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캐해석
*동양풍의 어느 나라
*느리게 연재됩니다.

 

 

 

 결정이 되자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몸값을 유곽에 지불하고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카라마츠는 수수한 남성옷으로 갈아입고, 얇은 천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말에 앉히고, 그 뒤에 앉아 고삐를 쥐었다. 말이 달리기 시작한다. 익숙하지 않은 카라마츠는 급히 이치마츠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이치마츠는 흘끔 카라마츠를 보다 쯧 혀를 찬다.

 사람이 많은 홍등가를 지나 한산한 길로 들어서면 양옆으론 나무들이 가득하다. 그곳까지 나와본 적 없는 카라마츠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몸이 흔들리자 고개를 숙였다. 이치마츠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더니 완전히 길에 멈춰 섰다. 카라마츠는 흔들림이 멈추자 고개를 들어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걷게 했다.

 

 "여기서부턴 사람이 거의 없는 길이니 간단하게 해야 할 얘기나 할까하니, 잘 들어. 한 번밖에 말 안 해줄 거니까."

 

 여러번 말 하는 건 귀찮거든. 카라마츠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는 생각을 정리하듯 잠시 말이 없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말하길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다각, 다각. 말이 걷는 소리만 주변에 울린다. 정말로 주변엔 아무도 없는 걸까. 카라마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통 나무 뿐이었다. 몸을 숨기기엔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무가 가득했다.

 

 "일단, 형님에 대해 얘기할까. 너, 기본적인 예절은 배웠지?"

 

 "예, 예."

 

 "다 버려."

 

 네? 최대한 예절이라는 거랑 거리가 멀게 행동하라고. 뭐, 가족한테는 그러면 안되겠지만 시종이라거나 손님 앞에선 무조건 예절과는 거리가 멀게 행동해. 여자를 밝히는 행동을 하면 더 좋고. 색, 술, 도박. 그 세 가지를 밝히는 남자거든. 우리 형님은. 너에 대한 얘기를 해준 것도 형님이었는데, 네가 있던 유곽에 갔을 때 널 봤다고 하던데. 마주친 적 없어?

 기억 안나. 카라마츠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는 쯧 혀를 차며 눈살을 찌푸렸다. 썩 형을 좋아하진 않는 눈치였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저와 똑같은 얼굴, 비슷한 체격이면 기억 못 할 리가 없는데. 그러고보니 예전에, 한 번 저와 비슷한 손님이 왔었다는 얘길 들었던 거 같기도 하고. 카라마츠는 깊숙히 생각속으로 들어가다 고개를 저어 빠져나왔다.

 

 "도박 중 가장 좋아하는 건 마작이라는 건데. 바다쪽에 놀러갔을 때 갑자기 사라지더니 배워왔더라."

 

 나는 아직 어려워서 잘 못하지만 가끔 형님과 어울려드리곤 하지.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생각보다 오소마츠를 싫어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싫은 사람이라면 어려워서 잘 못하는 놀이-도박?-를 같이 해줄리가 없을테니까. 어쩌면 천성이 착한 사람인 걸지도 모른다. 생각을 마친 카라마츠는 고개만 끄덕였다.

 

 "또, 형님은 말을 잘 타지. 활도 잘 쏘고, 사냥도 잘 하는 편이야."

 

 머리도 좋고. 그런 재능을 술과 도박과 색에 쏟아부어버리고 있으니 아버지가 화를 내다못해 슬퍼하시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야. 험담 반, 칭찬 반.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하는 말을 들으며 그 가족들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고위관직에 머물러 계시는 아버지, 능력있지만 방탕한 장남, 그리고 형님과 사이가 좋은 삼남.

 삼남? 그렇다면 차남이 있는 건가? 동생도 있나? 카라마츠는 눈살을 찌푸렸다 펴곤 고개를 들어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한참 형에 대한 욕과 칭찬을 내뱉던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시선에 고개를 숙였다. 눈이 마주쳤다. 이치마츠는 말을 멈추고 앞을 바라보았다. 카라마츠도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봤다. 문이 보인다.

 

 

 "그럼 여기서 잠시 기다려. 형님께 말씀드려야 하니까."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는 문을 닫고 걸음을 옮겼다. 카라마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손님을 맞이하는 방처럼 보이는데 상당히 화려하다.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 방이기 때문인가? 유곽에 있을 때 손님에게 듣기론 사람마다 방을 꾸며놓는 방식이 다르다고 한다. 어느 부자집은 높은 손님을 맞을 때와 자신과 비슷한 손님을 맞을 때, 그리고 자신보다 낮은 손님을 맞을 때 각각 다른 방을 사용한다고 했다. 높은 손님을 맞을 때는 수수한 방을, 비슷한 손님을 맞을 때는 적당히 과시 할 수 있는 방을, 낮은 손님을 맞을 때는 가장 화려한 방을. 이유도 다 다르다고 했는데. 그럼 여긴 무척 화려하니까 낮은 손님을 맞을 때 쓰는 걸까. 낮은 손님.

 카라마츠는 고개를 숙이며 옷을 두 손으로 꽉 쥐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신은 낮은 손님 중에서도 가장 낮은 축에 속했다. 아니, 사실 이렇게 앉을 자리를 마련 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지. 카라마츠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위치를 새삼 실감해버렸다.

 

 "뭐해?"

 

 문이 열렸다. 이치마츠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저었다. 이치마츠는 그런 카라마츠를 바라보다가 손짓했다. 카라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치마츠를 따라갔다. 밖에서 봤을 때도 느꼈지만 안에서 보니 더더욱 넓어보인다. 숲의 한 부분을 잘라내 세운 집인 거 같은데. 물어볼까 싶었지만 딱히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에 물을 수가 없었다.

 방 문 앞에 선다. 가볍게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카라마츠는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안에 들어가니 반긴 것은 배에 붕대를 감고 앉아있는 남자였다. 그 얼굴은, 카라마츠와 닮아있었다. 체형은 그 사람이 훨씬 더 좋아보였지만. 이치마츠가 그의 앞에 앉아 제 옆자리를 두드렸다. 카라마츠는 급히 그쪽으로 다가가 앉았다.

 

 "안녕. 난 오소마츠. 이 마츠노 가의 장남이자 네 옆에 앉은 이치마츠의 멋진 형님."

 

 그리고, 앞으로 네가 흉내내야 할 사람. 앞으로 잘 부탁해. 오소마츠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지만 카라마츠는 그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이 남자는 위험하다. 그것이 오소마츠를 처음 본 카라마츠가 내린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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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카라 이외에 오소카라, 쵸로오소, 막내조 요소가 있습니다.
※종교는 창작종교이나 어디선가 본듯한 방식이 나올수 있습니다

 

 

 그는 영웅이라 불렸다. 여신께서 내려주신 마지막 희망이었다. 모두가 그를 찬양했고, 그를 존경했으며 그를 사랑했다. 그는 사람들을 위하여 악을 몰아내고, 모두가 행복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영웅에게는 그만한 시련과 고통이 따르는 법이다. 그는 결국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은 만큼 처참하게 죽어갔다.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모든 걸 원망한다, 모든 걸 저주한다. 이제 더이상 나는 너희를 위해 살지 않으리라.

 

 

 카라마츠는 책에서 눈을 떼고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는 곤히 잠이 든 채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날이 밝은진 오래였고, 곧 있으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카라마츠는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책을 옆에 내려둔다. 금색으로 적힌 멋들어진 글자에 햇빛이 비춰 반짝 거린다. 카라마츠는 가만 책을 바라보다 다시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손을 뻗는다.

 움찔. 닿기도 전에 이치마츠가 눈을 떴다. 급히 손을 거두고 책을 가방 안에 넣었다. 멋대로 가방을 뒤졌다고 혼이나는 건 아닐까. 화를 내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꽉 주먹을 쥐었다. 이치마츠는 아직 잠이 덜 깬 듯 멍하니 카라마츠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카라마츠는 흘끔 그런 이치마츠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일어나셨으면 식사하러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라마츠는 몸을 돌려 문고리를 잡았다. 어깨가 잡혔다. 돌려졌다. 벽에 등을 박았다. 카라마츠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깨를 움츠렸다. 눈을 굴려 이치마츠의 얼굴을 바라봤다. 차가운 표정, 알 수 없는 기운이 가득한 눈빛. 주변이 차가워진다고 느껴졌다. 카라마츠는 입술을 잘근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왜, 그러십니까?"

 

 이치마츠는 해야 할 말을 정리했다. 자신이 밤에 본 것이 꿈이 아니라면 그건 분명히. 하지만 어떻게? 악마란 존재는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 올 수 없는데.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냐, 그래도 무리야. 내가 다가가기만 해도 악마 한 둘은 그냥 도망쳤는 걸. 거기다 나는 기도까지 했어. 그걸 버틸 수 있을리가 없잖아. 그렇담 뭐지? 이건 뭐지? 이치마츠는 까득 이를 갈았다.

 쾅,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다. 카라마츠의 몸이 흔들렸다. 창밖에서 햇빛이 들어와 둘을 비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턱을 잡아들어 눈을 맞췄다. 카라마츠는 입을 꾹 다문 채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는 무어라 말하려 입을 열었다가 닫곤 카라마츠의 턱을 놓아주고 뒤돌아 제 머리를 쓸어올렸다. 하아, 길고 무거운 한숨이 내뱉어진다. 카라마츠는 주륵, 그대로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 앉았다.

 이치마츠는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카라마츠는 아무 말없이 이치마츠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이치마츠가 흘끔 카라마츠를 바라본다. 카라마츠는 뒤돌지 않고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햇빛이 들어오고 있다. 햇빛이 비추었던 카라마츠와 달빛이 비추었던 카라마츠를 떠올린다. 달빛에 비춰진 카라마츠는 꿈이 아닐까. 이치마츠는 눈을 감았다.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카라마츠는 먼저 기차에서 내려 이치마츠를 기다렸다. 기차에서 내린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꿈인지 현실인지도 모를 일이고, 일단은 끝까지 동행해야 하지 않을까.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다가갔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일단 오늘은 성당에서 쉬었다 갑시다.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그곳으로 가도록 하죠."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앞장 서 걸어갔다. 그 뒤를 카라마츠가 쫓는다. 이치마츠는 생각했다. 오늘 밤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확인 해 보자고. 지금의 성당이라면 그 어떤 악마라도 들어올 수 있다. 만약 카라마츠가 악마 또는 악마와 계약한 인간이라면 오늘 밤에 어제밤 만난 악마가 또 찾아 올 수도 있다. 거기다 성당은 달빛이 잘 드는 곳에 위치해있으니까. 이치마츠는 꽉 주먹을 쥐었다.

 성당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가장 높은 건물이기도 했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니까. 성당은 산 중턱에 있었다. 이치마츠는 성당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그곳을 관리하는 자를 만나 인사를 나눴다. 카라마츠는 밖에서 이치마츠를 기다리며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그다지 큰 마을은 아니었지만 여태까지 지나쳐왔던 그 어떤 마을보다 생기가 넘쳐보였다. 아이들은 밖에서 원하는 만큼 뛰어놀고 있고, 사람들은 서로 얘기를 나누거나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행복해보였다.

 

 "이리로 오십시오."

 

 아, 예.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불렀다. 카라마츠는 몸을 돌려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관리인이 카라마츠를 흘끔 위아래로 훑어보았지만 카라마츠는 신경쓰지 않았다. 이치마츠만 눈살을 찌푸리며 관리인을 노려 볼 뿐이었다. 이치마츠의 시선에 관리인은 금방 고개를 돌려버렸다.

 외곽, 그러니까 예배당을 지나 그 뒤쪽으로 가면 생활관이 나온다. 성직자들이 공부하고, 생활하는 곳으로 여분의 방을 두 세 개 정도 남겨놓는 것이 보통이다. 그 방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선교 활동을 하는 성직자들을 위한 방이다. 카라마츠와 이치마츠는 같은 방으로 배정받았다.

 

 "그럼 식사 시간 때 찾아뵙겠습니다."

 

 관리인은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갔다. 카라마츠는 침대에 털썩 누워버렸다. 며칠간 기차에서 좁은 의자에 누워잤더니 몸 이곳저곳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 같았다. 푹신한 베개에 얼굴을 묻고 추욱 늘어진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창문쪽으로 다가갔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위치의 방이다. 이치마츠는 눈살을 찌푸리며 마을을 훑었다.

 여기도 마찬가진가. 이치마츠는 쯧 혀를 차곤 커튼을 쳤다. 카라마츠는 금세 잠들어버린듯 미동도 없다. 그런 카라마츠를 보던 이치마츠는 그에게 다가가 이불을 덮어주고, 가방을 가지고 방을 나갔다. 카라마츠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들어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덮혀진 이불을 바라봤다. 하아, 긴 한숨을 내쉬곤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아직도 주무십니까?"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흔들어 깨웠다. 카라마츠는 눈을 부비며 일어나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옷이 바뀌어 있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어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내려다보다 고개를 까딱였다. 저녁 먹으러 갑시다. 저녁? 카라마츠는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보았다. 주황빛이 창문으로 희미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치마츠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이치마츠는 먼저 일 층으로 내려가 제 몫과 카라마츠 몫의 식사를 받아 테이블로 가져왔다. 카라마츠는 자리에 앉아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앞에 식사가 놓여진다. 가벼운 식사다. 숟가락을 들기 전에 두 손을 모으며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곧 아까 전 관리인이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관리인은 높은 직책에 앉아있는 성직자였던 모양이다. 카라마츠는 가늘게 떴던 눈을 감고 기도하는 시늉을 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식사를 하던 중 이치마츠가 물었다. 카라마츠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말없이 식사를 이어갔다. 카라마츠는 불편함에 식사를 다 하지도 못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치마츠는 그런 카라마츠를 말없이 바라보다 마저 식사를 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밖으로 나갔다.

 식사를 다 끝낸 이치마츠도 카라마츠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해는 어느새 넘어갔고, 달이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오늘 달빛은 그리 강하지 않으려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걷던 이치마츠는 걸음을 멈췄다. 익숙한 기운과 함께 소리가 들려온다. 이치마츠는 수풀로 들어가 천천히 소리가 난 쪽으로 다가갔다.

 

 "아직?"

 

 "조금만 더."

 

 조금이라니 얼마나? 형아, 지친다구-. 애처럼 굴지마. 칫. 카라마츠의 목소리다. 다른 목소리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했다. 이치마츠는 나무에 몸을 숨긴 채 고개만 밖으로 내밀었다. 달빛은 항상 타이밍이 좋았다. 달빛이 이치마츠가 보고자 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치마츠는 나무를 두 손으로 꽈악 붙잡았다.

 

 "배는 안 고파?"

 

 "딱히. 괜찮아."

 

 얼마전에 먹기도 했고. 그래? 응. 짤막한 대화들이 이어진다. 이치마츠는 기차에서 들었던 뼈를 씹는 소리를 떠올렸다. 역시 그 때 그쪽으로 가서 확인을 해봤어야 했는데. 까득 이를 갈며 이치마츠는 손으로 제 옷을 비틀어쥐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얼굴에 열이 오른다. 화가 나는 건가? 아니, 그것과는 조금 다른 거 같다. 이치마츠는 눈살을 찌푸렸다. 카라마츠가 대화하고 있던 자와 눈이 마주쳤다. 이치마츠는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카라마츠와 처음 만났을 때 같이 있었던 악마, 오소마츠다.

 

 "그 모습으로 있기 힘들지 않음?"

 

 "힘들지. 솔직히, 피곤하다."

 

 "그럼 여기선 그냥 원래 모습으로 있지 그래?"

 

 하지만 누가 보면 어떡하나? 괜찮아, 아무도 없다니까. 오소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치마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무언가가 쿵 하고 아래로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카라마츠는 그를 바라보다 머리를 쓸어올리더니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늘을 향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솟아난 뿔은 책에서만 본 저 바다 건너 어딘가에 살고있다는 크고 털많은 소의 것을 닮았다. 귀의 위치에 있던 사람의 귀는 털이 복슬한 짐승의 것으로 변해 아래로 향했다. 꼬리는 귀와는 어울리지 않게 파충류의 것으로, 굵고 단단해보였다. 신부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평범한 반팔티와 반바지로 바뀌었다. 다리는 평범한 사람의 다리였다. 마지막으로 등에는 커다란 날개가 달려 있었다.

 

 "이야, 그모습 오랜만에 본다. 그래, 오랜만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소감은?"

 

 "아까부터 계속 이상한 말만 하는군."

 

 카라마츠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본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풀이 흔들리며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카라마츠의 고개가 이치마츠쪽으로 돌아간다. 파랗게 빛나는 눈이 보인다. 이치마츠는 꽉 주먹을 쥐며 입을 다물었다. 카라마츠가 몸을 돌려 이치마츠쪽으로 다가온다.

 

 "카라마츠-."

 

 다가오려했다.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붙잡아 돌렸다. 카라마츠는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오소마츠를 바라봤다. 그 표정에 오소마츠는 상처라느니 뭐라느니 시끄럽게 떠들어대다가 제 입술을 두드렸다. 카라마츠는 하아, 길게 한숨을 내쉬곤 눈을 감았다. 오소마츠는 히죽 웃으며 이치마츠를 바라보다가 카라마츠의 입에 입을 맞췄다. 이치마츠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 성당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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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잠에 드노니. 내가 일어날 때 다시 한 번 너희를 심판하리라. 만일 그때에도 너희가 감사를 잊었다면 그땐 내가 너희를 떠나겠노라. 너희에게 힘을 빌려주지도, 말하지도 않겠노라. 이것은 나의 마지막 경고이자 최고의 형벌. 부디 내가 그 형벌을 내리는 일이 없도록.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여신을 만나러간단 말이 그렇게 충격적이었던 건가. 확실히 평범하진 않겠지만. 이치마츠는 가만 생각하다가 책을 가방안에 넣었다. 카라마츠는 손을 들어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기차 소리만 방에 울린다. 창밖은 어두워지고 있다. 노을이 가라앉고 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저녁 시간이다. 식당 칸에서의 식사는 정해진 시간에만 가능하니까, 얼른 먹고 오는 게 편하다.

 "식사하러 가시죠."

 "예, 예에."

 카라마츠가 느릿하게 일어난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위아래로 쭉 훑어보다 먼저 방을 나갔다. 뒤따라 카라마츠가 나온다. 함께 식당칸으로 향한다. 카라마츠는 걸어가며 다른 방들을 훑어보았다. 비어있는 방이 대부분이었다.
 식당칸의 문을 열고, 적당히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간단한 식사를 주문하고, 또 다시 침묵. 카라마츠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건지 아무런 말이 없다. 이치마츠는 그런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아까 전 읽은 창세기의 마지막을 떠올린다.
 여신은 경고했으나 인간은 감사를 잊은지 오래다. 여신의 가르침을 전한다 하는 성직자들 또한 제대로 된 감사를 하지 않고있으니, 다른 사람들이라고 제대로 감사 할 리가 없지. 그래서 여신은 떠났고, 여신의 힘을 빌려쓸 수 없게 된 인간은 악마들에게 괴롭혀지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츳 혀를 찼다.

 "그거 아십니까?"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어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타이밍 좋게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이치마츠는 스프를 한 숟갈 마시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맛은 나쁘지 않네.

 "여신께서 잠드신 이후, 여신의 힘을 쓸 수 있는 자가 각 세기마다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다른 성직자들보다 신성력이 강했습니다. 그들이 손짓 한 번 하면 모든 악마들이 떨어져 나갈 정도였으니까요. 그들의 몸 어딘가에는 여신님의 문장이 태어날 때부터 새겨져 있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그들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여신의 조각. 조각, 이라고."

 카라마츠는 가만 이치마츠를 바라보다가 꾸욱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 묻고싶지만 섣불리 물을 순 없는 모양이지. 이치마츠는 히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카라마츠가 흠칫 몸을 떤다. 이치마츠는 빵을 찢어 입안에 넣었다.

 "그래요. 제가 이 세기의 조각, 그리고 여신님의 마지막 조각입니다."

 그 이후로 카라마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그런 카라마츠가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말하지 않았다. 아마 그건, 보통 사람의 반응과 다름에서 오는 이상함일테니까. 다르게 말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거다. 그래. 이치마츠는 마지막 빵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식사는 끝났지만 바로 방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카라마츠는 후식으로 나온 쿠키를 입에 넣었다. 달다. 이치마츠는 그 모습을 가만 바라보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슬슬 자고 일어나야 할 시간이지 않을까. 이치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자네들, 이호인가?"

 그대로 방으로 가려 했것만. 이치마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말을 걸어온 늙은 남자는 허락도 구하지 않고 카라마츠의 옆에 앉았다. 카라마츠는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더 구석으로 밀어넣었다. 이치마츠는 속으로 혀를 차곤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멀리 가는 기차에 탄 걸 보면 직급은 낮은 모양이지?"

 남자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놈들은 순 사기꾼이야. 왕의 옆에 붙어서 보석 쪼가리라도 하나 떨어지지 않을까 입을 벌리는 녀석들이지. 그래놓곤 사람들에게서도 돈을 걷어간다니까? 제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면서."

 카라마츠는 흘끔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이치마츠는 무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동의라도 되는냥 말을 이어갔다. 대부분이 종교에 대한 험담이었고, 마지막은 제 종교에 대한 자랑과 포교였다.

 "그러니까 이제 믿을 건 여신이 아니라 우리 신님이라니까."

 이치마츠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라마츠도 따라 일어났다. 남자는 둘을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손짓하곤 방으로 향했다. 카라마츠는 그 뒤를 따랐다. 뒤에서 남자가 후회 할 거라는 말이 들려온다. 이치마츠는 무시했고, 카라마츠는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남자는 방까지 찾아오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방에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들었다. 그가 다시 깨어난 건 밤이 깊은 후였다. 확실한 시간은 알 수 없지만 아침이 되려면 세 네 시간정도 지나야겠지. 이치마츠는 몸을 일으켜 앞을 바라보았다. 카라마츠가 없었다.
 이치마츠는 방을 나왔다. 이 새벽에 어딜 간 거야. 쯧, 혀를 차며 복도를 걸었다. 어두운 복도엔 아무도 없었다. 화장실이라도 간 건가 싶어 화장실로 향했지만 그곳에 카라마츠는 없었다. 이치마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 애도 아니고. 다시 방으로 향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우두둑, 으득. 무언가 딱딱한 걸 씹어먹는 소리. 이치마츠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이 시간엔 식당칸이 운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기차엔 짐승이 탈 수 없다. 이치마츠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애써 무시하며 방으로 돌아왔다. 이 기차에, 악마가 타고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오길 기다렸다. 카라마츠는 한 시간쯤 더 지난 뒤에야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치마츠가 깨어있음에 놀랐지만 뭐라 말하진 않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가 몸을 눕혔다.

 "어디에 다녀오셨습니까?"

 이치마츠가 물었다. 카라마츠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몸을 카라마츠쪽으로 돌렸다. 달빛이 창으로 들어와 카라마츠를 비췄다. 얼굴은 아무 표정도 없었다. 이치마츠는 그 얼굴을 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애써 무시했다.

 "됐습니다. 주무시기나 하세요."

 안녕히 주무십시오. 카라마츠도 자리에 누웠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그렇지만 아침이 될 때까지 한 숨도 잘 수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키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뜬 건 방문을 두드리는 시끄러운 노크소리 때문이었다. 이치마츠는 짜증을 내며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그는 입을 우물거리다 겨우 입을 열었다.

 "제, 제 형제를 보지 못했습니까?"

 이치마츠는 눈살을 찌푸렸다. 카라마츠는 이제야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남자는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제 밤 형제가 갑자기 굉장한 걸 봤다며 그걸 확인하기 위해 방을 나갔다고 한다. 그때가 새벽 한 시 쯤이었다. 두 시간쯤 지난 뒤에도 그가 돌아오지 않아 남자는 그를 찾으러 방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기차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고, 아침이 되자마자 남자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의 행방을 묻고 다녔다고 한다.
 이치마츠는 그 말을 들으며 밤에 들었던 우둑거리는 소리를 떠올렸다. 어쩌면 그 소리는 남자의 형제가 잡혀먹는 소리였을지도 모른다. 남자는 이치마츠에게 다시 한 번 형제를 보지 못했냐고 물었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저었다. 확실하지 않으니까.

 "그렇, 습니까. 아침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마주치게 된다면 꼭 제가 찾고있다고 전해주십시오. 남자는 문을 닫았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기울이며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이치마츠는 입을 열었다가 닫곤 고개를 저었다.

 "아침이나 먹으러 갑시다."

 그 이후로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는 대화가 없었다. 이치마츠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듯 보였고, 그런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카라마츠는 입을 다물었다. 이치마츠는 조용한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기차에 악마가 있다. 그러나 그게 누구인진 알 수 없다. 어쩌면 남자의 형제가 악마일 수도 있다. 어제 밤에 들켰음을 알아채고 도망친 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러면 뼈를 씹는 소리가 남는다. 그건 분명 사람을 잡아먹는 소리였을텐데 이 기차에서 사라진 사람은 남자의 형제뿐이다.
 후우, 이치마츠는 길게 숨을 내쉬곤 눈을 떴다. 머리가 아파와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치마츠는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리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햇빛이 창을 통해 들어오고, 그 빛은 카라마츠를 비춘다. 심장이 떨린다. 고민이 하나 더 늘었다.

 결국 고민은 밤이 되어도 풀리지 않았고, 이치마츠는 잠에 들 수 없었다. 눈을 감은 채 자리에 누워만 있었다. 슬슬 새벽이 될 때 쯤, 카라마츠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렸다 닫히고, 이치마츠는 눈을 떠 그 뒤를 따라 나섰다.
 딱히 의심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아니, 의심하는 게 맞았다. 의심을 지우고싶어 뒤를 쫓는 것이다. 이치마츠는 식당칸의 문 앞에 도착했다. 문에 달린 작은 창으로 언뜻 무언가가 보였지만 뚜렷하진 않았다. 이치마츠는 손을 들어 옷을 움켜쥐었다. 심장이 빠르게 요동친다.
 달빛이 창으로 들어온다. 자리에 누군가 앉아있는지 그림자가 창을 통해 보인다. 한 명이 아니었다. 둘. 그리고 인간이 아니었다. 날개, 뿔. 이치마츠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카라마츠가 뒤돌아 이치마츠를 바라보았고, 기차가 터널로 들어가 주변은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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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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