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상

[오소마츠] 여기있다 -2

누군가라네 2015. 12. 2. 13:58
※개인적 캐해석
※사망소재
※오소마츠 시점



나에게는 두 명의 쌍둥이 동생이 있다. 원래는 다섯 명이었지만 세 명은 이곳을 떠났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먼 여행을 떠났다. 떠난 시기는 다 다르지만 아마 지금쯤 모두 만났을 거라 생각한다. 카라마츠는 상냥해서 기다리고 있었을 태니까. 쵸로마츠도 카라마츠의 의견을 따라 기다렸을 태니까. 이치마츠를 그렇게 빨리 만날 거라곤 생각도 못했겠지만. 당황했을 얼굴이 눈에 선하다. 어린 카라마츠, 성인과 청소년 사이의 쵸로마츠, 성인 이치마츠. 가장 형이 가장 동생이 되었겠지.

"오소마츠 형! 괜찮아?"

눈을 뜨고 쥬시마츠를 바라본다. 쥬시마츠는 언제나처럼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고있다. 괜찮아. 몸을 일으켜 쭈욱 기지개를폈다. 쥬시마츠는 그런 나를 뒤에서 꼬옥 끌어안았다. 어리광인가, 위로인가. 어느쪽이든 나는 울컥해오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힘들었다.
쥬시마츠는 어렸을 때부터 조용하고 착한 아이였다. 이치마츠와 같이, 부모님의 속을 썩이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 카라마츠가 죽고나서 바보같은 짓을 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 앞에선 평범하지만 형제들 앞에선 바보처럼 행동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같이 웃었던 적도 많았다. 쥬시마츠는 우리를 웃게 하기위해 그렇게 행동했다.
그건 지금도 이어져와 우리와 함께 있을 때 쥬시마츠는 언제나 웃고있다. 그 얼굴은 웃곤 있어도 행복은 담겨있지 않아 안쓰러웠지만 웃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릴 위해서 이렇게 웃어주는데, 그걸 어떻게 하지 말라고 하겠어. 노력하고 있는데. 내 말 한 마디로 무너지면 어떡해. 무서워.

"이거 봐봐!"

쥬시마츠는 갑자기 일어나더니 가방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온다. 어째 예전 일이 겹쳐보이는데. 나는 쥬시마츠가 꺼내온 종이를 받아들었다. 종이에는 유명한 야구단의 이름과 그 감독의 이름,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쥬시마츠는 야구를 좋아한다. 좋아 할 뿐만 아니라 실력도 꽤 좋았다. 특히 공을 던지는 걸 아주 잘했다. 거기다 발도 빠르고, 체력도 상당하다. 그야말로 타고난 선수. 쥬시마츠는 어렸을 때부터 야구 선수가 되겠노라 말해왔다. 그리고 지금, 그 꿈의 문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스카웃 제의였다. 제의를 받은 건 일주일 전으로, 학교에서 연습 시합을 하고 있을 때 감독이 찾아왔다고 한다. 감독은 쥬시마츠를 마음에 들어했고, 쥬시마츠는 감독의 제의를 거절 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집에 남아있는 나와 토도마츠가 생각나서 대답을 미뤘다고 했다. 그리고 일주일 내내 오늘은 말해야지, 말해야지 하면서 망설였다고 했다. 바보같긴.

"걱정하지마!"

오히려 유명해지는 쪽이 더 좋은 거 아냐? 나는 쥬시마츠에게 어깨동무를 해주며 웃었다. 쥬시마츠는 금방 밝은 얼굴이 되었다. 평소의 웃음이 아니었다. 평소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기뻐하는 그런 웃음이었다. 그 웃음을 바라보며 나는 가슴 한구석이 찡하게 울려왔다. 우리때문에 쥬시마츠는 꿈을 포기하려 했었다.
쥬시마츠는 기뻐하며 일어나 바로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러 말들이 오가고, 쥬시마츠는 기쁨에 찬 환호성을 내지르며 온 집안을 뛰어다녔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다가 고개를 숙였다. 이제 정말 행복해지는 거겠지. 이젠 행복함보다 불안함이 더 빠르게 와닿았다.

"내일이야!"

쥬시마츠가 달력에 가위표를 치며 소리친다. 쥬시마츠는 이제 내일이면 집을 떠나 꿈을 향해 다가간다. 그 모습이 너무 행복해보여서 나는 축하한다는 말 말곤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오소마츠 형."

밤 늦은 시간. 쥬시마츠가 나를 불러 깨웠다. 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쥬시마츠를 바라봤다. 쥬시마츠는 손을 뻗어 내 손을 잡고 나를 바라봤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걸까. 나는 가만 바라보다 카라마츠를 떠올렸다.

"자장가, 불러줄까?"

쥬시마츠나 다른 동생들이 잠이 안온다 할때면 카라마츠는 자장가를 불러주곤 했다. 그러면 다들 어린애도 아니고 뭐하는 거냐며 싫어했지만 정작 듣기 시작하면 금새 잠에 빠져들었다. 그럼 카라마츠는 나를 바라보며 아직 모두 어리다고 웃었지.
나는 생각에서 빠져나와 쥬시마츠의 가슴을 두드려주며 자장가를 불렀다. 쥬시마츠는 눈을 감고 내 자장가를 들으며 몸에서 힘을 뺐다. 잠이 드는 건 금방이었다. 아직 어린애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왜 아직도 남아있냐."

나는 눈을 꽉 감았다.

"다녀오겠습니다!"

아침 일찍 쥬시마츠는 집을 나섰다. 나는 쥬시마츠에게 조심히 다녀오라고, 힘내라고 말하며 배웅 해 주었다. 쥬시마츠는 눈물 가득 고인 눈을 하고선 방긋 웃으며 열심히 하겠다 소리치고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방으로 올라갔다.
언제나 여섯 명이 같이 자서 좁아진 이불은 이젠 너무 널널해서 허전하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이불을 개서 붙박이장에 넣었다. 소파에 앉아 방을 둘러보니, 무척이나 넓어보였다. 이렇게, 넓었었나.
방 한가운데에 몸을 눕혔다. 이제 이 방에서 자는 건 자신 혼자였다. 토도마츠는 기숙사로 들어갔고, 쥬시마츠도 야구단에 들어갔다. 다른 동생들은 먼 길을 떠났다. 이제 혼자. 이게 아기 새를 독립시킨 어미 새의 마음인 걸까.
어이없는 생각에 헛웃음을 짓고 있었더니 전화벨이 울린다. 어느새 쥬시마츠가 나간지 두 시간이 지났다. 쥬시마츠가 잠시 여유를 내서 전화를 건 걸까. 나는 몸을 일으켜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쥬시마츠?"

[마츠노씨 댁 맞습니까?]

아.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쵸로마츠 때와 같은 상황. 건너편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마츠노씨, 마츠노씨. 나의 성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집에 마츠노씨는 나 혼자가 아님에도 그 목소리는 나만을 부르고있다.
사고. 또 사고. 쥬시마츠가 타고가던 차가 추돌 사고에 휘말렸다.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은 모두 사망했다. 당연히 쥬시마츠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실이었다.
쥬시마츠의 글러브가 내 손에 있다. 14라고 적혀있다. 나는 그 글러브를 상자에 담았다. 눈물이 날 것 같다. 하아, 길게 숨을 내쉬면서 눈을 감았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쥬시마츠."

상자의 뚜껑을 닫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보니 토도마츠가 서있었다. 토도마츠는 이미 한 번 운 직후인지 눈가가 발갛다. 나는 천천히 토도마츠에게 다가가 토도마츠를 끌어안았다. 토도마츠는 크게 소리내서 울기 시작했다.
쥬시마츠. 네가 떠나니까 토도마츠가 울잖아. 얼른 다시 와서 하나뿐인 동생을 달래줘야지. 네 하나뿐인 동생이잖아. 와서 웃도록 만들어줘야지. 쥬시마츠. 그래, 오지 않을 거면 오지마. 거기서 형들이랑 같이 재밌게 야구나 한 판 해. 이치마츠라도 네가 하자고 하면 해 줄 태니까. 토도마츠는 내가 잘 돌볼태니까.
나의 네번째 동생 쥬시마츠 21살, 그렇게 떠나갔다.


토도마츠는 학교를 그만뒀다. 더이상 정신적으로 버틸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나는 말리지 않았다. 강요 할 수 없는거니까. 토도마츠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조용히, 말없이 시간을 보냈다.
토도마츠가 조금씩 기운을 차리기 시작한 건, 같이 옷을 사러 간 이후였다. 더이상 똑같은 옷을 여섯 벌이나 살 이유가 없어진 지금,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대로 옷을 사 입을 수 있었다. 토도마츠는 옷가게에서 옷을 고르며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토도마츠는 자신을 꾸미는 걸 좋아했다. 시간이 날 때면 옷을 사러 나갔고, 돈이 있다면 옷을 사는데 모두 썼다. 그러다보니 저절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는데, 패셔니스타를 잡는 잡지 코너에 나오기도 했다. 당연히 인기도 많아졌다.
토도마츠는 여섯 쌍둥이 중에서 유난히 더 귀여운 편이었다. 같은 얼굴인 주제에 무슨 말이냐 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껴졌다. 거기다 토도마츠는 예의도 바르고, 말투도 부드럽다. 그야말로 착하고 귀여운 남자. 조금 샘나는 막내 동생이다.

"오소마츠 형, 이거 봐봐!"

오늘도 토도마츠는 새로 산 옷을 자랑한다. 분홍 페도라에 하얀 와이셔츠, 분홍 넥타이, 분홍 반바지, 하얀 니삭스. 하양과 분홍의 반복이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귀엽네 라고 성의없이 대답하곤 만화책에 집중했다. 토도마츠는 내 대답에 투덜거리며 나를 노려봤다.

"이 형아는 지금 바쁘니까 이따가 얘기해요, 귀여운 동생님."

예, 예. 토도마츠가 똑같이 성의없이 대답한다. 핸드폰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토도마츠는 요즘 핸드폰을 하는 일이 많아졌는데 라인인가 뭔가로 다른 사람이랑 메신저를 주고받는댔다. 그게 재밌나싶었지만 토도마츠가 즐거워하니까 별로 신경쓰진 않았다.
사실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부모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시고, 토도마츠도 대학을 관둬버렸다. 나는 아직도 용돈 받아쓰는 몹쓸놈. 이제 슬슬 무슨 일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겠지만 어째 의욕이 나지 않는다. 이러다 큰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그런 내 고민을 모르는 게 분명한 토도마츠는 내 얼굴에 자신의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나는 그걸 가만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 토도마츠를 바라봤다. 토도마츠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내일 데이트 할 거야."

데이트? 그래. 성의없이 대답하고 만화책을 보려다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데이트? 데이트라고? 나는 두 손을 뻗어 토도마츠의 팔을 잡았다. 토도마츠가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이 형아보다 먼저 데이트라니!"

나는 허락 못해! 아니, 안 해! 토도마츠를 놓고 생떼아닌 생떼를 쓴다. 토도마츠는 그런 날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끄럽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기분이 좋진 않았다.
우리 형, 얼른 어른이 되어야 할탠데. 토도마츠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곤 방밖으로 나갔다. 나는 누워서 그 말을 곱씹다가 벌떡 일어나 토도마츠를 따라 나갔다.

"토도마츠! 형아에게 그게 무슨 말이야!"

남은 건 둘 뿐이어도 오늘도 집은 시끄럽다.
토도마츠가 데이트하러 나간다. 불평불만 가득한 얼굴로 대충대충 배웅해주니, 먹고싶은 걸 말해달란다. 뭐가 좋을까 생각하다 배 라고 대답해줬더니 올 때 사오겠단다. 먹을 거로 나를 매수하겠다 이거지. 그렇다면 나는.

"꼭 사와! 데이트 잘 하고와!"

넘어가줘야지. 토도마츠를 배웅하고 기분이 좋아진 나는 거실에 몸을 눕혔다. 저녁때 쯤에 들어온다고 했으니까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어째 졸리다. 나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몽롱하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꿈이지 않으려나. 이렇게 몸이 뜨는 느낌이 되려면 물속이 아니고서야 꿈이겠지. 천천히 눈을 떴다. 물결이 보인다. 꿈이구나. 다시 자자. 나는 눈을 감았다.
따르르릉. 벨소리가 울린다. 나는 번쩍 눈을 떴다. 어느새 네 시가 넘어있다. 얼마나 잔거람. 후우, 길게 숨을 내쉬곤 몸을 일으켜 전화로 향했다. 엄청 급한 일이라고 소리치듯 전화벨이 울린다.

"네에, 마츠노 씨 댁입니다."

[마츠노 토도마츠씨의 보호자이십니끼?]

아. 이 전화는 어째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이 한 번도 없어. 나는 소식을 전해듣고 바로 집밖에 뛰쳐나갔다. 문을 잠글 생각도, 수화기를 다시 올려놓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일단 달렸다. 전화기 너머 누군가가 말한 곳으로 달렸다.
병원. 또 이 병원. 목에서 쇠냄새가 나는 걸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응급실 한쪽에 여러 의사와 간호사가 붙어있는 환자가 있다. 간호사 하나가 다가와 토도마츠의 보호자냐고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또 사고. 또, 또 사고. 과속하던 트럭에 토도마츠가 치였다. 다행히 바로 병원으로 옮겨져서 살 희망이 조금은 있다고 했다. 상태가 그리 좋진 않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카라마츠도 살아있었다. 바로 병원으로 옮겼으면 살았을 거다. 하지만 금방 다시 조명이 무너져내려서 카라마츠를 죽였다. 쵸로마츠도 사실 살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밀치는 바람에 넘어져 사람들에게 밟히고, 그대로 건물에 깔렸다. 이치마츠도 살 수 있었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병원에 왔더라면, 아니 지혈이라도 제대로 했더라면 살 수 있었다. 쥬시마츠도 살 수 있었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았더라면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을 거다. 하지만 모두 죽었다.

"죄송합니다."

토도마츠 또한. 이제 더이상 버틸 수 없다. 나는 그 자리에 무너져내렸다. 아아, 이 무슨 거지같은.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럴 순 없는 거야. 주변이 시끄러웠지만 내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혼자 남았다.
토도마츠는 귀여운 동생이었다. 쌍둥이라지만 막내인 탓에 응석쟁이였다. 자기가 애교를 부리면 모든 형들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는 걸 알고있었다. 그래서 자주 애교를 부리곤 했지.
토도마츠. 옷 잘 입고서 쥬시마츠 만나러갔냐. 쥬시마츠랑 다시 만나서 좋겠다. 너, 모든 형들 중에서 쥬시마츠를 가장 좋아했잖아. 쥬시마츠도 너 좋아하니까. 재밌게 놀아라.
나의 다섯 번째 동생 토도마츠 22살, 그렇게 떠나갔다.


나에게는 다섯 명의 동생들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 떠나갔다. 이제 나 혼자 남았다. 여섯이서 하나, 하나가 여섯이었던 시절은 이제 없다. 하나는 하나, 나는 나. 여태까지 참아왔던 모든 슬픔들이 한꺼번에 차올랐다.
나는 무작정 기차표를 끊었다. 가지고 있는 돈을 탈탈 털어 가장 멀리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그리고 기차에 올라탔다. 창밖에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낯선 풍경이 나쁘지 않다고 느껴진다.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려 바다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린 나는 무작정 높은 절벽으로 올라갔다. 주변에서 뭐라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알게뭐야. 내가 올라가겠다는데. 나는 가장 높은 절벽 위에 섰다.
저 멀리 수평선이 보인다. 노을이 지고있다. 멍하니 그 노을을 바라보다 절벽 아래를 바라봤다. 짙은 남색의 바다다. 고개를 들어 다시 노을을 바라봤다. 아름답다.
나는 한 발짝 발을 내딛었다. 바람 소리가 들려. 몸이 차가워져. 무겁게 가라앉아. 숨이 차올라. 언젠가 꿈속에서 보았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카라마츠는 허세가 좀 많았지. 무시당해도 허세를 버리지 않았어. 그래도 착해서 언제나 동생들을 챙겼지. 누가 상처를 주면 동생먼저 약을 발라주고 말이야. 이치마츠에게 믿는다고 해주고. 바보지.

쵸로마츠는 잔소리가 장난 아니야. 언제나 자기가 정상인인 것처럼 행동한다니까. 자기도 결국 마츠노가 여섯 쌍둥이중 하나인 주제에. 너도 비정상이야, 쵸로마츠. 멍청이.

이치마츠는 언제나 몸을 웅크리고있어. 마음을 숨기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 그런데 이치마츠 살짝 마조히스트 같단 말이지. 뜬금없이 욕해달라더니 웃고 말이야. 그래도 나름 다른 형제들을 챙긴다니까. 카라마츠랑 매일 싸우지만.

쥬시마츠는 착해. 언제나 야구를 외치는 바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형제들을 위한 거지. 그 누구보다 형제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큰 아이. 그게 쥬시마츠야. 쥬시마츠를 바라보고 있으면 웃음이나.

토도마츠는 건방져. 자기가 귀엽다는 걸 아주 잘 알아서 그걸 이용한다니까. 나도 무시 할 때가 많고 말이야. 나 장남인데. 그렇지만 막내니까 받아줘야겠지. 귀엽잖아. 그렇지?

파도 소리가 들린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파란 하늘이 보인다. 하아, 길게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죽지 않은 건가. 목숨 한 번 참 질기다. 멍하니 내 두 손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켰다.

"형님!"

익숙한 목소리. 몸을 돌려 뒤를 바라봤다. 아.

"오소마츠 형!"

모두가 나를 부르며 뛰어와 나를 끌어안는다. 나는 웃으며 모두를 끌어안았다. 아아. 여기있다. 나의 동생들이 여기에 있다. 이곳에 있다. 나는 이곳으로 왔다.

"보고싶었어."

모두 보고싶었어. 이제 떠나지 않을 거야. 여기서 같이 살자. 이곳에서. 여기 있자. 다 함께.

나는 땅끝에 있다.




-땅끝 이라는 이름의 역
-자결이라 적혀있는 절벽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는 표지판

PV에 나온 표지판 얘기에 최근 9화에 나온 것들을 대입해서 적어본 날조글입니다. (코쓱)

여섯 쌍둥이는 모두 죽었고, 20살이 넘은 그들이 있는 곳은 저승과 이승 사이의 어딘가 라는 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