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상

[카라이치] 늑대와 춤을 -1

누군가라네 2015. 12. 19. 21:33
※개인적 캐해석
※늑대AU


저 산에는 마츠노라 불리는 늑대들이 살고있단다. 그 늑대들은 보통의 늑대보다 수명이 길어 나이가 많고, 그만큼 덩치도 더 크단다. 사람을 해치는 일은 잘 없지만 그래도 위험하기때문에 저 산에는 잘 들어가지 않지. 마츠노들을 잡으려다 죽은 사람도 꽤 있단다. 그들은 산의 신이고, 산의 주인이야. 그들을 잡으려해선 안돼. 어쩌다 그들을 마주쳤다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려 보내달라고 부탁해야 한단다. 그러면 그들은 너를 살려보내 줄 거야. 그들은 불필요한 살생을 선호하지 않으니 말이야. 사랑하는 나의 손주, 이치마츠. 산의 신과 내가 너를 지켜줄 거란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다리가 뻐근해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들다. 팔은 이미 힘을 잃었다. 천으로 만들어진 신발은 찢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럼에도 달리는 걸 멈출 수가 없다. 멈추는 순간 죽고 말 것이다. 죽을 순 없다. 살아야만 한다. 이치마츠는 빠르게 앞으로 달려갔다.
뒤쪽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벌써 쫓아온 건가. 휏불이 밝다. 어두웠던 주변이 순식간에 밝아진다. 이치마츠는 더 빠르게 달렸다. 다리가 삐걱거린다. 이제 한계야. 눈앞이 흐릿해진다. 몸이 크게 비틀거린다. 다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이대로, 이대로 쓰러지면 죽을탠데. 이치마츠는 그대로 앞으로 쓰러져 비탈길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웅성이는 소리가 들린다. 이치마츠는 희미한 의식 속에서 좀 더 어두운 곳을 찾아 몸을 옮겼다. 무언가가 만져졌다. 감각이 엉망이라 무엇인진 알 수 없었다. 그저 무성 하다 생각 될 뿐이었다. 덤불인가. 이치마츠는 몸을 숨겨 다행이라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어이, 카라마츠.]

카라마츠는 고개를 돌렸다. 오소마츠가 턱짓으로 이치마츠를 가리킨다. 카라마츠는 가만 오소마츠를 바라보다 이치마츠의 옷을 물어 들어올렸다. 오소마츠는 흐응 하고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들어올린다. 흠흠, 몇 번 목을 가다듬던 오소마츠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가 내뱉었다.
아우우우우우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하울링. 곧이어 다른 곳에서도 하울링 소리가 들려온다. 한차례 산이 울리고, 오소마츠는 고개를 숙여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그런 오소마츠를 바라보다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오소마츠는 그 뒤를 따랐다.
산 깊은 곳에 있는 커다란 동굴은 마츠노들의 집이었다. 다른 짐승이 들어오기도 힘들고, 사람이 찾기는 무리인 이곳은 몸을 숨기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카라마츠는 동굴 안, 나뭇잎을 모아놓은 곳에 이치마츠를 내려놓았다.

[어쩔거야?]

오소마츠가 묻는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오소마츠를 바라봤다. 오소마츠는 천천히 걸어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내딛는 한 발 한 발에 무게가 느껴진다. 카라마츠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이치마츠의 옆에 엎드렸다.

[다른 마을로 데려다 줄 거야.]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오소마츠는 소리내서 웃었다. 카라마츠는 그런 오소마츠를 무시한 채 이치마츠의 뺨을 핥아주었다. 구르느라 얼굴이며 몸 여기저기에 생채기가 생겼다. 치료해줘야 하는데. 쵸로마츠는 언제 오는 거지. 카라마츠는 코를 이치마츠의 코에 가까이했다.
미약한 숨결이 느껴진다. 너무도 미약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다. 카라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치마츠의 아래로 파고들어 제 품에 눕혔다. 아까보다 따듯한지 이치마츠가 품안으로 파고든다. 카라마츠는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카라마츠.]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어 오소마츠를 바라봤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에게 다가가 코끝을 맞댔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바라보다 오소마츠의 입을 핥았다. 한참 뒤에서야 오소마츠는 만족한듯 동굴을 나갔다. 카라마츠는 한숨을 내쉬고 이치마츠를 바라봤다. 깨어나면 많이 놀라겠지. 어리고 불쌍한 인간.

"으응?"

이치마츠는 천천히 눈을 떴다. 주변이 어둡다. 이치마츠는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밖에서 들어온 빛이 주변을 희미하게 비춰준다. 이치마츠는 몇 번 눈을 깜빡이다가 손을 뻗었다. 뭔가 폭신하고 따듯한게 손에 닿았다. 방금 전까지 제가 기대고 있던 무언가다. 이치마츠는 다시 그것에 몸을 기댔다.
따듯해. 이치마츠는 다시 눈이 감기려는 걸 억지로 뜨고 이곳이 어디일까 생각했다. 기억나는 건 아래로 굴러떨어졌다는 것 뿐. 어쩌면 그때 잡혀서 끌려와 가둬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기엔 몸이 너무 편안했다. 구른 몸 치고는 상태가 상당히 좋았다. 거기다 지금 베고있는 이거, 상당한 품질의 모피가 분명했다. 그런 걸 자신같은 사람에게 줄리가 없다. 아, 어느 사람이 발견해서 구해준 걸까. 이치마츠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감사인사를 해야한다.

[좀 더 자거라, 작은 아이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방문을 찾던 이치마츠에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치마츠는 제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깜짝 놀라 몸을 굳혔다. 이제야 눈치챘다. 이곳은 집안이 아니었다. 산 속 어딘가에 존재 할 법한 동굴. 거기다 자신의 아래엔 나뭇잎들이 쌓여있었다. 이치마츠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어둠 속에서 파란 두 눈이 빛난다. 동굴 입구로 달빛이 들어와 눈의 주인을 비춘다. 보통 늑대라 할 수 없는 거대한 신체,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 풍성하고 윤기가 흐르는 짙은 회색 털. 이치마츠는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마츠노."

[훗,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군.]

이치마츠가 작게 웅얼거리자 카라마츠가 웃는다. 카라마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치마츠는 절로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그 크기는 보통의 늑대보다 훨씬 더 컸다. 옛날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태고적 신만 할 지도 모른다. 이치마츠는 꿀꺽 침을 삼켰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숙여 이치마츠와 눈을 맞췄다. 파랗고 커다란 눈이 빛을 내며 저를 바라보는 것에 이치마츠는 뒤로 물러났다. 경외. 아름답고, 강인하다 느껴짐과 동시에 두렵고, 무섭다. 카라마츠는 그걸 알고있는지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작은 아이야, 네 이름은 무엇인가?]

대신 말을 걸었다.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입은 필요한 만큼만 움직였다. 이빨이 보여 무서워하면 안 되니까. 이치마츠는 그 배려를 눈치채지 못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이치마츠는 꿀꺽 침을 한 번 삼키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치마츠라고 합니다."

이치마츠. 카라마츠는 소리내서 웃었다. 그 웃음에 이치마츠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저리 웃긴 걸까. 제 이름이 특이하단 소린 많이 들었지만 그게 저렇게 웃을만큼 특이한 건가. 아, 오래 산 늑대라고 하니 웃음의 요점이 다른 건가. 이치마츠는 복잡해지는 머릿속을 간신히 정리했다. 카라마츠는 웃음을 진정시키고 이치마츠에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내 이름은 카라마츠. 마츠노 늑대 무리의 이 인자, 카라마츠다. 작은 아이 이치마츠야, 네 이름은 우리와 비슷하구나.]

마음에 들어. 카라마츠는 그렇게 말하곤 동굴밖을 바라봤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따라 시선을 밖으로 옮겼다. 달빛 속에서 빛나는 눈들이 보인다. 빨간눈, 초록눈, 노란눈, 분홍눈. 가지각색의 눈들이 빛난다싶더니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카라마츠와 비슷한 크기의 늑대들.

[나의 형제들이다.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단다. 우린 네가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 판단했으니까. 나는, 널 믿는다. 작은 아이 이치마츠야.]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며 웃었다. 웃었다? 늑대의 얼굴이 웃을 수 있던가? 하지만 그렇게 느껴졌어. 이치마츠는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다가온 늑대들이 저를 내려다 보고있다. 그때, 이치마츠는 할머니가 해 준 얘기가 떠올랐다. 마츠노들을 마주쳤다면 정중하게 인사해야한다. 이치마츠는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혔다.

"마츠노 님을 뵙습니다."

그 뒤에 이어진 건 가지각색의 웃음소리였다.