처럼 부를 수는 없었다. 이치는 실망감에 몸을 늘어트리며 텔레비전을 껐다. 카라마츠한테 노래를 알려달라고 할까. 생각하던 이치는 고개를 젓고는 침대 위로 올라가 몸을 눕혔다. 카라마츠가 오려면 얼마나 걸릴까. 카라마츠가 주는 맛있는 과일이 먹고싶다.

 

 삑, 삑삑, 삑. 비밀번호가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치는 팟 눈을 뜨고 급히 옷방으로 몸을 숨겼다. 철컥, 문이 열린다. 이치는 방문을 꽉 닫고, 손잡이를 잡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왜 숨었어? 카라마츠가 아니니까. 카라마츠가 아니면 누군데? 몰라. 이치는 꾹 입을 다물고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이 걷는 소리다. 서랍이 열리는 소리, 텔레비전이 켜졌다 꺼지는 소리, 냉장고가 열리는 소리. 평소보다 민감해진 청각에 별의별 소리가 다 들려왔다. 이치는 귀를 막고싶었지만 막지 못하고 눈만 꽉 감았다.

 더이상 걷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문이 열리는 소린 나지 않았다. 침대나 소파에 앉은 게 아닐까. 이치는 문을 열어보려다 말았다. 만약 침대에 누워있는 거라면 문을 열자마자 눈이 마주칠지도 모른다. 저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카라마츠가 아닌 건 확실했다. 카라마츠라면 자신이 거실에 없음을 알자마자 온 집안을 뒤져 저를 찾아냈을테니까. 이치는 그저 어서 카라마츠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문에 몸을 기댔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쿵쿵 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고함치는 소리가 들린다. 카라마츠의 목소리다. 드디어 카라마츠가 왔다.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반응한 건 저뿐만이 아닌듯 했다. 다른 목소리도 들려온다. 전에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다. 분명, 카라마츠와 닮은 얼굴. 그 사람이다. 이치는 문고리를 손으로 잡았다.

 

 "또 뭔데? 뭐가 맘에 안들어서 이러는 건데?"

 

 "다."

 

 "다?"

 

 천천히 문을 열었다. 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작게,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약간. 카라마츠의 모습이 보인다.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도 보인다. 이치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며 둘을 바라보았다. 둘 다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다. 카라마츠의 얼굴은 특히 평소와 달라 더 무서웠다. 이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뭐 찔리는 거라도 있어? 왜 이렇게 화를 내?"

 

 "이치마츠."

 

 이치마츠. 이치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남자를 바라봤다. 이치마츠. 저 사람의 이름인 건가. 자신이랑 비슷한 이름이다. 아, 어쩌면 자신의 이름은 저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걸지도 모른다. 얼굴이 닮았으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이치는 마음 한 구석이 찡하게 울려왔다. 왜일까. 왜 이러는 걸까.

 

 "이치마츠, 네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같다."

 

 말투가 바뀌었다.

 

 "난 이제 더이상 네 연인이 아니야. 우린 형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관계다."

 

 이치마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눈살이 찌푸려지고, 입꼬리가 아래로 내려간다. 까득 이를 가는 소리가 섬뜩하다. 이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카라마츠는 침착했다.

 

 "네가 원한 거였잖아."

 

 쿵, 큰 소리를 내며 카라마츠가 바닥에 쓰러졌다. 이치는 튀어나가려는 걸 겨우 참으며 문을 닫았다. 이치는 방 깊숙한 곳으로 몸을 옮겼다. 걸어져있는 옷들이 떨어지고, 개어져있던 옷들이 흐트러졌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최대한 안쪽으로, 깊게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부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길 바라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했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여기있어, 이치?"

 

 쉰 목소리다. 이치는 눈을 뜨고 옷더미들 사이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카라마츠는 그런 이치를 바라보며 웃다가 천천히 다가와 이치를 끌어안았다. 이치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카라마츠는 한동안 이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 뒤로 카라마츠는 외출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카라마츠는 이치에게 집밖으로 절대 나가지 말라 주의를 주고 길게 외출을 했다. 이치는 집에 혼자 남아 카라마츠가 말한대로 집밖에 나가지 않고 집을 지켰다. 가끔 텔레비전을 켜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침대 위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옷방에 들어가 카라마츠의 옷들을 흐트려놓는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카라마츠는 모든 걸 웃으면서 넘겨버렸다.

 이젠 식사도 혼자해야 했다. 더이상 카라마츠가 먹여주거나 준비해주지 않았다. 서툰 솜씨로 과일을 카라마츠가 준비해둔 수건으로 닦았다. 그대로 입으로 가져와 크게 베어문다. 달콤한 사과 과즙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닦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치는 순간 차오르는 외로움에 몸을 웅크렸다. 달았던 사과가 맹맹해졌다.

 

 "어라?"

 

 카라마츠가 이치의 변화를 눈치챈 건,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보니 이치는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그런 이치가 귀여워 이불을 덮어주려다 이치의 꼬리를 잡아 침대에 끝에 닿도록 늘려보았다. 이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럭무럭 자라서 침대 밖으로 꼬리가 삐져나와 바닥에 닿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짧아졌어."

 

 길이만 줄어든 게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크기가 작아졌다. 카라마츠는 혹시 이치가 자신이 없는 사이에 밥을 먹지 않는 건가 싶어서 그간 이치가 먹은 것들을 살펴보았다. 모두 확실하게 깔끔히 비웠다. 쓰레기론 씨앗이랑 꼭지밖에 남기지 않을 정도로 잘 먹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혹시 덩치에 비해 적게 먹인건가 싶어 다음 식사는 좀 더 많이 두고가기로 했다.

 다음날도 카라마츠는 외출을 했다. 이치의 식사 분량은 평소의 두 배였다. 종류도 전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이치는 신나하면서 과일을 먹고, 잠을 잤다. 요즘 이치는 카라마츠가 나가면 잠을 자는 게 전부였다. 따로 무언갈 본다거나 심술을 부리지 않았다. 그냥 잠을 잤다. 그리고 카라마츠가 오면 일어나 잠깐 놀다가 카라마츠가 잠들면 그 옆에서 같이 잠들었다. 단순한 하루였다.

 

 "어?"

 

 카라마츠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치가 눈에 띄게 작아졌다. 이젠 품에 안아들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게 엊그제였던 것 같은데, 어느새 품에 안아들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작아졌다. 카라마츠는 혹시 이치가 어디 아픈게 아닐까 싶어 몸을 살펴보았지만 딱히 그래보이진 않았다. 카라마츠는 이치를 살펴보다 혹시 자신이 돌봐주지 않아서 그런건가 싶어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정작 이치는 카라마츠가 자신을 안아주자 신이난 듯 보였지만.

 다음날 카라마츠는 모처럼 외출을 하지 않았다. 이치와 함께 하루종일 놀아주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아침으로 과일 한 바구니를 씻어서 직접 먹여주었다. 이치는 신나하며 카라마츠가 주는 과일들을 받아먹었다. 그 뒤엔 같이 놀았다. 책도 읽고, 텔레비전도 보고. 이치가 그동안 연습해왔다며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카라마츠는 굉장하다며 이치를 칭찬했다. 이치는 뿌듯했다.

 카라마츠와 같이 있음에도 졸음은 이기기 힘들었다. 이치는 카라마츠에게 졸리다 말하며 침대 위로 올라가 늘어졌다. 카라마츠는 이치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이치의 크기를 재보았다. 어제보다 더 작아졌다. 계속 같이 있었음에도 이치는 줄어들었다. 역시 어디가 아픈 거 아닐까? 설마 이대로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 카라마츠는 순간 든 생각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병원에 가야하나? 어느 병원? 특수한 동물도 맡는 동물병원? 이치를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되려 이치에게 상처만 주는 일이 아닐까? 카라마츠는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어떤게 옳은 선택인지 모르겠다. 병원을 간다고 하더라도 이치가 나을 거라는 보장은 있나? 없잖아. 난 어떻게 해야해? 카라마츠는 눈을 감았다.

 

 "카, 라, 마, 츠."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이치는 아직 자고 있었다. 잠꼬대인가. 카라마츠는 이치를 끌어안고 이불을 덮었다. 그래, 나 옆에 있어. 이치. 이치가 손을 뻗어 카라마츠의 옷을 잡는다. 카라마츠는 웃으며 이치를 더 꽉 끌어안았다. 이제 품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아진 이치가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사랑스러워. 계속, 이 상태로 옆에 있어주었으면 싶었다.

 

 며칠이 지났다. 이치의 크기는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해졌다. 카라마츠는 작아진 이치를 바라보다가 손을 건넸다. 이치는 카라마츠를 올려다보다 손 위로 올라왔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이치는 카라마츠의 손 위에 몸을 웅크렸다. 기운이 없어보였다. 카라마츠는 이치를 손에 둔 채로 침대에 앉았다. 이치가 고개를 들어 카라마츠를 바라본다.

 

 "카, 라마츠."

 

 처음 만났을 때보다 확실한 발음이었지만 크기가 작아진 탓에 목소리도 작아져버렸다. 카라마츠는 이치의 말을 듣기 위해 얼굴을 가까이했다. 이치는 다가온 카라마츠의 얼굴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켜 다가갔다. 두 손을 뻗으니 얼굴이 좀 더 가까워져온다. 이치는 가까워진 카라마츠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떼고는 뒤로 물러났다. 얼굴에 열이 오른다.

 

 "카라마츠."

 

 이치는 노래를 불렀다.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들었던 사랑을 말하는 노래였다. 카라마츠는 말없이 이치의 노래를 들었다. 작은 소리는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숨소리도 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노래는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를 바라봤다. 노래가 끝났다.

 

 "사랑, 해. 카라마츠."

 

 

 

 "여기서 뭐하냐?"

 

 비가 내리고 있다. 카라마츠는 멍하니 꽃집 앞에 서 있다 저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냥. 하? 이치마츠가 다가온다. 우산이 부딪친다. 쯧, 혀를 찬 이치마츠는 우산을 접고 멋대로 카라마츠의 우산 안으로 들어왔다. 카라마츠는 막무가내인 제 동생을 바라보다 작게 웃었다. 이치마츠는 눈살을 찌푸리며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꽃집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국이네."

 

 아직도 수국이 있나? 굉장하네. 이치마츠가 중얼거린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수국을 바라봤다. 수국은 그때 보았던 수국과 같은 색이었다.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의 등을 두드린다. 카라마츠는 다시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앞을 바라보며 길을 걸었다. 이치마츠가 옆에서 같이 걷는다.

 

 "나 말이야."

 

 이치마츠가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뭐라 말로 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웃는 건가, 우는 건가, 아니면 아파하는 건가.

 

 "이상한, 달팽이를 주웠었어."

 

 빗소리는 그때 들었던 빗소리와 똑같았다.

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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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캐해석
※이치x카라x흑카라
※단문
※수위 -소재 주의



 방문을 열었을 때 상태는 엉망이었다. 입은 천을 물고 있는 탓에 제대로 다물지 못해 침을 흘리고 있었다. 눈은 꽉 감은 채로 눈물만 쏟아내는데 눈가는 발갛게 달아오르다 못해 부어있었다. 머리는 흐트러졌지만 정리 할 생각은 전혀 할 수 없는 듯 했다. 당연한가. 목이며 가슴엔 멍자국과 붉은 자국들이 가득했고, 잘 자리잡은 근육들을 따라 땀이 흘러내렸다. 손은 등뒤로 묶인채 몸에 눌렸고, 힘이 들어가지 않은 다리는 허공에서 흔들렸다. 그리고 아래는 놈과 이어져 있었다.

 "씨발."

 욕을 참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제 연인인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인데. 이치마츠는 문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까드득 이를 갈았다. 그 소리를 용케 들은건지 움직임을 멈추곤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본다. 이치마츠는 당장이라도 나가려는 손을 울고있는 제 연인을 위해 참는다.
 놈은 제 연인과 똑같은 얼굴이었다. 따지자면 조근 다르긴 했지만 어쨌거나 제 연인과 같은 얼굴. 이름도 같았다. 마츠노 카라마츠. 그는 처음 마주했을 때 자신을 다른 세계에서 온 마츠노 카라마츠라 소개했다. 분위기는 이쪽의 카라마츠보다 어둡고, 가라앉아 있었다. 우리는 놈을 '카라'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놈은 자연스럽게 이 집에 녹아들었다. 돌아 갈 방법을 찾을 때까지 실례하겠다며.
 얹혀사는 입장이면 얌전히 있을 것이지. 이치마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카라를 노려보았다. 카라는 후우 길게 숨을 내쉬곤 제 머리를 쓸어올렸다. 얼굴이 똑같다는 건 정말 뭐 같다고, 이치마츠는 순간 두근거린 자신의 심장에 대고 욕하며 생각했다. 카라는 제 아래에 있는 카라마츠와 문에 서 있는 이치마츠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조금만 기다려. 이제 곧 끝나니까."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카라마츠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흐른다. 이치마츠는 꽉 주먹을 쥐었다. 지금 당장 달려가서 놈의 얼굴을 날리는 것 쯤이야 쉬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러면 카라마츠가 다칠 수도 있다. 다치게 하고싶지 않다. 아니, 자신 외에 이유로 다치는 걸 허락 할 수 없다. 이치마츠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성기가 아래를 들락날락 하며 안을 쑤셨다. 카라마츠는 아픔에 날아가려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오래 눌린탓에 팔에 감각이 없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온 몸이 끈적하다. 끔찍하다.
 카라마츠는 잘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돌려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이치마츠는 그 자리에 선 채로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치마츠의 고개가 천천히 카라마츠에게로 향한다. 눈이 마주쳤다. 무서웠던 얼굴이 금방 풀린다. 걱정하고 있다. 걱정하고 있어. 카라마츠는 차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하아."

 좆같네. 짧게 중얼거리며 카라는 안에서 제것을 빼냈다. 휴지로 대강 제것을 닦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쿵쿵 거리는 소리를 내며 이치마츠가 다가오는 게 보이지만 오히려 여유를 부린다.
 날아오는 주먹을 가볍게 내친다. 이치마츠가 분하단 얼굴로 카라를 바라본다. 카라는 히죽 웃으며 이치마츠를 흘겨보다가 방을 나갔다. 뒤에서 이치마츠가 고함을 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한다. 참, 재밌네. 응. 다음엔 또 어떤 일을 벌여볼까. 앞일을 생각하며 카라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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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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