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상
[카라이치] 늑대와 춤을 -2
누군가라네
2015. 12. 20. 19:27
※개인적 캐해석
※늑대AU
이치마츠는 죽고싶었다. 쫓길 땐 그렇게나 살고싶었는데 지금은 어디 바위에 머리라도 박고 죽고싶었다. 그런 이치마츠의 상태를 눈치챈 건지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이치마츠는 후우 길게 숨을 내쉬고,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머쓱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늑대가 셋, 미안하다 사과 해 오는 늑대가 하나. 이치마츠는 화끈거리는 얼굴에 손부채질을 했다.
[미안하다, 오랜만에 듣는 인사라.]
카라마츠가 거듭 사과해온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젓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카라마츠는 어색하게 웃으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늑대들은 흘끔 카라마츠를 보다가 이치마츠를 보더니 한 걸음씩 다가온다. 말이 한 걸음이지 이치마츠의 걸음으로 치자면 세 걸음이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들어 세 늑대를 바라보았다.
[나는 마츠노 늑대 무리의 1인자, 오소마츠. 마츠노 오소마츠.]
붉은 눈의 늑대가 말한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붉은 눈의 늑대를 바라봤다. 오소마츠의 털은 카라마츠와 다르게 조금 거칠어보였다. 눈동자의 깊이도 달랐다. 불타오르는 느낌. 눈빛에서 뜨거움이 느껴졌다. 잔잔함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난 쵸로마츠. 마츠노 늑대 무리를 이끌고 있어. 대장은 오소마츠 형이지만 제대로 일 안 하니까. 카라마츠는 바보고.]
쵸로마츠!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동시에 소리친다. 이치마츠는 둘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쵸로마츠를 바라봤다. 초록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는 언젠가 보았던 한 여름날의 나뭇잎 같았다. 어두운듯 밝은듯 그 경계에 놓여있던 나뭇잎은 얇지만 깊었다.
[나! 나! 마츠노 늑대 무리의 네 번째! 쥬시마츠! 힘쓰는 일 담당입니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쥬시마츠를 바라봤다. 다른 늑대들보다 상당히 밝다. 늑대보단 개에 가깝다 느껴질 정도. 쳐져있던 꼬리도 강아지처럼 이리저리 흔들린다. 노란 눈은 예전에 딱 한 번 본적있는 황금같이 빛나고 있었다. 눈이 부시다.
[나는 마츠노 늑대 무리의 다섯 번째, 토도마츠. 하는 일은 딱히 없어.]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토도마츠와 눈을 맞췄다. 다른 늑대들보다 눈매가 부드럽다고 느껴졌다. 어린 늑대같다고 해야할까. 그 크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눈이었다. 더군다나 분홍색 눈동자는 진회색 털 사이에서 진달래와 같은 색으로 빛나 더 화려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 형제다. 같은 배에서, 비슷한 시간에 태어났지. 이곳은 우리의 고향이고,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터전이다. 바로 밑엔 인간들이 살고있지만 이 안은 우리의 땅이야. 너는 우리 마츠노에 대해 알고있는 거 같은데, 혹시 물어볼 게 있나? 작은 아이 이치마츠야.]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고개를 숙인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에게 코를 가까이했다. 이치마츠는 멍하니 제 앞에 들이밀어진 코를 바라보다 카라마츠의 눈을 바라봤다. 질문, 질문이라. 이치마츠는 고개를 저었다. 마츠노라 불리는 늑대들에 대해선 어렸을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자신의 할머니로부터, 마을 할아버지로부터, 마을의 전설을 담은 책으로부터. 많은 것들이 마츠노 늑대들에 대해 얘기했다.
카라마츠는 예상했다는 듯 웃으며 코를 이치마츠의 배에 댔다. 잡아먹힌다, 덜컥 겁이난 이치마츠는 몸을 굳혔다. 카라마츠는 별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저 깊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뱉을 뿐이다. 뭘 하는 걸까. 고개를 돌려 다른 늑대들을 바라보았다. 오소마츠와 쵸로마츠는 한숨을 내쉬었고,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는 이쪽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다시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너의 향기를 기억했다.]
코가 떨어졌다. 이치마츠는 멍하니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와 눈을 맞추고 웃었다. 저 웃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카라마츠가 한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내일부터 다른 마을로 가기 위해 길을 떠날 거다. 너와 나, 단 둘만.]
아. 이치마츠는 정신을 차렸다. 다른 마을로? 카라마츠는 고개를 돌려 쵸로마츠를 바라봤다. 이치마츠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쵸로마츠는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숙여 이치마츠와 눈을 맞췄다. 그 눈엔 여러 감정이 담겨있는 것 같았지만 정확하게 무엇인진 알 수 없었다.
[인간은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야지.]
우리가 너를 거둬줄 순 없어. 카라마츠가 널 믿는다 했으니까 살려두는 것 뿐이야. 넌 인간 마을로 가야해. 보아하니 이 아랫마을에 살던 인간 같은데 거긴 이제 돌아갈 수 없지? 다른 마을의 인간 놈들이 차지해버렸으니까. 그러니 카라마츠는 그 반대편에 있는 마을로 널 데려다 줄 거야. 그곳 사람들은 친절하고, 너와 비슷한 사정을 가지고 있으니 잘 대해 줄 거야. 이 산은 생각보다 험하고, 넓어. 아마 삼 일은 걸어가야 할 거야.
[너는 네 혼자 힘으로 걸어야해. 카라마츠가 해주는 건 널 보호하고, 먹을 걸 제공하는 일 뿐이다. 네가 살아도 괜찮은 인간이란 걸 보여라. 살 의지가 있음을 보여라. 이것은 이 산의 주인 마츠노가 너에게 주는 시련이다.]
긴 말을 마친 쵸로마츠는 뒤로 물러났다. 오소마츠는 앞발로 쵸로마츠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웃었다. 그 행동에 쵸로마츠는 짜증을 내며 앞발로 오소마츠의 뺨을 쳤다. 오소마츠는 과장된 몸짓으로 넘어지며 아프다 앓는 소리를 냈다. 쵸로마츠는 쓰레기를 보는 눈빛으로 오소마츠를 내려다보다 휙 고개를 돌렸다. 뻘쭘해진 오소마츠는 느껴지는 시선에 몸을 일으켰다.
[방금 쵸로마츠 형이 한 말에 대해 질문 있어?]
토도마츠가 묻는다. 한 번에 많은 정보가 머릿속에 들어와 혼란스럽다. 이치마츠는 눈살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질문? 질문이야 많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의문 한 가지. 이치마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갑자기 웬 시련입니까?"
늑대들이 서로를 바라본다. 오소마츠가 웃는 얼굴로 앞으로 나와 이치마츠를 내려다본다. 다른 늑대들 처럼 고개를 숙여주지 않는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오소마츠는 붉은 눈을 빛내며 앞발로 이치마츠의 바로 앞을 내려찍었다. 이치마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온 몸이 떨린다.
[우리는 이 산의 주인. 산을 지나가려면 산의 주인에게 허락을 맡아야 하는 게 당연한 법이지. 하지만 항상 허락을 받을 순 없잖아? 귀찮기도 하고. 그래서 보통은 지나가는 것 정도로 뭐라 하지 않아.]
그렇지만 우리와 마주쳤거나 도움을 받았을 경우, 우리는 시련을 준다. 그 시련은 꽃을 따오는 일부터 곰을 사냥하는 힘든 일 까지 다양하지. 너는 우리에게 도움을 받았고, 그렇기에 우리는 너에게 시련을 준다. 너는 거부권이 없어. 거부 할 경우 죽는다. 이것은 산의 주인이 내리는 명령이니까.
오소마츠는 발을 거두고 저를 노려보는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속으로 웃은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에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카라마츠는 내키지 않는단 표정으로 오소마츠의 입을 핥았다. 오소마츠는 만족한 듯 뒤돌아 제 자리로 돌아갔다. 이치마츠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 꿀꺽 침을 삼켰다.
[그럼 공식 절차를 밟아야지.]
토도마츠가 말한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이곤 이치마츠의 배에 코를 문질렀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옆에 앉았다. 오소마츠는 자리에서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솔직히 유치하지. 시련이니 뭐니. 그렇지만 그것이 조건인걸. 오소마츠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산의 주인 마츠노, 인간 이치마츠에게 시련을 내린다. 그 내용은 스스로의 발로 이 산을 지나 마을에 도달 할 것. 동행 및 보호, 보고는 마츠노 카라마츠가 맡는다.]
오소마츠가 앞발로 바닥을 내리찍는다. 연달아 쵸로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도 바닥을 찍는다. 마지막으로 카라마츠가 앞발 하나를 내밀며 바닥을 찍었다.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이자 무겁게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단번에 풀린다. 쥬시마츠는 근처에 날아다니는 나방을 쫓아가기 시작했고, 토도마츠는 그 뒤를 따라갔다. 쵸로마츠는 한숨을 내쉬며 제 자리에 누웠다. 오소마츠는 바닥에 늘어졌다.
[출발은 내일이란다.]
카라마츠가 말한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코를 이치마츠의 배에 문질렀다. 이치마츠는 조심히 손을 들어 카라마츠의 콧등을 쓰다듬었다. 카라마츠는 작게 소리내서 웃곤 고개를 들었다.
[며칠동안 많이 힘들 거다. 그러니 오늘은 푹 자두거라. 품을 빌려줄태니.]
카라마츠는 그 자리에 엎드렸다. 이치마츠는 가만 그 모습을 바라보다 카라마츠의 몸에 몸을 기댔다. 포근하고, 부드러우며 따듯하다. 복잡한 머릿속이 정리되어가는 게 느껴졌다. 어쨌거나 스스로 걸어서 산을 나가라는 거니까. 그 정도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혼자 가는 것도 아니잖아. 괜찮아. 괜찮을 거야. 이치마츠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카라마츠 형!]
[왜그래, 쥬시마츠?]
어느새 저 멀리 나갔던 쥬시마츠와 토도마츠가 돌아왔다. 카라마츠는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쥬시마츠를 바라봤다. 쥬시마츠는 카라마츠와 이치마츠의 주위를 몇 바퀴 돌더니 카라마츠에게 얼굴을 들이밀어 입을 핥았다. 카라마츠는 얌전히 받아들였다.
[조심히 다녀와!]
그래. 쥬시마츠의 인사에 카라마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늑대AU
이치마츠는 죽고싶었다. 쫓길 땐 그렇게나 살고싶었는데 지금은 어디 바위에 머리라도 박고 죽고싶었다. 그런 이치마츠의 상태를 눈치챈 건지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이치마츠는 후우 길게 숨을 내쉬고,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머쓱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늑대가 셋, 미안하다 사과 해 오는 늑대가 하나. 이치마츠는 화끈거리는 얼굴에 손부채질을 했다.
[미안하다, 오랜만에 듣는 인사라.]
카라마츠가 거듭 사과해온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젓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카라마츠는 어색하게 웃으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늑대들은 흘끔 카라마츠를 보다가 이치마츠를 보더니 한 걸음씩 다가온다. 말이 한 걸음이지 이치마츠의 걸음으로 치자면 세 걸음이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들어 세 늑대를 바라보았다.
[나는 마츠노 늑대 무리의 1인자, 오소마츠. 마츠노 오소마츠.]
붉은 눈의 늑대가 말한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붉은 눈의 늑대를 바라봤다. 오소마츠의 털은 카라마츠와 다르게 조금 거칠어보였다. 눈동자의 깊이도 달랐다. 불타오르는 느낌. 눈빛에서 뜨거움이 느껴졌다. 잔잔함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난 쵸로마츠. 마츠노 늑대 무리를 이끌고 있어. 대장은 오소마츠 형이지만 제대로 일 안 하니까. 카라마츠는 바보고.]
쵸로마츠!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동시에 소리친다. 이치마츠는 둘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쵸로마츠를 바라봤다. 초록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는 언젠가 보았던 한 여름날의 나뭇잎 같았다. 어두운듯 밝은듯 그 경계에 놓여있던 나뭇잎은 얇지만 깊었다.
[나! 나! 마츠노 늑대 무리의 네 번째! 쥬시마츠! 힘쓰는 일 담당입니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쥬시마츠를 바라봤다. 다른 늑대들보다 상당히 밝다. 늑대보단 개에 가깝다 느껴질 정도. 쳐져있던 꼬리도 강아지처럼 이리저리 흔들린다. 노란 눈은 예전에 딱 한 번 본적있는 황금같이 빛나고 있었다. 눈이 부시다.
[나는 마츠노 늑대 무리의 다섯 번째, 토도마츠. 하는 일은 딱히 없어.]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토도마츠와 눈을 맞췄다. 다른 늑대들보다 눈매가 부드럽다고 느껴졌다. 어린 늑대같다고 해야할까. 그 크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눈이었다. 더군다나 분홍색 눈동자는 진회색 털 사이에서 진달래와 같은 색으로 빛나 더 화려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 형제다. 같은 배에서, 비슷한 시간에 태어났지. 이곳은 우리의 고향이고,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터전이다. 바로 밑엔 인간들이 살고있지만 이 안은 우리의 땅이야. 너는 우리 마츠노에 대해 알고있는 거 같은데, 혹시 물어볼 게 있나? 작은 아이 이치마츠야.]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고개를 숙인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에게 코를 가까이했다. 이치마츠는 멍하니 제 앞에 들이밀어진 코를 바라보다 카라마츠의 눈을 바라봤다. 질문, 질문이라. 이치마츠는 고개를 저었다. 마츠노라 불리는 늑대들에 대해선 어렸을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자신의 할머니로부터, 마을 할아버지로부터, 마을의 전설을 담은 책으로부터. 많은 것들이 마츠노 늑대들에 대해 얘기했다.
카라마츠는 예상했다는 듯 웃으며 코를 이치마츠의 배에 댔다. 잡아먹힌다, 덜컥 겁이난 이치마츠는 몸을 굳혔다. 카라마츠는 별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저 깊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뱉을 뿐이다. 뭘 하는 걸까. 고개를 돌려 다른 늑대들을 바라보았다. 오소마츠와 쵸로마츠는 한숨을 내쉬었고,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는 이쪽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다시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너의 향기를 기억했다.]
코가 떨어졌다. 이치마츠는 멍하니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와 눈을 맞추고 웃었다. 저 웃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카라마츠가 한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내일부터 다른 마을로 가기 위해 길을 떠날 거다. 너와 나, 단 둘만.]
아. 이치마츠는 정신을 차렸다. 다른 마을로? 카라마츠는 고개를 돌려 쵸로마츠를 바라봤다. 이치마츠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쵸로마츠는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숙여 이치마츠와 눈을 맞췄다. 그 눈엔 여러 감정이 담겨있는 것 같았지만 정확하게 무엇인진 알 수 없었다.
[인간은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야지.]
우리가 너를 거둬줄 순 없어. 카라마츠가 널 믿는다 했으니까 살려두는 것 뿐이야. 넌 인간 마을로 가야해. 보아하니 이 아랫마을에 살던 인간 같은데 거긴 이제 돌아갈 수 없지? 다른 마을의 인간 놈들이 차지해버렸으니까. 그러니 카라마츠는 그 반대편에 있는 마을로 널 데려다 줄 거야. 그곳 사람들은 친절하고, 너와 비슷한 사정을 가지고 있으니 잘 대해 줄 거야. 이 산은 생각보다 험하고, 넓어. 아마 삼 일은 걸어가야 할 거야.
[너는 네 혼자 힘으로 걸어야해. 카라마츠가 해주는 건 널 보호하고, 먹을 걸 제공하는 일 뿐이다. 네가 살아도 괜찮은 인간이란 걸 보여라. 살 의지가 있음을 보여라. 이것은 이 산의 주인 마츠노가 너에게 주는 시련이다.]
긴 말을 마친 쵸로마츠는 뒤로 물러났다. 오소마츠는 앞발로 쵸로마츠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웃었다. 그 행동에 쵸로마츠는 짜증을 내며 앞발로 오소마츠의 뺨을 쳤다. 오소마츠는 과장된 몸짓으로 넘어지며 아프다 앓는 소리를 냈다. 쵸로마츠는 쓰레기를 보는 눈빛으로 오소마츠를 내려다보다 휙 고개를 돌렸다. 뻘쭘해진 오소마츠는 느껴지는 시선에 몸을 일으켰다.
[방금 쵸로마츠 형이 한 말에 대해 질문 있어?]
토도마츠가 묻는다. 한 번에 많은 정보가 머릿속에 들어와 혼란스럽다. 이치마츠는 눈살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질문? 질문이야 많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의문 한 가지. 이치마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갑자기 웬 시련입니까?"
늑대들이 서로를 바라본다. 오소마츠가 웃는 얼굴로 앞으로 나와 이치마츠를 내려다본다. 다른 늑대들 처럼 고개를 숙여주지 않는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오소마츠는 붉은 눈을 빛내며 앞발로 이치마츠의 바로 앞을 내려찍었다. 이치마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온 몸이 떨린다.
[우리는 이 산의 주인. 산을 지나가려면 산의 주인에게 허락을 맡아야 하는 게 당연한 법이지. 하지만 항상 허락을 받을 순 없잖아? 귀찮기도 하고. 그래서 보통은 지나가는 것 정도로 뭐라 하지 않아.]
그렇지만 우리와 마주쳤거나 도움을 받았을 경우, 우리는 시련을 준다. 그 시련은 꽃을 따오는 일부터 곰을 사냥하는 힘든 일 까지 다양하지. 너는 우리에게 도움을 받았고, 그렇기에 우리는 너에게 시련을 준다. 너는 거부권이 없어. 거부 할 경우 죽는다. 이것은 산의 주인이 내리는 명령이니까.
오소마츠는 발을 거두고 저를 노려보는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속으로 웃은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에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카라마츠는 내키지 않는단 표정으로 오소마츠의 입을 핥았다. 오소마츠는 만족한 듯 뒤돌아 제 자리로 돌아갔다. 이치마츠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 꿀꺽 침을 삼켰다.
[그럼 공식 절차를 밟아야지.]
토도마츠가 말한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이곤 이치마츠의 배에 코를 문질렀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옆에 앉았다. 오소마츠는 자리에서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솔직히 유치하지. 시련이니 뭐니. 그렇지만 그것이 조건인걸. 오소마츠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산의 주인 마츠노, 인간 이치마츠에게 시련을 내린다. 그 내용은 스스로의 발로 이 산을 지나 마을에 도달 할 것. 동행 및 보호, 보고는 마츠노 카라마츠가 맡는다.]
오소마츠가 앞발로 바닥을 내리찍는다. 연달아 쵸로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도 바닥을 찍는다. 마지막으로 카라마츠가 앞발 하나를 내밀며 바닥을 찍었다.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이자 무겁게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단번에 풀린다. 쥬시마츠는 근처에 날아다니는 나방을 쫓아가기 시작했고, 토도마츠는 그 뒤를 따라갔다. 쵸로마츠는 한숨을 내쉬며 제 자리에 누웠다. 오소마츠는 바닥에 늘어졌다.
[출발은 내일이란다.]
카라마츠가 말한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코를 이치마츠의 배에 문질렀다. 이치마츠는 조심히 손을 들어 카라마츠의 콧등을 쓰다듬었다. 카라마츠는 작게 소리내서 웃곤 고개를 들었다.
[며칠동안 많이 힘들 거다. 그러니 오늘은 푹 자두거라. 품을 빌려줄태니.]
카라마츠는 그 자리에 엎드렸다. 이치마츠는 가만 그 모습을 바라보다 카라마츠의 몸에 몸을 기댔다. 포근하고, 부드러우며 따듯하다. 복잡한 머릿속이 정리되어가는 게 느껴졌다. 어쨌거나 스스로 걸어서 산을 나가라는 거니까. 그 정도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혼자 가는 것도 아니잖아. 괜찮아. 괜찮을 거야. 이치마츠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카라마츠 형!]
[왜그래, 쥬시마츠?]
어느새 저 멀리 나갔던 쥬시마츠와 토도마츠가 돌아왔다. 카라마츠는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쥬시마츠를 바라봤다. 쥬시마츠는 카라마츠와 이치마츠의 주위를 몇 바퀴 돌더니 카라마츠에게 얼굴을 들이밀어 입을 핥았다. 카라마츠는 얌전히 받아들였다.
[조심히 다녀와!]
그래. 쥬시마츠의 인사에 카라마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