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상

[쵸로마츠] 덩어리

누군가라네 2015. 12. 4. 21:25
※개인적 캐해석
※과거 날조
※쵸로마츠 시점


하늘을 나는 느낌은 어떤 걸까.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비행기를 타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많은 것을 잊고 살고있어서 인가. 하늘을 올려다보던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눈이 부셨다. 햇빛이 따갑다. 카라마츠의 선글라스를 빌려서 나올걸 그랬나. 아니, 그건 아니지. 후우, 길게 숨을 내쉬며 길을 걸었다.
갑자기 길거리가 시끄러워졌다. 누가 무슨 쇼라도 하고있나. 숙였던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근처 대학의 동아리가 연주회를 하고 있었다. 대학의 이름은 가물가물했지만 연주는 최고였다. 무엇보다 연주하는 사람이 멋지다고 느껴졌다. 자신이 하고싶은 걸 하며 행복해하고있다. 청춘 드라마의 주인공인가.
순간 울컥 하는 느낌이 들어 그대로 뒤돌아 달려갔다. 대학이 뭐 대수라고. 대학에 가면 다 청춘 드라마가 펼쳐지는 줄 아나. 아닐 걸. 가면 공부만 잔뜩 할 거야. 분명 그럴 거야. 괴롭기만 할 거야. 그렇지? 누가 그렇다고 대답해줘. 제발 누가 그렇다고 대답해줘.
숨이 차올라 걸음을 멈췄다. 숨을 몰아쉬며 어지러운 머리를 진정시키고 고개를 드니, 전에 토도마츠가 아르바이트했던 가게가 보였다. 명문대생이라 속였지. 토도마츠. 입에 침도 안바르고 잘도 그런 거짓말을. 명문대는 커녕 대학 갈 생각도 못했던 주제에.
못했던 건가? 아랫입술을 깨물고 길을 걸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를 바라보며 비웃고 있는 듯했다. 나를 손가락질하고, 나에게 욕을 내뱉고. 쓰레기라고, 미래가 없는 사람이라고.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려 다시 공원이다. 공원의 벤치에 앉아 숨을 몰아셨다. 심장이 터질 거같다. 이대로 터져서 죽어도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니트 인생인데. 말로는 취직, 취업. 그렇지만 정작 한 건 아무것도 없어.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누군가가 나를 노려보고 있는 거같이 느껴졌다. 이 시선은 도대체 누구일까. 도대체 왜 나를 바라보는 걸까. 왜 더럽고, 더러운 내 속을 꿰뚫어보려고 하는 걸까.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은 이 덩어리를 보려고 하는 걸까.

"아아."

두 손을 내렸다. 행복하고 즐겁게 공연하던 대학생들이 떠올랐다. 나이는 나랑 비슷하거나 어리겠지. 아, 한 명은 나보다 많아보였어. 굉장하네. 그 나이에 어린 아이들 틈에 섞여서 원하는 걸 하다니. 굉장해. 아. 나도 그럴 수 있을까.
공부를 접은지 오래됐다. 수험 준비를 하다가 때려쳤다. 해봤자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건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아니. 두 명은 아니야. 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떠올랐다.
카라마츠는 연극부였다.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허세가 좀 심하긴 했지만 그 허세는 연기에 힘을 실어주었다. 카라마츠는 학창시절에 제법 유명했다. 카라마츠의 연극을 보기위해 다른 학교에서도 올 정도였으니까. 더 굉장했던 건 카라마츠지. 카라마츠는 자신의 연기가 굉장하단 걸 알았다. 모두에게 인기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에 자만하지 않았다. 배우가 연기를 잘 해야하는 건 당연한 거라며 더더욱 연기를 잘 하기 위해 노력했다. 부러웠다. 무엇보다 부러웠던 건, 연기를 할 때의 카라마츠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는 거다. 나에겐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일이 없었는데.
쥬시마츠는 지금도 그렇지만 체육 만능인이었다. 육상이면 육상, 수영이면 수영. 야구는 좀 부족했지만 야구를 할 때 가장 즐거워했다. 모든 운동부에선 쥬시마츠를 데려가려고 난리였다. 쥬시마츠는 야구부를 가고싶어했지만 안타깝게도 야구부는 쥬시마츠를 받아주지 않았다. 실망한 쥬시마츠는 대신 수영부를 택했다. 타고난 체력, 타고난 신체. 쥬시마츠의 수상 실적은 굉장했지. 야구가 아니라 아쉬워하긴 했지만 쥬시마츠는 수영을 할 때 무척이나 즐겁고 행복해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더라. 떠올리고싶지도 않다.
둘의 미래는 창창했다. 카라마츠의 타고난 연기 재능과 노력하는 모습. 쥬시마츠의 타고는 운동 신경과 즐겁게 임하는 모습. 둘은 자신들이 원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럴 자격도 있었다. 그 길을 막은 건 누구였더라.
나는 열등감 덩어리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성장하지 않는 오소마츠형을 내팽겨치고 공부에 집중했다. 상식을 기르고, 성적을 올리는 것에 열중했다. 그렇지만 그간 해온게 없었기에 그것은 엉망으로 세워진 젠가 같았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무너지고 마는 그것. 그럼에도 나는 억지로 쌓아올렸다. 엉망이어도 쌓아올리다보면 높은 곳에 도달할 거라 생각했다. 오만이었고, 착각이었고, 환상이었다. 엉망으로 쌓아올린 나무 조각은 당연히 무너진다.

"왜!"

그때 나는 울었다. 형제들 앞에서 처음으로 울었다. 엉망인 시험지를 손으로 찢어버리며 울었다. 왜 노력했는데 안되는 거지. 왜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는 거지. 왜 나는 카라마츠나 쥬시마츠처럼 할 수 없는 거지. 그래. 나는 열등감에 미쳐서 곧 중요한 때를 앞두고 있던 둘에게 그렇게 소리쳤다.
카라마츠는 착하다. 지금도 그렇고, 예전에도 그랬다. 카라마츠는 내 등을 두드려주며 말했었다. 네가 원한다면 언제까지고 네 옆에서 걸어가주겠다고. 그 말의 의미를 나는 몰랐고, 어리석었던 나는 같이 걸어가자했다. 카라마츠는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수많은 곳에서 오는 러브콜을 거절했다. 허세 가득한 형제들에게 무시당하는 그저그런 차남으로 추락했다.
쥬시마츠는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사과했다.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자신만 행복해서 미안하다고. 형의 마음을 생각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모든 형제가 행복해질 때 까지. 모두의 곁에 남아있겠다고. 쥬시마츠도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시험을 보지 않았다. 추천장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다. 형제들을 위하는 사랑스러운 오남으로 추락했다.
아. 나 쓰레기네.

"하."

그 뒤에 나도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여섯 쌍둥이는 그렇게 모두 대학을 포기했다. 그때 오소마츠 형이 날 어떻게 바라봤더라? 이치마츠가 나에게 뭐라 했더라? 토도마츠는 뭐라고 했었지? 기억나지 않아. 아니. 아니야. 넌 기억하고 있어. 떠올리기 싫을 뿐이야. 그래.
오소마츠 형은 나를 동정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형과 동생의 길을 끊어버린 나를 동정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을 그땐 끔찍하게 여겼지. 다시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열등감의 덩어리를 감히 어떻게 건드릴까. 건드리면 터져버릴지도 모르는데. 아니, 이미 터져서 줄줄 흐르고 있던 덩어린데.
이치마츠는 나에게 좋냐고 물어봤었다. 두 형제의 앞길을 막아서 좋냐고, 그게 그렇게 웃을 일이냐고. 나는 어떻게 대답했더라. 대답하지 못했다. 이치마츠는 화를 내며 방을 나갔지. 그 뒤에 난 울었다. 열등감 덩어리를 버리지 못한 채, 그걸 끌어안고 울었다.
토도마츠는 딱히 별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안쓰럽네 라고 한 마디 하고 말았을 뿐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바닥이 무너져내려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나와 함께 떨어진 열등감 덩어리는 짜증나게도 멀쩡했지만. 나는 상처투성이. 스스로 낸 상처라 누구에게 원망하지도 못했어.

"흐으."

오랫동안 묻어왔던 열등감 덩어리가 지금 다시 땅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왜 아직도 이걸 버리지 못했는가. 빠득 이를 갈며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가장 정상인이라고, 가장 상식있다고 소리친 주제에 가장 추악했다. 가장 쓰레기였다. 가장 나쁜놈이었다. 죽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만큼. 아. 그냥 이대로 죽어버릴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다시 나락으로 떨어져버리니 오를 힘이 나지 않는다.






톡.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고개를 들었다. 오소마츠 형의 얼굴이 가까이에 보인다. 오소마츠 형은 놀란 얼굴로 날 바라보다 손으로 내 뺨을 부볐다. 아니, 눈물을 닦아주었다.

"우리 삼남, 형아가 보고싶어서 울고 있었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아니거든. 투덜거리며 바르게 앉아서 고개를 돌렸다. 오소마츠 형이 옆자리에 앉는다. 하필이면 이때 마주칠 건 뭐람. 평소처럼 경마장이나 빠칭코에 틀어박혀있지. 속으로 투덜거리며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여기, 금연 구역인데-."

아. 쯧. 혀를 차곤 담배를 입에 문 채로 가만히 있었다. 오소마츠 형이 바라보는 게 느껴진다. 고개를 돌리니 눈이 마주쳤다. 오소마츠 형은 웃고있었다. 항상 뭐가 좋아서 저렇게 웃는 건지 모르겠다. 어떻게하면 저렇게 항상 웃을 수 있는 걸까.

"예전 일, 기억나?"

무슨 일? 앞뒤 다 잘라먹고 예전 일이라 말하니 못알아듣겠다. 되물으니 예의 그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이만했을 때 말이야. 자기 허리 정도에 선을 긋는다.

"같이 축제에 갔었어."

유카타를 입고서 말야. 여섯 명이서 같이. 그 근처에 신사가 있었지. 우리는 그때 호기심과 탐험심으로 똘똘 뭉쳐있었고. 그 신사를 탐험하러 들어갔지. 그러다 숲으로 잘못 들어가서, 길을 잃어버렸지. 우리가 가진 거라곤 등 하나 뿐이었고. 우리에게 보이는 거라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축제 빛 뿐이었어.
그런 일이 있었지. 오소마츠 형은 제스쳐까지 취해가며 얘기를 이어갔다.

"등도 곧 꺼져버렸지. 우리는 일렬로 서서 걸어갔어. 내 뒤엔 카라마츠가, 그 뒤엔 네가, 네 뒤엔 이치마츠가, 이치마츠의 뒤엔 쥬시마츠가, 쥬시마츠의 뒤엔 토도마츠가."

여섯 명이 일렬로 걸어갔지. 넘어질 뻔하면 받쳐주고, 무언가에 걸려 비명을 지르면 걸린 걸 치워주고. 벌레가 떨어져서 놀라면 벌레를 떼어주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저 멀리 보이는 축제 빛을 향해 걸어갔지.
무슨 말을 하고싶은 걸까, 오소마츠 형은.

"그리고 마침내 도착했을 때, 하늘엔 아-주 크고, 아-주 멋진 불꽃들이 수놓여졌지. 우리를 환영해주는 불꽃이라 말하면서 우린 웃었어. 기억해?"

아주 잘 기억하고있다. 그때 처음엔 싸웠다. 서로 너때문이야, 너때문이야 하면서 잘못을 미뤘다. 그러던 중에 오소마츠 형이 일단은 나가야한다며 멀리 보이는 축제 빛을 가리켰다. 보인다고 해야할까. 정말 희미한 빛이었다. 어쩌면 그건 축제빛이 아니라 도깨비불 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우리는 처음엔 따로 걸어갔다. 그러다 토도마츠가 쥬시마츠에게 붙고, 쥬시마츠가 이치마츠에게. 그렇게 여섯 명이 일렬로 서서 걸어갔다. 앞에 있던 카라마츠의 등이 든든하게 느껴졌고, 뒤에 날 잡고있는 이치마츠의 손에 내가 더 용기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뒤엔 오소마츠 형이 말한대로다.

"무슨 말을 하고싶은 거야?"

이런 건 직접 말해주는 게 더 좋은데. 오소마츠 형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소마츠 형은 코를 쓱 하고는 허리에 팔을 올리고 가슴과 어깨를 넓게 펼쳤다. 그 모습이 정말 당당해보여서, 오소마츠 형다워서 괜시리 가슴이 찡해져왔다.

"우리 여섯 명은 결국 하나라는 거지."

뭐야, 그거. 무슨 결말이 그래. 김새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오소마츠 형이 나를 바라보더니 따라 웃는다. 아아. 결국 얘기는 아무 의미 없었던 건가. 그저 바보같은 말로 나를 웃기기 위했던 건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덩어리는 다시 묻혔다.

"집에 가자."

그래. 오소마츠 형이 내민 손을 잡았다.

"그리고 우린 아직 젊어."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웃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