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캐해석

*RT이벤트 당첨자이신 리끼린님께 드리는 글 입니다.

*소재 주의

 

 

 

 이치마츠는 아랫입술을 잘근거렸다. 몇 번이고 눌를까, 말까 고민하다 어제야 겨우 눌렀다. 그 뒤에 통화를 했고, 약속을 잡았다. 오늘 만나기로 했다. 약속 시간은 오후 한 시. 그러나 지금 시간은 오후 3시. 못 오는 건가? 이치마츠는 시계를 보다 핸드폰을 끄고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못 오는 게 아니라 안 오는 게 아닐까? 이치마츠는 한 달 전 쯤에 집으로 찾아왔던 쵸로마츠와 카라마츠를 떠올렸다.

 

 쵸로마츠가 취직을 하고, 얼마 지나지않아 쵸로마츠와 카라마츠는 같이 집을 나갔다. 그 이전부터 연애를 하고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형제들이기에 붙잡지 않았다. 집에 있으면 오히려 불편하고, 사랑하기 힘들 거라 생각했으니까. 사실 그것보단 같은 얼굴을 한 형제끼리 붙어먹는 걸 보고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겠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집을 나가서 일 년이나 지날동안 카라마츠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쵸로마츠를 통해서 안부를 전해 올 뿐, 집에 얼굴을 비치거나 심지어 전화를 하지도 않았다. 바쁜 건가? 카라마츠도 일을 구한 건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쵸로마츠가 말하는 내용으로 보건데 그건 아니었다. 카라마츠는 그저 집에서 집안일을 하며 외출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왜?

 그러던 중에 한 달 전 카라마츠가 쵸로마츠와 함께 집으로 찾아왔다. 여섯 쌍둥이가 다같이 맞춘 파카를 입고서. 소매는 내려가 있었다. 그렇지만 일 년 넘도록 보지도, 얘기하지도 못한 형제가 온 것이기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이치마츠를 제외하곤. 이치마츠는 그것에 이상함을 느껴 쵸로마츠가 일 층에 있을 때 카라마츠를 이층으로 불러냈다.

 

 "오우, 무슨 일인가? Brother?"

 "됐고, 소매 걷어."

 

 이전과 같이 제대로 발음되지도 않는 영어를 내뱉으며 묻는 카라마츠에 이치마츠는 짧게 대답했다. 카라마츠는 그 말에 멈칫 하더니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몸을 돌렸다. 이치마츠는 그런 카라마츠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다 가까이 다가가 팔을 강하게 잡았다. 카라마츠의 어깨가 크게 움츠러들고, 고개가 숙여졌다. 이치마츠는 까득 이를 갈며 카라마츠의 손을 잡고 소매를 걷어올렸다.

 

 "야, 쿠소."

 

 "카라마츠."

 

 카라마츠에게 뭐라 말하려는 순간, 쵸로마츠가 올라왔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팔을 놓아주곤 방 구석으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카라마츠는 급히 소매를 내리곤 방밖으로 나가 저를 찾아 올라온 쵸로마츠를 맞이했다. 둘이 웃으며 얘기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뒤로 한 달 내내 카라마츠는 또 연락이 없었다.

 

 그렇게 한 달. 그리고 연락. 약속. 지각. 지금 시간은 3시 30분. 이치마츠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익숙한 검은 가죽 자켓이 보인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테이블을 두 손으로 내리쳤다. 딸랑이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그가 들어온다. 이치마츠는 다시 자리에 앉아 이미 미지근해질 대로 미지근해진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늦었네, 쿠소마츠."

 

 "미안하다, Brother!"

 

 흘끔 눈으로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아직 폴라티를 입기엔 더운 계절이것만 폴라티에다가 가죽 자켓까지 걸치고 있다. 츳, 혀를 찬 이치마츠는 고개를 까딱였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앞에 앉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앉을 때 이상한 행동을 보이진 않았다. 다리는 멀쩡한 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마실래?"

 

 "훗, 남자라면 역시 에스프레소-."

 

 "핫초코."

 

 에. 당황한 카라마츠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치마츠는 카운터로 향했다. 핫초코를 주문하고 흘끔 자리를 보았다. 카라마츠는 카페에서 틀어준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고 있는지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부끄럽지도 않나. 쯧, 이치마츠는 혀를 차고 핫초코를 들고서 자리로 돌아왔다. 핫초코를 건네고, 앞에 앉아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핫초코 뚜껑을 열어 후, 바람을 불어넣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다시 카라마츠를 위아래로 훑었다. 소매 안쪽은 보이지 않았다. 폴라티가 딱 붙어있으니 당연한 건가. 가죽 자켓도 한몫 했다. 저 가죽 자켓을 벗기고, 소매를 걷어올리면 그때처럼 멍이 잔뜩 들어있을까. 이치마츠는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야, 쿠소마츠."

 

 "훗,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건가? 이 형님에게 말해보거라."

 

 전혀 고민을 들어주는 태도가 아닌데. 이치마츠는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 한숨을 내쉬었다. 카라마츠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가만 바라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모르겠다. 애초에 제대로 말해주지 않을테지. 저번에도 숨기려 하지 않았는가. 이치마츠는 입을 꾹 다물었다가 겨우 열었다.

 

 "내 친구가 말이야."

 

 "이치마츠! 드디어 친구가 생겼는가? 축하한다!"

 

 아, 진짜. 이치마츠는 욕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고서 카라마츠를 노려보았다. 카라마츠는 급히 입을 다물고 눈을 빛내며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무슨 말이든 해보라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이치마츠는 바로 말하지 않고 뜸을 들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서둘러 말해봤자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을거야. 진짜 친구에게 생긴 문제인 것처럼, 천천히. 이치마츠는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그 친구가, 애인이 있는데."

 

 있는데? 카라마츠가 뒷말을 따라한다. 이치마츠는 또 뜸을 들인다. 카라마츠의 얼굴이 전에없이 진지해진다. 동생에게 처음 생긴-처음은 아니지만- 친구에 관련된 고민이라 그런지 진지하게 듣고 있다. 그렇다면 말해도 괜찮겠지. 이치마츠는 일부러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친구가 없는지, 누가 듣고있진 않은지 확인하려 하는 행동을 흉내낸다. 카라마츠는 그런 이치마츠를 따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시 둘 다 앞을 본다. 눈이 마주친다. 이치마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애인이, 때리는 거 같아."

 

 그런. 카라마츠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핫초코를 한 모금 마시곤 손으로 턱을 잡고 고민에 빠진다. 이치마츠는 그런 카라마츠를 가만 바라보았다. 절대 자기 얘기라고 생각은 안 하는 건가. 이치마츠는 속으로 혀를 차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연기는 솔직히 자신없지만, 거기다 전 연극부 앞에서 하려니 떨리지만 해야만했다.

 

 "근데, 걔는 절대 헤어질 생각이 없는 거 같아. 연락도 잘 안되고, 가끔 만날 때마다 몸에 상처가 가득한데."

 

 그런가. 카라마츠가 짧게 말하고 생각에 잠긴다. 이치마츠는 잠시 기다린다. 즉석에서 짜서 연기한 것 치곤 상당히 잘 들어간 모양이다. 카라마츠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다. 이치마츠는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미적지근한데다 얼음이 녹아 밍밍하지만 손에 땀이 밸 정도로 더워서 마시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가 설득해보는 건 어떤가? 친구가 하는 얘기라면 들어줄지도 모르지 않은가. 이치마츠의 소중한 친구니까, 그냥 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지?"

 

 카라마츠가 입을 열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가만 바라보았다. 카라마츠는 웃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눈을 아래로 내려 카라마츠의 목을 바라봤다. 폴라티에 가려져있지만 언뜻 파란 자국이 보여지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다시 시선을 카라마츠의 얼굴로 옮겼다. 카라마츠는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가봐야겠다. 쵸로마츠가 곧 올테니까."

 

 이치마츠도 따라 일어나 카라마츠의 손을 붙잡았다. 카라마츠는 가만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웃으며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숨을 내쉬곤 손에 힘을 주었다. 카라마츠의 몸이 바르르 떨린다. 이치마츠는 몇 번 입을 우물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만하고 집으로 돌아와."

 

 집에 있으면 안전 할 거야. 모두에게 말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 보는 눈앞에선 때리진 않겠지. 자기 이미지를 가장 중요시 하는 사람이잖아? 쵸로마츠는. 이치마츠는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카라마츠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이치마츠는 눈살을 찌푸렸다가 피고 손을 놓아주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어깨를 손으로 토닥였다.

 

 "나를 사랑해서 그런거야."

 

 나를 사랑하니까 놓치고싶지 않아서, 사랑하니까 불안해서 그런 거야. 이건 모두 애정표현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죽지 않아. 그리고 내 몸, 튼튼하다는 거 누구보다 네가 잘 알고 있잖아? 그렇지? 이치마츠. 카라마츠는 웃었다. 이치마츠는 까득 이를 갈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카라마츠의 손을 쳐내고 앞서서 카페를 걸어나갔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핫초코와 주스를 버리고, 컵을 정리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라. 이치마츠."

 

 "너도, 가끔은 연락 좀 해."

 

 아아, 되도록 하려고 노력하겠다. 카라마츠는 손을 흔들곤 느릿하게 걸어갔다. 이치마츠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 집으로 향했다. 가장 가까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수 십 만 Km는 떨어져버린 것만 같다. 이제 땅에 발을 디딜 수도 없고, 바다에 몸을 맡길 수도 없다. 이치마츠는 츳 혀를 차곤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을 발로 찼다. 이대로 우주를 떠돌아다니게 되겠지, 저는.

 

 

 "다녀왔나, 쵸로마츠!"

 

 문이 열리자마자 카라마츠는 뛰쳐나갔다. 쵸로마츠는 그런 카라마츠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곤 안으로 들어왔다. 카라마츠는 방긋 웃으면서 쵸로마츠의 겉옷과 가방을 들어주곤 방으로 들어갔다. 쵸로마츠는 넥타이를 느슨히 하며 방석 위에 앉았다. 카라마츠는 금방 방에서 나와 쵸로마츠의 앞에 앉았다.

 

 "오늘, 이치마츠 만나고 왔어?"

 

 아아! 물론이다! 그래? 무슨 얘기했어? 친구가 생겼다더군. 친구에 대한 얘기를 했다! 친구? 이치마츠가? 굉장하네. 그렇지? 걱정했는데 다행이야. 걱정했어? 물론이지, 동생이니까. 그렇구나.

 

 "쵸로마츠?"

 

 쿵. 등이 바닥에 부딪쳤다. 일 층이라 다행히 아래층에서 올라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카라마츠는 실없는 생각을 하다가 눈을 굴려 쵸로마츠를 바라봤다. 주먹이 위로 올라갔다가 뺨으로 빠르게 내려온다. 퍽, 하는 소리가 들리고 눈앞이 핑 돌았다. 카라마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쵸로마츠를 바라봤다.

 

 "거짓말 하지마."

 

 내가 다 듣고 있었다는 거 알잖아? 네가 어딜 가는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네가 뭘 하고있는지 모두 다 알고있다는 거. 알잖아? 쵸로마츠는 다시 주먹을 들었다. 몇 번이고 같은 뺨을 내리쳤다. 발갛다 못해 파랗게 멍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입에선 피가 흐른다. 카라마츠는 어지러운 머리로 제 목도 가누지 못한 채 축 늘어졌다.

 

 "대답해봐."

 

 그런 카라마츠의 옷을 잡아 들어올린다. 고개가 기울어진다. 카라마츠는 몇 번 눈을 감았다 뜨고 쵸로마츠를 바라봤다. 두 손을 들어 쵸로마츠의 뺨을 감싼다. 짧게 입을 맞췄다가 뗀다. 쵸로마츠가 눈살을 찌푸리며 까득 이를 간다. 카라마츠는 방긋 웃었다.

 

 "물론 알고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아주 마음에 들어. 쿵, 머리가 바닥에 부딪치고 카라마츠는 정신을 잃었다.

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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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캐해석

*색 마츠(이치+카라) 중심의 논커플링

 

 

 

 카라마츠는 단 한 번, 나무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나무였지만 여섯 명은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들과 별 관계도 없고, 딱히 피해라거나 이득을 줄만한 사건도 아니었으니까. 그런 여섯 명 중 하나였던 카라마츠가 나무를 보러간 건, 순전히 변덕이었다. 형제들은 모두 외출하고, 집에 혼자 남아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다가 든 생각. 나무를 보러 갔다올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어떤 이끌림이었다고, 카라마츠는 말한다. 그건 나무가 시들기 한 달 전의 일이다.

 나무를 보러온 사람은 많았다. 한창 나무가 푸른 잎을 뽐내고, 그 주변을 고래가 날아다니던 시기였으니까. 고래들은 사람들 가까이로 날아다니기도 해서 용기있는 사람들은 손을 뻗어 고래를 만져보기도 했다. 카라마츠는 그런 사람들 사이에 서서 가만 나무를 올려다 보다 걸음을 옮겨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마시지도 못하는 에스프레소를 시키고 자리잡고 앉아, 해가 지고 모든 사람들이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다.

 밤 10시. 느릿하게 카페를 빠져나와 다시 나무로 다가갔다. 사람들은 없었다. 거대한 조명만이 아래에서 위로 나무를 비춰주고 있을 뿐이었다. 카라마츠는 숨을 삼키고 나무에 다가갔다. 바람이 불며 나뭇잎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는가 싶더니 그 사이로 커다란 고래 여러 마리가 빠져나와 카라마츠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카라마츠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나무를 향해 두 손을 뻗었다.

 모든 조명이 꺼졌다. 주변이 어두워졌다. 카라마츠는 흠칫 몸을 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희미하게 고래들이 보인다. 고래들은 카라마츠의 주변을 맴돌다가 멈춰 서더니 울기 시작했다. 카라마츠는 다시 나무를 바라보았다. 나무에서 긴 가지 하나가 카라마츠 쪽으로 뻗어나왔다. 그 끝에는 파란 열매가 달려 있었다. 카라마츠는 그 열매를 두 손으로 잡아 따냈다.

 

 

 "어이, 카라마츠."

 

 카라마츠는 눈을 떴다. 이치마츠의 얼굴이 보인다.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리곤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치마츠가 쯧 혀를 차더니 물병을 내밀었다. 그걸 받아들고 물을 마셨다. 집에서 나와 북쪽으로 가면 갈 수록 몸 상태는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나올 때까지만 해도 걷지도 못했것만 완전히 홋카이도로 들어온 지금은 죽이 아닌 그 어떤 것을 먹어도 소화를 시킬 수 있게 되었고, 속이 울렁거리는 일도 없어졌다. 카라마츠는 제 몸상태가 나아짐에 따라 기분이 점점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얼굴을 살피다 물병을 받아들었다. 뚜껑을 닫아 대충 던져두고, 봉지에서 삼각김밥을 꺼내 카라마츠에게 건넸다. 카라마츠는 별 말 없이 포장을 벗겨내고 입에 밀어넣었다. 이치마츠도 제 몫의 삼각김밥을 입에 넣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안개가 낀 새벽녘인 탓인지 모든 게 흐릿하게 보였다. 그나마 가는 길에 편의점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아니었다면 이 위험한 때에 갓길에 차를 세워뒀어야 했을 거다. 이치마츠는 열려있는 편의점에 감사하며 두 번째 삼각김밥을 뜯었다.

 

 "조금 자는 게 좋지 않아?"

 

 봉지를 묶어 뒷좌석에 던져두고 몸을 운전대에 기대며 이치마츠가 물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말에 흘끔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이치마츠는 눈살을 찌푸리며 쯧 혀를 찼다. 밖으로 나온 이후로 제대로 잔 적이 없는 주제에, 또 자기를 거부한다. 몸 상태는 많이 좋아졌지만 언제 또 나빠질진 알 수 없는 주제에. 이치마츠는 협박을 해서라도 재울까 고민하다가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카라마츠는 몸을 웅크렸다. 고래의 노랫소리는 홋카이도에 들어오는 순간 더이상 들리지 않고 있었다. 과연 자신이 잘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만약, 만약에 제대로 찾아온 것이 아니라면. 그곳에 갔음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이치마츠에겐 뭐라 말해야 하는 걸까. 다른 형제들에겐, 부모님에겐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카라마츠는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곤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해가 뜨면 가자. 아마 오늘 점심 쯤이면 도착 할 거야."

 

 응.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어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창밖을 바라봤다. 안개는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하늘은 파랗게 변하고, 온통 짙은 회색빛이었던 주변은 서서히 제 빛을 찾아간다. 바람이 부는지 나뭇가지는 흔들리고, 주변에 고양이가 있었던 건지 노랗게 빛나는 동그라미 두 개가 후다닥 나무 아래를 지나간다. 카라마츠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을 감았다.

 

 "있잖나, 이치마츠."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이치마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길게 한숨을 내쉬곤 다시 다리에 얼굴을 묻었다. 이치마츠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 다시 카라마츠에게로 돌아오며 손을 뻗었다. 카라마츠의 등을 토닥인다.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고 이치마츠를 바라본다. 이치마츠는 손을 내리고 안전벨트를 맸다. 안개는 걷혔고, 주변은 제 색을 되찾았다.

 

 "벨트 매. 오늘 안에 홋카이도를 벗어나려면 얼른 갔다와야 하니까."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발을 신고, 벨트를 맨다. 차가 움직인다. 고양이 한 마리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것에 대해 이치마츠에게 말해 줄 수 없었다.

 

 

 가무이곶까지는 금방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단단히 옷을 입은 뒤에 차에서 내렸다. 카라마츠는 완전히 나무가 시들기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이치마츠는 그 사실에 기쁜 한편, 어딘가 불편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카라마츠는 그런 이치마츠의 상태를 눈치챘지만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이제, 끝이 눈앞이었다. 카라마츠는 심호흡을 하고 앞서 걸어갔다. 그 뒤를 이치마츠가 따라갔다.

 문을 지나 길을 따라 걷는다. 주변으로 펼쳐진 풍경에 입이 벌어지려는 것을 막으며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뒤를 따라 걸었다. 카라마츠는 주변은 둘러보지도 않고 오로지 길만 따라 걸어갔다. 평소의 카라마츠라면 이 풍경에 시끄럽게 떠들어 댔을텐데. 이치마츠는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걷기 시작한지 몇 분이 지났을까. 슬슬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치마츠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카라마츠도 그 앞에 멈춰 섰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고래가 노래하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처음 듣는 소리에 놀라 눈을 크게 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고래는 보이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손에 땀이 차는 걸 느끼며 몇 번 주먹을 쥐었다 폈다.

 

 "카라마츠."

 

 카라마츠가 다시 걷기 시작한다. 길의 끝을 향해 걷는다. 이치마츠는 급히 그 뒤를 따라갔다. 끝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 수록 카라마츠의 걸음도 빨라졌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뒤를 쫓는데 급급해 주변을 둘러볼 여유조차 없었다. 고래의 노래 소리는 끝으로 가면 갈 수록 점점 더 커져갔다. 이치마츠는 힘이 빠져가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카라마츠의 뒤를 쫓았다. 여기서 놓치면 더이상 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탁.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드디어 카라마츠를 잡았다. 카라마츠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카라마츠는 울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울컥 하고 차오르는 감정을 간신히 삼키며 입을 열었다. 고래의 노래 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바람 소리도, 파도 소리도 모두 먹어버릴 정도로 커져갔다. 이치마츠는 자신의 목소리마저 먹혀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하며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가지마!"

 

 바람이 불었다. 파도가 쳤다. 고래가 하늘을 덮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손을 풀어냈다. 그 손을 두 손으로 꼭 붙잡아주었다가 놓아주곤 뒤돌아 걸어갔다. 고래가 그 뒤를 따랐다. 노래가 들린다. 카라마츠의 노래다. 고래의 노래다. 고래가 카라마츠의 주위를 맴돈다. 이치마츠는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그 뒤를 쫓았지만 곧 울타리에 막혔다. 카라마츠는 절벽의 끝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치마츠."

 

 카라마츠가 뒤돌아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는 그 자리에 서서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고래는 카라마츠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마치 하늘이 바다인냥, 카라마츠의 주변이 물속인냥 그렇게 아름답게 헤엄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카라마츠는 양 팔을 벌리며 웃고 있었다. 나무가 시들기 전 카라마츠의 모습으로, 그렇게 웃고 있었다.

 

 "속보 기억해?"

 

 나무 뿌리가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그 속보. 이치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마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며 심호흡 했다.

 

 "혼슈는 얼마 안가서 나무로 뒤덮일 거야."

 

 뭐? 이치마츠는 눈을 크게 떴다. 카라마츠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들었다. 고래가 헤엄을 멈추고 카라마츠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카라마츠는 주먹을 쥐며 손을 내렸다.

 

 "나무의 뿌리는 혼슈 전체로 퍼져나갈 거야.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나무가 자라나. 거대한 숲이 생길 거야. 그리고."

 

 카라마츠는 몸을 돌렸다. 수평선이 아름답구나. 작게 중얼거리며 카라마츠는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이치마츠는 생각에서 빠져나와 카라마츠를 불렀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돌려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다시 한 발짝 앞으로 걸어나갔다. 고래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노래를 부른다. 춤을 춘다. 고래가 카라마츠의 등을 떠밀고 있다. 어서 떨어져 버리라고,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버리라고. 여태 불러온 고래의 노래는 카라마츠를 죽음으로 몰아넣기 위한 노래.

 

 "내가, 내가 여기서 죽지 않으면 홋카이도도 그렇게 될 거야. 그 다음엔 시코쿠나 규슈가. 그 뒤엔 다른 대륙들도."

 

 일본을 시작으로 바다를 제외한 모든 곳이 숲으로 뒤덮여 버릴 거야.

 

 "단순히 뒤덮이는 것 뿐만이 아니야. 모든 사람들이 말라 죽고, 모든 건물들이 무너질 거야."

 

 카라마츠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몸을 돌려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양 팔을 들어올리며 방긋 웃었다. 이치마츠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고래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어서 떨어져 버리라고, 어서 죽어버리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치마츠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몸을 떨었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치마츠. 너처럼 여린 아이에게 이런 부탁을 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나는, 네가 아니었더라도 어떻게든 이곳으로 왔을 거다. 아니면 고래가 나를 찾아왔겠지."

 

 이치마츠는 주먹을 쥐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카라마츠에게 다가가 평소처럼 멱살을 잡으며 개소리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고래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머릿속을 가득 채워 다른 생각은 할 수 조차 없게 만들었다. 다리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아 서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치마츠는 제 무력함에 분노했고, 카라마츠의 말에 분노했다.

 

 "멋지지 않은가, 이치마츠! 나는 전 세계를 위해 희생하는 영웅이 되는 것이다! 비록 혼슈는 나무로 뒤덮이겠지만 그래도 다른 곳들은 무사할테니까!"

 

 나는 세계를 위해 선택받은 거다! 멋지지 않은가! 하나도 멋지지 않아. 그게 뭐야? 결국 너는 죽을 운명이었단 거야? 죽을 수밖에 없단 거야? 죽어야만 한다는 거야? 그것도 스스로가 선택한 게 아니라 선택 받았기 때문에? 이게 무슨 말이야? 이게 무슨 소리야? 이게 무슨 개소리야? 이게 무슨 헛소리야?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미쳤어. 카라마츠는 미친 거야. 그러니까 어서 데리고 가야해. 집으로 데리고 가야해. 집에 데리고 가서, 그간 모아놓은 돈으로 병원에 데리고 가야해. 그래야 하는데. 그래야만 하는데. 이치마츠는 입을 다물었다.

 

 "이치마츠,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 해도 될까?"

 

 마지막이라는 말 하지마.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방긋 웃었다. 뭐가 웃긴 거야. 이치마츠는 속으로 소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이치마츠. 가족들에게 내가 했던 말들을 전해줘. 혼슈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라고."

 

 장례식은 하지 말고, 시신을 찾을 생각도 하지 말라고. 그리고 사랑한다고도 전해줘. 이치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마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고래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카라마츠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바라봤다. 파랗다. 먼길을 떠나기에 딱 좋은 날씨다.

 

 "그럼, 이치마츠. 언젠간 다시 만나자."

 

 고래는 노래를 불렀다. 바람 소리도, 파도 소리도, 울음 소리도 묻어버릴 정도로 크게 노래를 불렀다. 씨앗은 바다 깊숙한 곳으로 잠겼고, 고래도 씨앗을 따라 바닷속으로 돌아갔다. 이치마츠는 그 자리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다녀왔어."

 

 이치마츠는 집안으로 들어섰다. 가족들은 모두 거실에 모여있었다. 열 두 개의 눈이 자신에게로 향했다. 이치마츠는 주먹을 쥐며 고개를 숙였다. 입술을 잘근거리다 거실로 들어서며 문을 닫았다. 뉴스에서는 나무 뿌리에 대한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뿌리는 이미 도쿄를 벗어나기 직전까지 와 있었다. 이치마츠는 주머니에 들어있던 통장과 카드, 차키를 상 위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이사 가자."

 

홋카이도로, 이사 가자.

 

 

 

 

 

Posted by 누군가라네
,

*개인적 캐해석

*색마츠(카라+이치) 중심 논커플링

 

 

 

 시끄러워. 이치마츠는 짜증을 내며 시끄럽게 울리고 있는 핸드폰의 배터리를 분리해냈다. 몇 시간 전 부터 일정한 간격으로 전화를 걸어오고 있었다. 시계는 자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손을 들어 제 앞머리를 쓸어올리곤 운전대에 이마를 박았다. 턱, 하고 어깨 위에 손이 올려진다. 그 손을 쳐낼까 생각하다 말고 허리를 폈다. 카라마츠의 손이 아래로 내려간다. 이치마츠는 그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가 쯧 혀를 찼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반응임에도 실제로 그렇게 반응하니 견디기 힘들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이치마츠가 물었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저었다. 힘들어하고 있었지만 고집은 여전했다. 이치마츠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다섯 시간 째였다. 중간에 기차로 갈아타려 했것만 기차는 운행을 하지 않았다. 차고지에 들어가 점검을 받을 수 조차 없는 상태라는 게 이유였다. 공항으로 갈까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남은 방법은 차를 타고 북쪽으로 가는 방법 뿐이었다. 거기서 또 뭘 타야했더라. 이치마츠는 쯧 혀를 차며 머리를 긁었다.

 카라마츠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이었다. 그렇다곤 하지만 언제 다시 나빠질지도 모르고. 솔직한 심정으로 이치마츠는 이쯤하고 돌아갔으면 했다. 하루를 꼬박 달려야 도착할까 말까다. 이치마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들었다. 일단 지금은 쉬어야 한다. 휴게소에 도착한지 이제 십 분째인가.

 

 "자. 해떠야 갈 거니까."

 

 툭 하니 내뱉었다. 카라마츠는 고개는 끄덕였지만 자고싶진 않았다. 잠이 오지 않는다. 계속해서 노래가 귓가에 맴돌았다. 이치마츠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이 소리는 북쪽으로 가면 갈 수록 더 커져서 어떨 땐 이치마츠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지금은 많이 잠잠해졌지만. 카라마츠는 안전벨트를 풀고, 신발을 벗었다. 발을 시트 위로 올리고 몸을 웅크려 다리를 끌어안았다. 다리사이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다.

 이치마츠는 흘끔 카라마츠를 보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휴게소의 늘어선 가게들도 모두 불이 꺼져있었다. 이치마츠는 후우, 길게 숨을 내쉬곤 눈을 감았다. 해가 뜨면 다시 열 시간을 넘게 차를 끌고 가야하니, 미리 자두는 게 좋겠지. 카라마츠는 알아서 잘 조절 할 거야. 이치마츠는 몸에서 힘을 뺐다.

 다시 눈을 떴다. 핸드폰에 배터리를 꼈다. 전원 버튼을 누를까 고민하다가 핸드폰을 켰다. 진동이 울린다. 수 십 통. 네 명이 번갈아가면서 계속 전화했나. 쯧, 혀를 차며 눈살을 찌푸렸다. 흘끔, 카라마츠를 보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재중 전화 목록을 쭉 내린다. 토도마츠, 오소마츠, 쵸로마츠, 쵸로마츠, 쥬시마츠, 오소마츠, 쵸로마츠, 엄마, 아빠. 그리고 진동. 오소마츠다. 이치마츠는 망설이다가 전화 버튼을 눌렀다.

 

 [이 새끼야!]

 

 이럴 줄 알고 스피커를 멀리 뒀지. 자신의 선견지명에 감탄하며 이치마츠는 핸드폰을 제쪽으로 끌어당겼다.

 

 "일단 진정해."

 

 [진정 할 수 있겠냐? 어?]

 [뭐야? 이치마츠? 이치마츠야?]

 [형! 카라마츠 형은? 카라마츠 형은 괜찮은 거야?]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아, 시끄러워. 이치마츠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아까보다 더 몸을 웅크리고 있다. 손을 들어 제 얼굴을 쓸어내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돌리고, 카라마츠와 자신의 사이로 옮겼다. 전화 너머는 여전히 시끄럽다. 누가 대표로 전화를 이어갈지를 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고서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일단 얘기를 들어볼게.]

 

 쵸로마츠가 이어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어깨를 두드렸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다가 몇 번 기침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카라마츠의 기침 소리에 저 너머가 다시 시끄러워졌다. 쵸로마츠가 제발 좀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자 다시 잠잠해졌다. 이치마츠는 생각을 정리했다. 어떻게 하면 납득시킬 수 있을까. 무슨 말을 해도 납득 시킬 수 없겠지. 이치마츠는 그냥 적당히 사실대로 말하기로 결정했다.

 

 "카라마츠가 홋카이도에 있는 가무이곶에 가고싶대. 그래서 가는 중이야."

 

 다시 소란. 그게 말이 돼?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카라마츠의 상태를 알고 하는 소리야? 지금 괜찮은 거야? 카라마츠, 아프진 않아? 춥진 않아? 홋카이도라니, 이 시기에? 제 정신이야? 미친 거 아니야? 얼른 돌아와! 허튼 생각 말고 일단 돌아와. 그 뒤에 다 같이 가자. 다 같이 가는 게 더 안전 할 거 아니야. 지금 운전하면서 전화하는 건 아니지? 지금 어디야? 우리가 그쪽으로 갈까? 잠깐, 잠깐.

 

 [일단, 일단 진정하자. 가무이곶엔 왜 가고싶은 거야? 카라마츠, 옆에 있지?]

 

 말해줘. 쵸로마츠가 모두를 진정시키고 묻는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들어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입을 다문 채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다. 쵸로마츠가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카라마츠를 달랜다. 네가 납득 할 만한 이유를 말해줘야 우리가 도와주거나 할 수 있어. 카라마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입을 몇 번 열었다 닫았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말, 할 수 없다. 미안하다."

 

 뭐? 자, 잠깐. 잠깐만. 카라마츠는 전화를 끊었다. 다시 전화가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몸을 웅크리고 다리에 얼굴을 묻었다. 이치마츠는 그 모습을 가만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받았다. 쵸로마츠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겨우겨우 그를 진정시키고,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대신해 형제들을 설득했다. 형제들은 이해하진 못했지만 카라마츠의 고집이라는 말에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이치마츠는 시계를 확인했다. 어느새 새벽 한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곤 편하게 몸을 기댔다. 몸에서 힘을 빼고, 천천히 잠에 빠져든다. 약간 열어둔 틈으로 찬 바람이 들어온다. 나쁘지 않아. 그렇게 해가 뜰 때까지 눈을 붙였다.

 

 

 "힘들진 않아?"

 

 이치마츠가 물었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는 쯧 혀를 차곤 운전대를 바로 잡았다. 해가 뜨자마자 달렸다. 지금 시간은 오후 한창 때였다. 밥은 대충 오는 길에 있던 휴게소에 들러 해결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면 이제 페리를 타러 가야한다. 시간이 맞는 페리가 있을까. 이치마츠는 아랫입술을 잘근거렸다.

 카라마츠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속이 울렁거린다. 차를 오래 탄 탓인가. 아니면 항상 죽만 먹다가 다른 걸 먹어서 위에 부담이 간 건가. 이치마츠에게 말해야 하나? 말하는 게 좋겠지. 그렇지만 여기서 차를 세울 수 있나? 카라마츠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살을 찌푸렸다.

 

 "속 안 좋아?"

 

 조금만 참아. 금방 세워줄게. 이치마츠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카라마츠는 차가 멈추자마자 밖으로 뛰쳐나가 도로변 풀숲으로 들어갔다. 이치마츠는 물을 들고 그 뒤를 따라갔다. 모든 것을 게워낸 카라마츠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숨을 몰아쉬었다. 물로 입을 헹궈내고 이치마츠에게 몸을 기댄다. 이치마츠는 그런 카라마츠를 부축해 다시 차로 돌아왔다. 카라마츠를 앉히고, 자신도 운전석에 앉는다.

 

 "이제 좀 진정됐어?"

 

 이치마츠가 묻는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방금 전까진 괜찮았는데. 이치마츠는 아까 전 먹은 걸 생각해보며 운전대를 잡았다. 차가 움직인다. 이치마츠는 운전에 집중하면서도 흘끔 카라마츠의 안색을 살폈다. 한결 가벼워진 얼굴이었지만 여전히 상태가 좋아보인다고 할 순 없었다. 다음 휴게소에서 쉬었다 가야하나. 고민하며 이치마츠는 라디오를 켰다.

 

 [-. 속보입니다. 지하철 붕괴 사고 현장에서 나무 뿌리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나무 뿌리는 도쿄 중심 광장에 자라난 나무의 뿌리로 확인되었으며 현재 빠른 속도로-.]

 

 카라마츠가 라디오를 껐다. 이치마츠는 흘끔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있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손을 치우고,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서는 전역으로 도쿄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사태가 퍼져나가고 있다는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이치마츠."

 

 이치마츠는 라디오를 껐다. 카라마츠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이치마츠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차안은 조용했다.

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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