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캐해석
*이치카라 데이를  기념하는 단편으로 쓰려했더니 편수가 나뉘어져 버렸습니다.
*동양풍의 어느 나라
*느리게 연재됩니다.
 
 
 
자, 그렇게 한 발 앞으로 내딛는 거다. 그렇지, 잘 한다. 그래, 그 다음엔 한 바퀴 돌고. 손을 위로 들어 올려 마치 상대를 유혹하는 것처럼. 상대의 시선을 네 손끝으로 옮겨오는 거야. 그 다음엔 그 손을 네 가슴 위로, 허리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해서 마무리. 그래, 잘 하네. 너라면 금방 익힐 수 있을 거야. 금방 이 세계에 적응해서 나처럼 다른 사람에게 춤을 전하며 살아가겠지. 싫은가? 싫다면, 사람을 잡아. 너를 이 시궁창에서 빠져나가게 해줄 사람을 말이야. 아주 간단한 일이지. 자, 자. 이걸로 오늘은 끝. 내일까지 연습 해 오도록 해. 너에게 거는 기대가 크단다.
 
카라마츠.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짙게 입술을 칠한다. 복숭아 향이 나는 향수를 목에 뿌리고, 머리를 높게 올려 묶는다. 언젠간 이 머리카락을 자르고 밖으로 나갈 일이 있겠지 기대하며 산지 어느새 십 여 년. 그 예전, 춤을 배울 때부터 가져왔던 기대는 이제는 색이 바래 버려서 희미해 질대로 희미해졌다. 다시 새기라면 새길 수 있었지만 더 이상 새길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저는 남에게 춤을 파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카라마츠는 후우, 길게 숨을 내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라마츠, 호명이에요. 금방 나갈게요. 짧은 대화가 오가고 문이 닫혔다. 거울을 들어 다시 한 번 제 상태를 확인한다. 머리카락이 삐져나온 곳은 없는지, 입술이 번지지는 않았는지, 옷을 반대로 입진 않았는지. 다행스럽게도 문제가 되는 곳은 없었다. 가슴이 없다는 게 좀 흠일까, 생각해봤지만 저는 남자이니 없는 게 당연하다. 근육이 있는 남자는 가슴이 크다는데 저에겐 근육을 기르는 사치는 허용되지 않았다. 하루하루 밥을 빌어먹기에 바쁜 삶이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천은 위로 올라올수록 하얗게 변해갔다. 그 위에 촘촘하게 새겨진 이름 모를 흰 꽃들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흩어져 마치 꽃잎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가슴 아래에 둘러져 있는 띠는 짙은 남색 빛을 띠고 있었는데 그 사이사이에 흰색 자수가 놓아져 누군가는 이를 보고 밤하늘이라 말했다.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흰 끈은 은하수라 불리곤 했다. 소매 아래로 나온 손은 답지 않게 가늘고 길었으며 언뜻 제 모습을 내비치는 다리는 털 하나 없이 매끈했다. 어떤 이는 이를 보고 타고난 것이냐 물었고, 카라마츠는 코웃음 치며 노력의 결과라 대답했다.
 
소리 없이 복도를 걸어간다. 흘끔흘끔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나쁘진 않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제 춤을, 제 몸을 살 돈도 없는 작자들에게 하나하나 반응 해 봤자 저에게 좋을 것이 하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럴 시간이 좀 더 돈 많은 사람을 위해, 저를 이 시궁창에서 건져내 줄 수 있는 사람을 위해 춤을 공부하고 몸을 가꾸는 게 더 이득이었다. 비록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를 시궁창에서 꺼내준 이는 없었지만.
걸음을 멈춘다. 이 유곽에서 가장 큰 방의 문 앞. 카라마츠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약하게 주먹을 쥐었다 펴고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였다. 옆에 서 있던 유곽의 시종들이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탁, 문이 끝까지 열렸다. 들어. 짧은 명령이 떨어진다. 카라마츠는 훤히 펼쳐진 오늘의 고난에 속으로 한탄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흐응.”
 
같은 얼굴, 다른 분위기. 카라마츠는 놀라 튀어나가려던 몸을 간신히 붙잡고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는 그런 카라마츠를 위아래로 훑더니 고개를 까딱였다. 카라마츠는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다가온 카라마츠를 다시 한 번 더 위아래로 훑어보다 입꼬리를 올렸다. 카라마츠는 척추가 훑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에 흠칫 몸을 떨었다.
 
“네가, 카라마츠?”
 
“그렇습니다만 특별히 저에게 따로 용무라도?”
 
“아, 그 전에.”
 
문 닫고, 모두 이 근처에서 물러나라고 해. 그의 말에 시종들이 고개를 끄덕이곤 문을 닫고 물러난다. 카라마츠는 저와 그만 남겨진 방에 불안한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그를 바라봤다. 그는 다시 한 번 카라마츠를 위아래로 훑어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카라마츠에게 손을 뻗어 어깨를 짚는가 싶더니 가슴을 훑고 허리를 잡는다. 카라마츠는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라 따질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입만 벌렸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벗어.”
 
“자, 잠깐.”
 
뒤에 이어진 그의 말에서야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카라마츠의 제지에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카라마츠의 옷을 붙잡았다. 카라마츠는 급히 제 옷을 붙잡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는 짜증 가득한 얼굴을 한 채로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카라마츠는 입을 꾹 다물고, 주먹을 쥐었다. 이대로 물러나선 안 된다. 저번에도 그냥 이대로 물러났다가 큰일을 당할 뻔하지 않았는가. 사전에 얘기되지 않은 행동은 계약 위반이다. 카라마츠는 마음을 다 잡고 입을 열었다.
 
“이는 사전에 얘기되지 않은 행위이며 그러므로 계약 위반입니다. 만약 이 행위를 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 상황에 따라 행위를 이어갈지 말지를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똑 부러지게 잘 말했다! 속으로 쾌재를 내지르며 카라마츠는 꽉 주먹을 쥐었다. 카라마츠의 말에 표정을 푼 그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다시 제 자리에 앉았다. 카라마츠는 그를 바라보다 그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팔짱을 끼고 카라마츠를 바라보다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마츠노 가의 삼남, 마츠노 이치마츠다. 나는 오늘 너한테 한 가지 권유를 하러 왔어. 그 전에 네가 적합한지 판단하기 위해 몸을 확인하고자 한 거다. 이거면 이유가 됐나?”
 
전혀 안 돼. 카라마츠는 바로 튀어나가려는 말을 억지로 삼키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치마츠는 그 대답에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제 머리를 짚더니 눈을 꽉 감았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이치마츠는 눈을 뜨고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나는 대역을 구하러 여기에 왔다. 그리고 너는 그 대역에 알맞아. 몸이야 천천히 바꿔 가면 되는 거고, 체격도 그다지 다르지 않으니까. 어때? 나랑 같이 가자.”
 
네가 원하는 건 뭐든 사주고, 네가 먹고 싶은 건 모두 먹게 해줄 수 있어. 더 이상 남을 위해서 춤을 추지 않아도 되고, 맺기 싫은 관계를 맺지 않아도 돼. 이 정도면 너한테 꽤 좋은 얘기 아니야? 만약 부족하다면, 돈도 줄게. 자, 어때?
카라마츠는 무릎 위에 올려둔 두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저 말이 무슨 뜻인지, 저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다. 이치마츠라는 저 남자는 저를 자신, 또는 누군가의 대역으로 세울 생각인 거다. 대역이 된다는 건 카라마츠라는 이름을 버린다는 뜻이고, 누군가로 오해받아 죽을 위험도 있다는 뜻이지. 카라마츠는 고개를 숙였다.
 
“길게도 아니야. 반 년, 반년만 그렇게 살아준다면. 너에게 돈과 자유를 줄게.”
 
여기서 벗어나고 싶잖아? 카라마츠는 눈을 꽉 감았다 뜨고 고개를 들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손을 뻗었다. 카라마츠는 후우, 길게 숨을 내쉬고 그 손을 잡았다. 이치마츠는 웃었지만 카라마츠는 웃을 수 없었다.
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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