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캐해석
※오소마츠상 3.5화에 나온 이치게르게가 왼쪽
※카라마츠가 혼자 산다는 설정


 그 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카라마츠는 어쩐지 항상 걷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고싶어졌다. 평소엔 그런 일이 없었고, 어차피 휴일이었으므로 카라마츠는 그 충동에 몸을 맡겼다. 카라마츠는 몸을 돌려 다른 길로 들어갔다. 주변은 조용했다. 빗소리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카라마츠는 수국과 마주했다.
 보라색으로 예쁘장하게 피어있는 수국은 카라마츠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카라마츠는 그 앞에 쭈구리고 앉아 수국을 들여다보았다. 예쁘다. 고향집에 있는 동생이 떠오른다. 카라마츠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수국 사진을 찍었다. 답장이 올거라는 생각은 안 하지만 보내 줄 생각이었다. 톡톡, 화면을 두드릴 때 소리가 들렸다.

 "우-."

 사람의 목소리 같았지만 그보다 더 작았고, 어딘가 탁했다. 카라마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시 우, 하고 낮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카라마츠는 소리가 난쪽으로 다가가 수국잎을 들췄다. 무언가 꿈틀거리며 카라마츠쪽으로 다가왔다.
 처음엔 민달팽이라고 생각했다. 비오는 날에 민달팽이를 보는 일은 흔하니까. 길이는 검지 손가락 정도로 제법 큰 편이다. 색은 보라색인데 포도를 먹은 거라고 생각했다. 민달팽이가 먹는 거에따라 색이 달라지던가? 어쨌거나 눈도 위쪽에 더듬이처럼 톡 튀어나와 있었으니까 민달팽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뭔가 다르다. 입이 있는 위치에는 사람 얼굴이 붙어있다. 조금 내려가니 작은 손도 달려있다. 배엔 초록색 소나무 무늬도 있었다. 그리고 얼굴은 제 두 번째 동생을 닮아 있었다.

 "아-."

 민달팽이-가 아님이 분명했지만 이름을 모르니 민달팽이라고 일단 부르기로 했다-는 갈라진 목소리로 울며 카라마츠의 손으로 다가왔다. 카라마츠는 저도 모르게 민달팽이에게 손바닥을 내어주었다. 민달팽이는 카라마츠의 손바닥으로 기어올라와 몸을 말고 눈을 감았다. 새근새근, 아주 작은 숨소리가 들리는 기분이다.
 점액질로 끈적거릴 거라 예상했지만 끈적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고 푹신했다. 카라마츠는 수국잎 몇 장을 떼어내 민달팽이에게 덮어주고 그대로 집에 데려와버렸다. 동생과 닮은 얼굴이라 그냥 두고 올 수 없었다고 변명하며 카라마츠는 유리병에 수국잎과 민달팽이를 넣어두었다. 뚜껑은 닫지 않았다.
 민달팽이는 두 시간 뒤에 눈을 떴다. 갑자기 바뀐 환경에 놀란 건지 두리번거리며 우, 우 울어대다가 익숙한 수국잎에 몸을 감췄다. 병을 돌리면 민달팽이의 모습이 보이겠지만 카라마츠는 그냥 내버려두었다. 민달팽이의 입장에서는 납치를 당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익숙해지면 나오겠지. 카라마츠는 큰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며 집안을 정리했다.
 민달팽이가 수국잎에서 나온 건 한 시간 쯤 뒤였다. 민달팽이는 유리병에 딱 달라붙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겁에 질려있던 아까 전 모습과는 다르게 호기심으로 눈이 빛나고 있었다. 적어도 카라마츠는 그렇게 느꼈다.
 카라마츠는 천천히 민달팽이에게 다가왔다. 민달팽이는 카라마츠가 다가오자 벌리고 있던 입을 더 크게 벌리며 최대한 큰 소리로 우, 우 하고 울었다. 카라마츠는 그런 민달팽이를 바라보다 병을 기울였다. 민달팽이는 그대로 주르륵 미끄러져 카라마츠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우-, 아-."

 잠시 정신을 못 차리고 비틀거리던 민달팽이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며 작은 두 손을 펼쳤다. 카라마츠는 검지 손가락으로 민달팽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거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민달팽이는 카라마츠를 올려다보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거실 테이블 위를 느릿하게 기어다녔다. 카라마츠는 그 옆에 앉아 그 모습을 가만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민달팽이는 뭘 먹고 살지? 갑자기 든 생각에 카라마츠는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화면을 켜니 아까 전에 찍은 수국 사진이 자신을 반겼다. 카라마츠는 가만 사진을 바라보다 홈 버튼을 누르고, 인터넷 앱을 눌렀다. 멋대로 데려왔으니 제대로 길러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선한 과일, 채소 같은 것들. 카라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 아-."

 걸음을 옮기니 민달팽이가 따라온다. 카라마츠는 고민하다가 민달팽이를 다시 유리병 안에 넣어주었다. 위험하니까 잠시만 기다려. 알아들을 리 없지만 그렇게 속삭이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냉장고 안은 텅 비어있다. 찬장엔 인스턴트만 가득이다. 카라마츠는 고민하다 겉옷을 걸쳤다.

 "금방 올태니까, 기다려."

 민달팽이에게 속삭이고 집을 나섰다. 뒤에서 기다려 라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무시했다. 혼자 사는 집이다. 민달팽이는 말을 하지 못한다. 저에게 기다리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방에 없다.
 근처 수퍼에서 대충 채소와 과일을 사왔다. 민달팽이는 유리병 안에서 얌전하게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어 민달팽이에게 칭찬의 말을 던졌다. 그 말을 알아들은 건지 모르겠지만 민달팽이의 얼굴이 붉어진 것 같다고, 카라마츠는 생각했다.

 "뭘 좋아할지 몰라서 이거저거 사와봤어."

 바나나, 토마토, 상추, 그 외 여러 가지. 카라마츠는 조금씩 접시에 담고, 민달팽이를 꺼내 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민달팽이는 카라마츠와 먹을 걸 번갈아 바라보다가 식사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카라마츠는 웃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이 귀엽다. 아, 그래. 카라마츠는 핸드폰을 꺼내 민달팽이의 사진을 찍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생각은 없지만.
 메신저 앱으로 들어가 둘째 동생이 있는 방을 누른다. 아까 전 찍은 수국 사진을 첨부하고, 네 생각이 나서 찍었다는 말을 덧붙인다. 읽음 표시는 뜨지 않는다. 카라마츠는 아랫입술을 깨물고선 홈 버튼을 눌렀다.

 "아-, 우-, 아-."

 민달팽이가 카라마츠에게 다가온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돌려 민달팽이를 바라봤다. 민달팽이는 작은 손으로 카라마츠의 손을 잡았다. 그러더니 몸을 부벼온다. 위로해주는 건가. 카라마츠는 웃으며 민달팽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그래. 이제부터 기를 거니까, 이름을 줘야지. 카라마츠는 민달팽이를 가만 바라보았다. 둘째 동생을 닮은 얼굴. 이치라고 부를까.

 "네 이름은 이제 이치야."

 나중에 이치마츠가 알면 뭐라 하겠지만 그런 일은 없을태니. 카라마츠는 웃으며 이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치는 우, 아 하는 소리를 내더니 입을 우물거렸다. 무언가 말하려는 걸까. 민달팽이가 어떻게 말을 한다고. 그렇지만 사람처럼 생겼잖아? 카라마츠는 손을 내리고 이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치는 몇 번 더 입을 우물거리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치-."

 이치는 무럭무럭 자랐다. 유리병은 금방 크기가 작아져 카라마츠는 커다란 어항을 사와야했다. 카라마츠가 일하러 나가면 이치는 혼자 남아 어항 속에서 얌전히 카라마츠를 기다렸다. 카라마츠는 집에 오자마자 이치를 찾았고, 이치는 카라마츠에게 매달리며 애교를 부렸다.
 카라마츠는 여유가 있을 때마다 이치에게 말을 가르쳤다. 이치는 지능이 제법 높은 듯, 금방 말을 익혀서 이제 제 의사를 어느정도 말로 표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화장실도 가릴 수 있어서 이불 위에 올려놓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이쯤 되어서야 이치가 민달팽이가 아님을 인정했다. 그렇담 이치의 정체는 무엇일까. 정체가 중요한가? 정체가 무엇인지 알면 더 잘 기를 수 있겠지만 지금도 괜찮지 않아? 그래. 지금으로도 충분해. 카라마츠는 이치의 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 라. 마츠-."

 "그래, 이치."

 이치가 두 손을 저에게 뻗으며 제 이름을 부른다. 카라마츠는 웃으며 이치를 안았다. 이치는 이제 소형견 보다 조금 큰 정도까지 자랐다. 얼마나 더 자랄지는 알 수 없지만 얼마만큼 자라든 버리지 않겠노라고 카라마츠는 다짐했다.
 그 다짐을 아는 건지 이치는 더 자라났다. 거의 카라마츠만한 키가 되었을 때, 카라마츠는 무언가 잘못 되고있음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딱히 뭔갈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이치가 집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줄 뿐이었다.
 이치는 착했고, 순했다. 그리고 얌전했다. 카라마츠가 하지 말라한 건 하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그것이 이치의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카라마츠에게 이치는 애완동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이치는 카라마츠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지능이 높고, 생각이 가능한 인간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그 날은 비가 내렸고, 이치와 카라마츠만 사는 집에 드물게 손님이 찾아왔다. 카라마츠는 손님의 얼굴을 확인하자 이치를 급히 옷방에 밀어넣고, 절대 나오지 말라고 명령했다. 이치는 고개를 끄덕였고, 방안에서 얌전히 앉아 카라마츠가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렸다.
 문 너머로 소리가 들려온다. 이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고함 소리인걸까. 아니 비명소리인가. 무언가 부숴지는 소리도 나는 것 같다. 텔레비전이라 불리는 뭔가를 보여주고 소리내는 상자에서만 듣던 소리들이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이치는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아니, 날 부르는 건가? 카라마츠의 목소리는 맞았지만 무언가 달랐다. 저를 부르는 거라면 다정하게 이치 라고 불렀을 것이다. 근데 방금 들린 건. 이치마츠, 거기다 화난 목소리. 이치는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잡았다. 무섭다. 열지 말라고 했다. 그렇지만 궁금했다. 이치는 아주 조금 문을 열었다.
 거울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카라마츠가 항상 보고 있었던 거다. 거울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카라마츠가 그랬다. 이치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카라마츠와 닮았지만 다른 모습이었다. 지금 저 너머에 서 있는 카라마츠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그만 좀 해! 나도 참을만큼 참았어!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데 왜그래?"

 "그렇다고 몇 주가 지나도록 연락을 안 해?"

 이치는 문을 닫았다.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했다. 문 너머에서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이치는 저 광경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었다. 이치는 손으로 제 가슴-으로 추정되는 부위-을 짚었다. 어쩐지 찡하니 울려오는 것 같다.
 밖이 조용해진 건 한참이나 지난 뒤였다. 카라마츠는 조심히 문을 열어주었다. 이치는 느릿하게 기어나와 방을 둘러보았다. 엉망이었다. 자신이 작았을 적에 지낸 유리병과 어항은 산산조각 나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위험하니까 기다려."

 카라마츠는 큰 조각들을 치우고 청소기를 가져와 작은 조각들을 빨아들였다. 이치는 얌전히 서서 기다렸다. 카라마츠는 청소기를 내려두고 손짓했고, 이치는 느릿하게 카라마츠에게 다가갔다. 카라마츠는 이치를 바라보다 웃곤 침대에 누워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이치는 조심히 침대로 다가가 몸을 숙였다. 카라마츠의 등에 얼굴을 대고 손으로 옷을 붙잡았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돌려 이치를 바라보다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빗소리만이 방안에 울려퍼졌다. 그 때 처럼.
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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