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캐해석
※오메가버스
※절망루트
※절망적, 피폐, 암울 못 보시는 분들은 보지 않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비싼 시계는 그 시계에 맞는 전용 부품이 따로있다. 그렇기에 고치는 게 까다롭고, 심할 경우 고치는 게 아예 불가능하기도 하다. 사람의 정신도 이와같다. 한 번 망가지면 고치기 어렵고, 아예 고치는 게 불가능하기도 하다. 카라마츠는 지금 시계와 같은 상태였다. 아니, 아니. 날 그렇게 비싼 시계에 비유해도 돼? 카라마츠는 헛웃음을 흘렸다. 저는 그렇게 비싼 시계가 아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시계. 너무 안 팔려서 오래 걸려있다가 결국 멈추고만 시계. 약만 갈아준다면 얼마든지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착각하는 시계. 카라마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치마츠와 관계를 맺었다. 오소마츠와도 맺었다. 이전 히트사이클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제정신이었다는 거다. 반항한다면, 주먹을 휘두른다면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었다. 오소마츠와의 거래도 사실 필요치 않은 거래였다. 그냥 무시하면 되는 그런. 그런데 왜 받아들인 걸까. 왜 반항하지 않은 걸까.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몸 어딘가가 삐걱거리는 느낌이다. 속이 울렁거린다. 자신이 역겹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카라마츠는 그 누구보다 자신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때문에 더더욱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 했고, 오메가라는 걸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다. 오메가라는 것도 자신의 정체성 중 하나니까. 귀찮다고 생각하긴 했었지만. 그렇지만 최근엔 어떤가? 자신이 오메가라는 게 싫었다. 혐오스러웠다. 화가났다. 카라마츠라는 정체성이 지워지고 오메가 라는 것만 남은 거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소중히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비정상적인 관계야. 알고있어. 친형제, 거기다 쌍둥이. 아주 잘 알고있어. 왜 반항하지 않았어? 왜 도망치지 않았어? 도망칠 수 있었어. 너는 왜 그러지 않았어? 글쎄. 모르겠어. 사랑하는 거야? 아니. 사랑은 아니야. 그럼 형제라서? 그럴지도. 이치마츠 말마따나 자신은 병신이었다. 카라마츠는 자기 자신에게 비소를 날렸다.

"이제 그만 둬."

그래. 더 망가지기 전에 그만두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자. 동생들을 아끼고, 형을 동경했던 그 때로 돌아가자. 카라마츠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피곤했다. 눈꺼풀이 서서히 내려앉는다. 잘거라면 방에가서 자야하는데. 카라마츠는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그간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서 그런건지 몰라도 유난히 피곤했다. 아니, 피곤한 건가?
카라마츠는 눈살을 찌푸렸다. 피곤한 거라고 하기엔 뭔가 달랐다. 몸에 열이 오른다. 머리가 몽롱해진다. 아아. 갑자기. 학창시절 이후로 안정됐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요 며칠 사이에 알파와 접촉을 너무 많이 한 게 문제인듯 하다. 히트사이클이 불규칙해졌다.

"약."

카라마츠는 부엌으로 가려다 말았다. 이치마츠와 오소마츠가 있을지도 모른다. 둘 다 오늘 나간다는 얘기가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카라마츠는 주머니를 뒤적여 종이를 꺼냈다. 이전에 그 일 이후 쵸로마츠가 숨겨둔 약의 위치가 적힌 종이였다. 카라마츠는 흐릿해지는 시야로 겨우 글을 읽었다. 손님방 붙박이장 이불 밑.
카라마츠는 붙박이장을 열었다. 이불들이 쌓여있다. 그 밑에 손을 넣어 뒤적였다. 분명 이쯤에 있어야하는데. 다리에 힘이 빠지려는 걸 억지로 버티며 아래를 뒤적였다. 평소의 히트사이클보다 심하다고 느껴졌다.

"아."

카라마츠는 겨우 찾은 약봉지를 꺼냈다. 이제 안심이라며 숨을 내쉰 카라마츠는 약봉지를 바라봤다. 약봉지가 팔랑거리며 떨어진다.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착지. 카라마츠는 눈살을 찌푸렸다. 약봉지는 비워져있었다.
누가 비운거지? 생각 할 여유따윈 없었다. 이곳이 비워져있다면 다른 곳도 비워져있을 확률이 높았다.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한 짓. 이치마츠일까, 오소마츠일까. 아무래도 오소마츠쪽이 했을 확률이 높겠지. 카라마츠는 눈을 꽉 감았다 뜨고 방을 나왔다. 부엌에 가는 수밖에 없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힘들다. 이렇게 갑자기 훅 올라오는 건 오랜만이었다. 카라마츠는 손으로 벽을 짚으며 겨우겨우 걸음을 옮겼다. 부엌이 이렇게 멀었던가. 카라마츠는 결국 중간에 무너졌다.

"카라마츠?"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고 있었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 가장 마주치기 싫은 상대.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어 오소마츠를 바라봤다. 오소마츠는 입꼬리를 올려 웃고 있었다.

"히트사이클이야?"

아직 예정일까지 꽤 남지 않았어? 놀리고 있다. 카라마츠는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려했다. 알파향이 저에게 다가오고있었다. 최악. 지금 저 향에 휘말리면 뒤는 생각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저런. 그렇게 힘들면서 무리하지마. 카라마츠."

오소마츠가 눈을 접어 웃더니 카라마츠에게 다가온다. 카라마츠는 급히 손으로 입과 코를 막았다. 막을 수 있을리가 없다. 오소마츠는 소리내 웃으면서 카라마츠를 가볍게 안아들었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노려봤다. 알파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목이 마르다. 머리가 반죽처럼 물렁해진다.

"가자-."

오소마츠는 웃으며 카라마츠를 데리고 손님방으로 들어갔다. 카라마츠를 벽에 기대 앉히고 붙박이장에서 이불을 꺼낸다. 그러다 비어있는 약봉지를 밟고는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다. 오소마츠는 이불을 내려놓고 봉지를 들어 흔들었다.

"이건 쵸로마츠 생각이지?"

귀엽다니까. 이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 건가? 오소마츠는 약봉지를 던져두고 이불을 깔았다. 카라마츠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아아. 참아야해. 참아야해. 휘둘리면 안돼. 나는 강해. 강하니까 참을 수 있어. 카라마츠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이리와, 카라마츠."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이불 위에 눕힌다. 알파향이 가까워지니 금방이라도 이성을 잃을 거 같다. 오소마츠는 웃으며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이불을 덮어주고 핸드폰을 들었다. 다른 건 안하는 건가. 카라마츠는 흘끔 오소마츠를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저가 괜히 헛다리짚기만 한 거 같아 부끄러웠다. 그래, 이제 이때는 안 건드리기로 했으니까.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와 했던 거래를 떠올렸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일상에선 건드리지 않는다. 그리고 히트사이클 시기엔 일절 손을 대지 않는다. 그래. 그랬으니까. 약속은 꼭 지킨다고 했으니까. 카라마츠는 몸에서 힘을 뺐다.

"있지, 카라마츠-."

알파향을 간신히 무시하고 잠들락말락 한 상태가 되었을 때,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들린다. 카라마츠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눈을 떴다. 자고싶은데. 눈이 마주쳤다. 오소마츠는 웃고있었다.

"약속은 깨라고 있는거지."

그치? 저게 무슨 뜻이지. 카라마츠는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굴렸다. 그리고 답에 도달했다. 카라마츠는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핑 돈다.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어깨를 눌러 눕힌다. 안돼.

"계약은 파기야, 카라마츠."

아아. 카라마츠는 금이간 걸 느꼈다.
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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