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캐해석
※오메가버스


쥬시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도 쥬시마츠를 바라봤다. 쥬시마츠가 웃었다. 카라마츠도 따라 웃는다. 쥬시마츠가 손을 뻗어 카라마츠의 손을 잡았다. 카라마츠가 손을 맞잡아준다. 따듯하고, 크고, 두꺼운 손. 쥬시마츠는 이것이 현실임을, 자신들이 어른임을 떠올렸다.
카라마츠는 아이를 잃은 충격으로 기억을 지워버렸다. 고등학생, 연극부가 연극을 준비하던 때로 혼자 되돌아갔다. 의사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고 했다. 그저 안정시키고, 시간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만 했다. 뒤에 억지로 기억을 되돌리려는 행동은 하지 말라는 경고도 했다. 쵸로마츠는 그 말을 다른 형제들에게 전했다.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카라마츠의 행동을 떠올리며 입을 다물었다.
카라마츠는 그 후로도 연극 연습을 해야한다며 아침 일찍 일어나 교복을 찾았다. 그럴때마다 이치마츠가 따라 일어나 억지로 눕히고 다시 재웠다. 카라마츠는 불만이 많았지만 형제들의 분위기가 이상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끔 어디서 찾았는지 모를 낡은 연극 대본을 들고 혼자 연습 할 뿐이었다.

"너덜너덜해!"

쥬시마츠가 카라마츠의 연극 대본을 들어올렸다. 표지며 안은 여기저기 크고작게 찢겨져있었고, 그어져있는 줄들이 다 번져있었다. 몇몇 글자는 지워져서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그렇지만 카라마츠는 아무렇지 않게 대본을 읽었다. 카라마츠가 연극 대본을 얼마나 많이 봤는지 알 수 있었다.
토도마츠는 연극 대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연극 대본은 카라마츠가 고등학교 일 학년, 처음 연극부에 들어간 주제에 주연 자리를 꿰찼던 연극의 대본이었다. 못해도 수년은 된 그 대본이 아직까지 집에 남아있다. 그것도 여러번 읽은 흔적이 잔뜩 남은 채로. 카라마츠가 버리지 않았단 거겠지. 자신의 전성기였던 그때를 잊지 못했단 뜻이겠지. 한심한 형이다. 토도마츠는 혀를 찼다.

"내가 주연이니까, 이 연극을 성공으로 이끌어야해."

카라마츠는 자주 그렇게 말하며 연습에 열중했다. 연극은 이미 오래전에 끝나버렸다 해도 믿지 않았다. 장난이라 치부하고 연극 연습에 몰두했다. 결국 형제들은 포기하고, 녹음기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카라마츠를 지켜보기만 했다.
쵸로마츠는 오히려 이렇게 되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마 그 기억들을 계속 안고있었다면 카라마츠는 죽으려 했을 것이다. 지금은 좀 귀찮긴 했지만 달리 다른 행동을 하지 않으니까. 조금만 조심하면 되는거다. 더군다나 한 번 겪은 카라마츠니까 다루기도 쉬웠다. 쵸로마츠는 현실과 타협하는 걸 잘하는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그는 현실과 타협했다.

"오, 이치마츠. 이번 연극, 꼭 보러와!"

너의 멋진 형님이 데뷔하는 무대니까 말이지!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볼때마다 그렇게 말했다. 이치마츠는 처음엔 카라마츠의 멱살을 잡았다. 그 뒤엔 때리기도 했다. 그래도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볼 때마다 그렇게 말했다. 이치마츠는 반응하는 걸 관뒀다. 그저 어, 그래 하고 짧게 대답 하기만 할 뿐이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기억을 스스로 지웠다는 걸 알았을 때 가장 안심했다. 자신이 한 짓이 적어도 카라마츠에게 만큼은 없는 일이 됐다. 노골적으로 기뻐하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며 토도마츠는 쓰레기라 욕했다. 그래도 좋았다. 이치마츠는 다시 낙원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오, 형!"

형이란 호칭이 어색하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 표정에 카라마츠가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며 어디가 아프냐 묻는다. 오소마츠는 전혀 안 아프다고 과장된 몸짓을 보인다. 그럼 다행이라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등을 두드린다. 그럼 오소마츠는 웃으며 카라마츠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그러면서 오소마츠의 마음도 엉망이 되었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가 기억을 지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안심함과 동시에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올라왔다. 오소마츠는 모든 게 제잘못 같았다. 아니, 자신의 잘못이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었다. 오래전에 무뎌진 줄 알았던 양심의 바늘이 더 크고 뾰족해져서 자신의 심장을 찔렀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마주 할 수 없었다.

"쥬시마츠! 야구하러 갈까!"

야구! 쥬시마츠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라마츠는 웃으면서 글러브와 공, 야구 배트를 챙겨들었다. 쥬시마츠는 밝게 웃으며 카라마츠를 따라 나섰다. 행복해보였다.
쥬시마츠는 자신의 정신이 망가진 것을 무시했다. 카라마츠에게 맞춰서 카라마츠가 기억하는 그런 동생이 되었다. 쥬시마츠는 지금이 몇 년도인지, 자신이 몇 살인지 잊었다. 그것을 상기시킬 수 있는 때는 카라마츠의 손을 잡을 때 뿐이었다. 그걸 아는 사람은 쥬시마츠 밖에 없었다. 쥬시마츠는 다른 형제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말하지 않았다. 지금도 충분히 불행한데, 여기서 더 불행하게 만들 순 없으니까. 쥬시마츠는 모든 형제가 행복하길 바랐다.

"자, 간다!"

잘하지 못해도 좋아. 재밌으면 돼. 그게 바로 행복에 다가가는 방법이야. 카라마츠는 야구를 하며 자주 쥬시마츠에게 말했다. 쥬시마츠는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마츠의 말은 쥬시마츠의 마음 깊은 곳에 박혔다.
둘은 저녁 늦게까지 야구를 하고 들어갔다. 형제들이 왜이리 늦었냐고 잔소리를 한다. 그럼 카라마츠와 쥬시마츠는 웃기만 할 뿐이다. 한 두번 있는 일이 아니기에 잔소리하는 걸 포기하는 건 언제나 형제들 쪽이었다. 그럼 카라마츠와 쥬시마츠는 웃으며 안에 들어간다. 오늘도 무사히 넘겼다며 즐거워한다.


달이 아름답다. 카라마츠는 창밖을 바라보다 웃었다. 저렇게 아름다운 달이 자신을 비춰주고있다. 오늘 밤도 푹 잠들 수 있겠지. 카라마츠는 눈을 감고 몸에서 힘을 뺐다.
카라마츠는 너무 행복했다. 지금 이 순간이, 이 상황이. 너무 즐겁고, 좋았다. 비록 자신이 어른이 되어버려서 연극부 연극을 못하게 되었고, 다른 형제들도 어른이 되어서 많이 변해버렸지만 그걸 신경쓰지 않을 만큼 좋았다. 너무 행복했다. 너무 행복했다.
너무.

카라마츠는 눈을 떴다. 어두운 공간이다. 붉은 손들이 카라마츠의 몸을 구속한다. 옷이 찢겨나간다. 손가락들이 카라마츠의 몸을 탐한다. 카라마츠는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쳤다. 그 때 작은 눈이 보인다. 눈은 점점 더 커지더니 카라마츠보다 더 커진다. 눈이 자신을 바라본다고 느꼈을 때, 카라마츠는 한 마디만 겨우 짜낼 수 있었다.
미안해.


밤중에 꿈을 꾸었다.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눈가가 축축해서 만져보니 베개가 젖어있다. 슬픈 꿈을 꾼 걸까. 카라마츠는 몸을 일으켜 눈가를 문질렀다. 눈가가 뜨거웠다. 아마 슬픈 꿈을 꿨나보다. 슬프고, 또 슬퍼서 카라마츠는 몸이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카라마츠 형?"

쥬시마츠의 목소리가 들린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돌려 형제들 너머에 있는 쥬시마츠를 바라봤다. 쥬시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소리를 죽이고 카라마츠에게 다가왔다.
울어? 쥬시마츠가 묻는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저었다. 쥬시마츠와 눈이 마주쳤다. 카라마츠는 손을 뻗어 쥬시마츠를 끌어안았다. 쥬시마츠가 당황한 게 느껴지지만 저를 밀쳐내진 않는다. 정말 착한 동생이야. 카라마츠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쥬시마츠."

왜? 카라마츠가 부르자 쥬시마츠가 대답한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어 쥬시마츠를 바라봤다. 쥬시마츠가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기분 좋은 손길이다. 카라마츠는 웃었다.

"고마워."

넌 정말 착한 동생이야. 이제 다시 자자. 자리로 돌아가. 카라마츠가 다시 자리에 눕는다. 쥬시마츠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몸을 눕혔다. 방금 전 카라마츠는 고등학생 때의 카라마츠라고 하기엔 상당히 어른스러웠다고 쥬시마츠는 생각했다.

한 입 먹힌 사과는 어떻게 되는가.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은 어떻게 되었는가. 인간을 유혹한 뱀은 어찌 되었나. 죄를 지어버린 어린 아이는 어디로 향했나. 고장난 시계의 바늘은 어디를 가리키는가.
답이 없는 질문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모든 것은 제대로 매듭지어지지 못했다. 모든 것은 제대로 답해지지 않았다. 쓰레기가 땅에 묻히듯 그렇게 묻혀버렸다. 아아, 이 얼마나 애매한 결말인가. 이 얼마나 짜증나는 엔딩인가.
이야기는 매듭지어지지 못했다.


내가 이 일을 겪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뭔지 알아? 카라마츠가 말한다. 고개를 숙였던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었다. 카라마츠와 카라마츠의 시선이 교차된다. 카라마츠가 웃자 카라마츠가 따라 웃는다.

난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고,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았단 거야.
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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