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상/절연

[이치카라] 절연-1

누군가라네 2015. 11. 10. 20:02
※개인적 캐해석
※과거 날조 주의


"이치마츠, 절연이다."

오소마츠의 입에서 나와선 안 될 말이 나왔다. 하지만 그걸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장 상식적이라는 쵸로마츠도, 모두를 위하는 쥬시마츠도, 그래도 형들을 아끼는 토도마츠도. 아무도 오소마츠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세상이 무너지는 감각을 느꼈다.


짐을 챙겼다. 옷 몇 벌이랑 고양이 먹이, 장난감, 그 외 필요한 것 몇 가지. 오소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돈 봉투 하나를 건넸다. 꽤 두툼한 그 봉투 안에는 당장 지낼 방을 구할 만큼의 돈이 들어있었다. 나름의 배려. 차갑게 절연이라는 말을 내뱉은 것 치고는 제법 좋은 대우다. 이치마츠는 속에서 올라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집을 나왔다. 절연이라는 말이 그저 말뿐인 건 아니었다. 이치마츠는 자신이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것인가 생각했다. 잘못이 크긴 했지만 절연까지 갈 정돈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치마츠는 길을 걷다 멈춰섰다. 아니, 절연에서 끝난 게 다행일지도.

"후우."

다시 길을 걷는다. 절연이라 말을 할 때 보았던 오소마츠의 주먹은 금방이라도 자신에게 날아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병원이라서, 환자와 동생들의 앞이니까 꾹 눌러 참았다. 그 때 한 대 쳤다면 아마 이빨이 나갔거나 입술이 터졌을 거다. 심하면 쓰러졌겠지. 이치마츠는 머리를 긁적였다.
오소마츠가 그렇게 반응하는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인정하면, 인정 해 버리면 다섯 명과 다시는 어울릴 수 없을 거 같아서. 정말 영영 떠나버려야 할 거 같아서. 그래서 인정하지 않으려했다. 인정했다면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까?
모르겠다. 지금 해답을 찾는 건 무리다. 일단 오늘 밤 지낼 곳을 찾아야만 했다. 모텔이든 호텔이든 들어가야한다. 그 뒤에 일을 구하고, 방을 찾아보자.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 이치마츠는 속에서 올라오는 느낌에 입을 막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니트가 되었다. 여섯명 모두 일을 하거나 대학을 진학 할 생각도 의지도 없었다. 언제까지나 어린 아이처럼 부모님께 의지해 살고자 했다. 그나마 쵸로마츠만 이래선 안된다며 일을 구하자고 성화였다. 물론 모두 관심 한 톨도 주지 않았지만.
이치마츠 또한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그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 자체를 포기했기 때문에 취업 알선 면접도 가지 않으려 했다가 끌려갔었다. 그때 뭐라고 했더라? 타지 않는 쓰레기라고 했었던 거 같다.
어쨌거나 이치마츠는 모든 기력을 잃어버린 채,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그에게 손을 뻗어온 건 고양이와 카라마츠였다. 고양이는 어쩌면 자신이 먼저 손을 뻗었을지도 모르지만 카라마츠는 전혀 아니었다. 자신이 카라마츠에게 뻗은 거라곤 멱살을 잡기 위한 팔 뿐이었다. 그런데도 바보같은 카라마츠는 언제나 이치마츠를 챙겼다. 이치마츠가 혹여나 떨어질까 언제나 뒤를 돌아보았고, 넘어지기라도 할까 넘어질 만한 것들을 길에서 모두 치웠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인지 매일매일 이치마츠의 관심사를 체크했고, 고양이 먹이가 떨어졌다싶으면 이치마츠를 대신해 자신이 사오곤 했다. 항상 너를 믿는다고 말 해 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은 어떻게 했더라? 카라마츠를 실망시킬까 두려워 그가 자신의 깊숙한 곳에 자리잡는 게 무서워 항상 쳐냈다. 멱살을 잡고, 뺨을 때렸다. 욕설도 잔뜩 퍼부어줬다. 그렇게 하면 떨어질 거라 생각해서, 포기 할 거라 생각해서. 질려서, 지쳐서 그만 둘 거라 생각해서. 하지만 카라마츠는 언제까지고 자신을 받아주었다. 그런 투정을 한 번도 피하지 않고 끌어안았다.
그래서 어떻게 했지? 더 괴롭혔다. 더 때리고, 더 욕하고. 해서는 안 될 짓도 서슴치 않고 했다. 카라마츠는 그것들 마저 모두 받아들였다. 그 때 자신이 그만두었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까? 아니, 그만두었다 하더라도 이렇게 되었을 거다. 그렇담 이렇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뭐지?


"후우."

담배 연기를 내뱉는다. 뿌옇게 올라가 흩어지는 모습이 꼭 저같아 괜히 울컥한다. 이치마츠는 담배 연기를 폐 깊숙히 빨아들였다가 안이 쪼그라들 정도로 길게 내뱉었다. 아까보다 더 짙은 연기가 올라가다 흩어진다.

'무슨 생각을 하던 중이었더라?'

이치마츠는 방금 전까지 하고있던 생각을 떠올렸다. 썩 좋은 생각은 아니었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생각을 통해 절연을 취소하고, 다시 가족들 품으로 돌아 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 작은 희망이, 이치마츠를 다시 생각의 길로 이끌었다.


아마 그 날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지 않았나싶다. 모두들 외식을 하러 나가고, 따로 약속이 있어 나갔다 들어온 카라마츠와 시끄러운 게 싫어 집에 남은 자신, 둘만 집에 있을 때. 카라마츠는 거울을 바라보며 보는 사람이라곤 없는 머리를 정돈했고, 이치마츠는 고양이 장난감을 흔들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날은 좀 우울했다. 항상 돌봐주던 고양이가 차에 치여 죽은 날이었다. 자신이 들고있던 장난감은 그 고양이를 위해 샀던 장난감이었다. 이제 쓸모가 없었다. 이치마츠는 길게 숨을 내쉬며 장난감을 떨어트렸다.

"이치마츠, 떨어트렸다."

자. 언제 다가온 건지 카라마츠가 쓸데없이 장난감을 주워주었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다보다가 그의 손을 쳐냈다. 장난감이 다시 떨어졌다. 카라마츠는 그걸 다시 주워주었고, 이치마츠는 또 쳐냈다. 몇 번 그렇게 반복하다가 이치마츠가 일어났다.

"필요 없다고."

이치마츠가 으르렁 거리며 말했다. 카라마츠는 흠칫 어깨를 움츠렸지만 다시 장난감을 주워 이치마츠에게 건넸다. 이미 한계까지 참은 이치마츠는 두 손으로 카라마츠의 멱살을 잡아 당겼다.

"필요 없다고 했잖아."

금방 울먹이는 표정이 되는 주제에. 이치마츠는 눈물을 글썽이는 카라마츠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멱살을 놓아주었다. 카라마츠는 몇 번 기침을 하다가 내 손에 장난감을 쥐어주었다. 이 얼마나 바보같은가.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라. 들어줄태니. 가능하다면 도와주기도 하고."

심지어 장난감을 쥐어주며 한다는 말이 저딴 말이었다. 이치마츠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카라마츠를 넘어뜨렸다. 그리고 그 위에 앉아 카라마츠의 목을 한 손으로 쥐었다.

"그렇게 원한다면야 좋아. 지금 내가 엄청 우울하거든. 위로 좀 해줘, 카라마츠 형."



"후우."

그 때 그러는 게 아니었는데. 이치마츠는 담배꽁초를 근처 벽에 비벼끄고 쓰레기통에 넣었다. 슬슬 잘만한 곳을 찾으러 가야한다. 어디든 눈에 띄는 곳으로 들어가자. 이치마츠는 그렇게 생각하며 걷다가 가장 먼저 눈에 띈 모텔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